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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성장에 떠밀려버린 공존과 희생의 가치
경쟁과 성장에 떠밀려버린 공존과 희생의 가치
  • 의사신문
  • 승인 2016.12.13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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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의학문인회 독후감 공모전 수상작 〈2〉 : 최우수상 - 우리 안의 기적을 찾아서 - 까뮈의 `페스트'를 읽고
최주현 원장 서울밝은세상 안과 

숲으로 이사했다. 처의 직장 근처로 간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복잡한 도심을 떠나고 싶었다. 군대 시절을 빼고는 처음으로 서울 밖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셈이다. 지금까지는 잘 적응하고 있는 듯 하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머리 속을 떠돌아다니는 하나의 상像을 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불안과 공포는 인간을 잠식한다. 정신적 외상으로서의 트라우마는 종종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한다.

2014년, 세월호의 선체가 서서히 옆으로 기울고 이내 선수부만 남긴 채 침몰해가는 모습이 머리 속에 남아있다. 떠나간 이들의 빈자리는 아직도 채워지지 않았다. 남은 사람들은 왜 아이들의 안전이 지켜지지 못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국가는 어디에 있었는가. 위급 상황에서 누구도 보호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은 당연한 결과였다. 각자도생의 시대. 나와 내 가족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일었다. 연이어 찾아온 메르스 사태는 불안과 공포를 더욱 부채질했다. 세월호 침몰 이후 나온 많은 영화, 드라마, 문학작품들은 하나같이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에 방점을 찍고 있다. 아버지로서의 `국가' 가 사라진 시대에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멈추지 않고 있다. 

반복되는 우연은 필연일지 모른다. 아주 오랜만에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를 다시 손에 잡았다. 세월호 침몰과 메르스 사태를 겪고 난 다음이었다. 소설 속의 `오랑 시市' 에 페스트의 증후가 나타나기 시작한 날짜와 세월호가 침몰한 날짜가 공교롭게도 4월 16일로 같았던 것은 아마도 지독한 우연일 것이다.

쥐들이 죽어가기 시작한 그날, 시민들은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의사인 리외는 쥐들의 죽음을 수상하게 여겼다. 비슷한 시기에 환자들이 발생했다. 고열과 종창을 호소하며 죽어가는 이들이 생겨났다. 페스트는 빠르게 도시 전체로 퍼져나갔다. 처음엔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했던 사람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파리의 정치인들은 급기야 소도시를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시민들은 감염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 낙인 찍히고 고립됐다.

죽음보다 무서운 것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외부와의 단절에서 오는 공포다. 페스트에 걸리기도 전에,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갔다. 갇힌 도시에서 누구는 절망하고 누구는 몸부림쳤다. 그랑은 글을 썼고, 코타르는 세상을 비관하고 조롱하며 퇴행했다. 파틀루는 신앙과 구원에 몰두했다. 리외와 타루는 보건대를 꾸려 맨몸으로 페스트와 싸웠다. 랑베르는 도시 밖의 애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을 돌려 보건대를 도와 페스트 퇴치에 나섰다.

`세월호와 메르스'…국가가 사라져버린 각자도생의 시대에
페스트에 맞서 싸운 리외처럼 살 수 있을까를 내게 묻는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어쩌면 배가 가라 앉고 있는 충격적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느꼈던 것이다. 같은 상황에 닥쳤을 때, 나의 안전이, 가족의 생명이 위협받을 때, 흔쾌히 타인을 위해 나의 것을 내어줄 수 있을까. 해상 응급 상황의 문제와 대처에 대해 수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에 과연 개인이 희생할 수 있느냐의 질문이다. 비극적 순간에 스스로 희생한 이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가. 이기심과 그로 인한 이익 추구가 모여 공동선을 창출한다는 발상은 애덤 스미스 이래 서구 자본주의 질서의 기본이었다. 분업 증가와 생산량 증대로 삶은 풍요로워졌으나, 자유주의 시장 세계화 이후 사회적 불평등, 경제 불황, 환경적 위협, 정치적 불안정은 새로운 위기를 낳았다. 핵심적 문제는 점차 사회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 경쟁 시대에 모든 요소는 비용 대비 수익, 효율성의 가치로 평가된다. 도태되는 부문들은 과감히 정리돼야 한다는 성장제일주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조화와 공존이라는 생태계적 가치는 도외시된다. 인간이 인간을 도구화하는 경향이 늘어간다. 하위 계층은 스스로의 몸과 건강 외에는 착취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처지에 개인 윤리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까뮈는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페스트'를 썼다. 주인공 리외는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라고 말한다. 의사로서의 업業을 완수하는 이면에는 위기에 처한 이웃을 외면할 수 없는 동정심과 인간애가 바탕이 될 수 밖에 없다. 폐허를 딛고 일어서려 한다면 더욱 그렇다. 큰 전쟁 이후 사람들이 손을 맞잡고 위기를 이겨낸 사례는 많이 있다.

`포콜라레 운동'이 그 중 하나다. `포콜라레'는 이탈리아어로 `난로'를 뜻한다. 추운 겨울 난롯불 쬐는 것이 큰 호사였던 북부 이탈리아에서 1940년대 끼아라 루빅에 의해 포콜라레 운동이 시작됐다. 가톨릭, 기독교, 기타 종교를 기반으로 대안적 공유 경제를 실현하고 있다. 국가주의를 넘어 인류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상호 존중이 목표다. `남들이 당신에게 해주기 원하는 일을 다른 이들에게 하라'라는 보편율을 실천한다. 익히 알려진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 역시 시장경제 안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러한 `운동'들은 끔찍한 전쟁과 가난의 위협에 시달린 시민들이 손길을 내밀어 서로를 건져낸 좋은 사례들이다. 

2년 전, 참극에서 끝끝내 건져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인간에 대한 신뢰일 것이라 생각했다. 불신이 커지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진다면, 구할 수 있는 것조차 심연으로 침몰하는 것을 바라 보아야 할 것이기에. 크나큰 재난 이후에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들끓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것은 하나의 인간이다. 희생은 연대와 신뢰 없이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차가운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웠던 5월의 `노란 리본'은 연민과 공감이었다.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 수 있을만한 공간을 꼭 건져내야 한다는 소리 없는 외침을 들었다. 나는 이 곳 숲 속에서, 페스트와 맞서 싸웠던 리외처럼 나의 것을 내어주면서 살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묻는다. 기적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 안의 그 기적을 찾아야 한다.

【요약】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1947년 발표된 이 작품은 독자와 비평가들의 호평을 통해 주요한 문예작품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페스트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나 흥미로운 배경설정 같은 소설적 요소에는 전혀 기대지 않고 삶에 관한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써 내려갔다.

이 작품은 전후 세대의 독자들이 그의 책과 그의 가치에 동조와 이해를 보내는것을 가능케 하였다. 자신의 조국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의 절망과 위태로움을 완벽히 그리고 성실하게 포착해 내었다고 평가된다. 

페스트라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이 작품은 20세기 문학이 남긴 기념비적인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오랑이라는 작은 마을에 페스트가 발병해 도시가 봉쇄되어지고 그렇게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가시적이고 절대적인 죽음을 마주하게 된 사람들의 모습을 수기형식으로 기록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재앙에 대처하는 서로 다른 태도를 드러내 보인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절망과 맞서는 것은 결국 행복에 대한 의지이며, 잔혹한 현실과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열린책들 간_세계문학 229/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424쪽/값 1만2800원/2014년 11월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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