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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싸워야 타협의 접점과 행복 찾을 수 있어
끝까지 싸워야 타협의 접점과 행복 찾을 수 있어
  • 의사신문
  • 승인 2016.12.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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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의학문인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3〉 : 우수상 - 로렌차 젠틸레의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를 읽고

 

김 정 일(김정일 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생명체가 진화하는 것은 잘살기 위함이다. 35억년전에 단세포 생명체가 출연했고 6억년전에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했다. 이를 나는 정말 사랑해서 하나가 되고 싶은 상대를 만나는 데 29억년이나 걸렸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거니까. 

인간은 지구상에서 적응하기에 가장 적합한 크기라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더 이상 자기 몸집을 키우기 보다는 집단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 되는 생명체에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생명체로 진화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진화도 만만치가 않다. 정말 사랑하는 존재와 하나가 되는 데 29억년이 걸렸다면 정말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하는 데도 만만치 않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개인간, 부부간, 집단간, 국가간 사이의 다툼은 끊이지 않는다. 그 이유를 나는 통제권(콘트롤)에서 찾는다. 생명의 기본은 통제권이다. 내가 나를 내 맘대로 할 수 있을 때 생명체라고 할 수 있다. 각자 주인인 존재가 모여서 함께 하려면 누군가는 자기 통제권을 포기해야 한다. 그 통제권을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 통제권을 잃는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이기에 그 싸움은 목숨 걸고 전개된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영화가 `장미의 전쟁'이다. 부부는 서로 사랑하지만 통제권을 포기할 수 없어 죽기까지 싸우다가 둘 다 죽는다. 아마 단세포가 다세포가 될 때도 비슷한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정말 사랑하는 두 세포가 한 몸으로 합쳐지는 것은 좋은 데 통제권을 누가 갖느냐?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해도 통제권은 별개 문제다. 통제권을 포기하면 자기 자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29억년이 걸렸다. 결론은 둘 다 통제권을 포기하고 제3의 존재에게 통제권을 맡기는 것이다. 그 3의 존재가 시냅스(synapse)다. 신경 세포가 만나는 지점, 시냅스에 통제권을 두면 서로 공평하니 싸울 일이 없다. 서로 반씩 만나고 거기서 새로운 존재가 탄생하니 말이다. 그래서 시냅스에 자아가 있다고도 한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통제권을 갖기 보다는 그들이 만나는 지점에 통제권을 두면 다툴 일이 없다. 그것이 아마도 집단의 정관이고 약관이고 규칙이고 사회의 법일 것이다. 그래서 법인은 하나의 생명체라는 말도 나온다.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로렌차 젠틸레 저 - 천지은 옮김. 열린 책들)는 싸움이 끝나지 않는 부모를 바라보는 어린 아들의 얘기다.

어린 테오는 부모님의 잦은 싸움에 안타까워한다. 엄마, 아빠가 저렇게 싸우다가는 3단계로 넘어갈 텐데.

1단계는 서로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것,
2단계는 서로 소리 지르는 걸 넘어서 대화조차 안하는 것,
3단계는 한사람이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

테오는 부모님 싸움을 끝내기 위해 나폴레옹을 찾는다. 나폴레옹은 싸움에서 한 번도 진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비결만 알면 부모님의 싸움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이미 죽었다. 테오는 궁리 끝에 죽어서 나폴레옹을 만날 계획을 세운다. 내가 죽더라도 부모님의 싸움을 끝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운좋게도 자기가 나폴레옹이라고 자처하는 거지를 만나 죽음의 위기를 넘긴다. 테오는 그를 통해 부모님의 싸움을 끝내는 방법을 발견한다. 그 방법은 절대로 굴복하지 않고 계속 싸우는 것이었다. 그래서 테오는 엄마한테 가서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 아빠와 3단계까지 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어서 침대에서 일어나시라고. 왜냐하면 내가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진짜 사나이는 맨 앞에서 어려움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어서 집으로 오시라고 말할 거니까. -
싸움을 피하는 것은 잘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홀로 남겨지면 싸울 일은 없어 편하나 발전할 길은 없다. 싸움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우다 보면 서로 건드리면 안되는, 건드리면 좋아하는 접점들이 생길 것이다. 둘의 싸움은 그 접점들이 주인이 되면서 종식된다. 나폴레옹은 절대 굴복하지 않고 계속 싸우면서 그들 접점을 만들어 싸움을 종식시키고 유럽 대부분을 정복했다. 아빠도 싸움을 포기하면 안된다. 싸울 때까지 싸우다 보면 둘이 잘 지낼 수 있는 접점이 생길 것이다. 그래도 한 때는 사랑하지 않았던가. 결혼을 결정할 정도로.

 부모의 싸움을 끝내기 위해 나폴레옹을 찾는 아들의 이야기로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법·포기하지 않는 삶의 진화 강조

나폴레옹 거지는 한가지 더 가르쳐준다.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나폴레옹은 외부의 적과도 끊임없이 싸웠지만 자기 자신과도 끊임없이 싸웠을 것이다.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했기에 나폴레옹은 스스로도 계속 성장하면서 외부와의 싸움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팎의 진화를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진화를 포기하면 퇴화는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우리 대뇌 피질은 자극을 받으면 두꺼워지지만 자극을 받지 않으면 얇아진다. 그런데 두꺼워지는 것보다 얇아지는 정도가 더 크다. 그래서 싸움은 포기해선 안된다. 특히 부부간의 싸움은. 단세포가 다세포가 되는 데 29억년이나 걸렸지만 다세포가 100조개의 세포(인간 몸의 세포수)가 되는 데는 6억년밖에 안 걸렸다.

즉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다. 한 번 해봤으니까. 그래서 부부는 끝까지 싸워야 하고 적절하게 타협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 서로의 통제권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발전하는 방향으로. 그것이 성공하면 다음은 훨씬 쉽다. 

주변을 돌아보면 싸움을 일찍 끝낸 부부일수록, 대화를 많이 하는 부부일수록 가정도 안정되고 일도 잘된다.

한 남편은 신혼 초에 아내와 치열하게 싸웠다. 아내는 임신한 상태에서 처갓집을 등에 업고 맞섰다. 남편은 이혼해도 좋다고 버텼고 결국 적정선에서 싸움은 끝났다. 그 후 남편은 승승장구, 큰 부자가 되었다.

한 남편은 신혼 초에 아내와 치열하게 싸웠다. 아내는 임신한 상태에서 처갓집을 등에 업고 맞섰다. 남편은 뱃속의 아기를 생각해 싸움을 포기했다. 아내와 처갓집은 의기양양, 득의만만했지만 남편은 바람나기 시작했다. 겉 싸움은 포기했지만 속 싸움은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남편은 한동안 성공하는 듯 하더니 바람 핀 여자들에게 발목 잡혀 추락하기 시작했고 결국 둘은 이혼했다. 그렇게 같이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각자 사는 게 더 나은 것이다. 맞지 않은 사람과 사는 것은 자기를 죽이려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과 다를 바 없다. 단세포가 다세포가 될 때도 무수히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았던가.

테오는 말한다. 만일 아빠가 돌아오시지 않으면 아빠가 가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 그러니까 엄마와 마틸데 누나와 나, 테오를 잃게 될 것이라고. 

싸움을 포기하면 잘사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도 잃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생명이고 내 생명의 연장인 자식들이다. 그들과 함께 잘 살아야 모든 것이 다 잘될 수가 있다. 싸우다말고 도망가면 자식도 잘사는 것도 다 도망간다. 그래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가화만사성이라고 하지 않는가.


【요약】 로렌차 젠틸레의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1988년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류작가 로렌차젠틸레가 2014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이다.

항상 서로 싸우는 부모의 사이에서 불행한 생활을 보내던 8살소년 테오는 생일선물로 받은 `나폴레옹의 모험'이란 만화책을 읽는다.

모든 전투에서 항상 승리했다는 나폴레옹이야말로 가족의 화목을 위한 지혜를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미 죽은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자기도 죽기로 결심한다. 그 죽음을 실행하기 위한 13일간의 과정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소설이다. 결국 테오는 우연한 계기로 죽지않기로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열린책들 간/천지은 옮김/양장본/224쪽/값 1만1800원/2015년 1월12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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