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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나비〉 작품번호 2
로베르트 슈만 〈나비〉 작품번호 2
  • 의사신문
  • 승인 2016.12.13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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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79〉

■음악으로 구성한 공상적이며 환상적인 세계

이 작품은 20세 전후의 젊은 슈만을 대표하는 초기 작품이다. 작곡가의 천재성과 독창성이 강하게 드러난 야심작으로 그의 피아노 음악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1831년에 작곡하여 이듬해 출판된 이 작품은 짧은 서곡과 12곡이 쉼 없이 연주되는 연작 성격의 피아노곡이다. 독일 낭만주의 소설가 장 폴의 미완성 장편소설인 `개구쟁이 시절(Flegeljahre)'의 마지막 장인 63장 `애벌레의 춤'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

`애벌레의 춤'은 가면무도회를 배경으로 발트와 볼트라는 두 형제가 가면무도회장에서 아름다운 소녀인 비나에게 구혼을 하는 내용으로 몽상주의자 발트의 감성과 현실주의자 볼트의 정력, 이들 쌍둥이 형제가 비나에 품은 사랑의 감정은 이후 슈만의 〈사육제〉에 등장하는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 클라라의 구도에서 완성을 이룬다. 장 폴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들, 즉 가면무도회나 달빛, 나비 무곡, 광대, 어린이 등은 슈만에게 가장 중요한 음악적 주제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낭만적인 이미지, 상상력 풍부한 세계, 돌연 분위기가 변화하거나 흐름이 끊기는 자유분방한 장 폴의 전개 방식은 슈만의 음악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의 피아노독주곡들은 인상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짧은 단편들이 불연속적으로 진행되면서 흐름을 이어 나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나비〉는 그의 초기작으로 원숙한 시기에 작곡한 〈사육제〉만큼 캐릭터들의 성격을 강렬하게 대비시키지는 못했지만, 이전 작곡가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낭만주의자로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함에 있어 형식과 내용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학에 영감을 받은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표출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의 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나는 음악에 글을 붙인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글에 음악을 붙이는 것은 저로서는 멍청한 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만 우연히 장난스럽게 첫 곡에 대한 응답을 하게 되는 마지막 곡만은 장 폴의 작품을 고스란히 따랐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분열된 자아가 사랑을 찾고 좌절하는 낭만적인 상상의 세계를 무대로 하는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젊은 슈만은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를 만났을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게 빛난다.”는 장 폴의 격언에 충실하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보면 〈나비〉는 음악가로서 첫 출발을 하게 된 가장 순수한 시기의 가면이었고, 〈사육제〉는 손가락 부상으로 인해 피아노와 이별 후 작곡가로서 빛나는 첫 발을 내딛은 시기의 가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비〉의 제1번, 제3번, 제4번, 제6번, 제8번의 5곡은 1829년부터 1830년 사이 하이델베르크에서, 나머지 일곱 곡은 1831년 라이프치히에서 작곡한 것이다. 이 사이에 그에게는 개인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1830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니콜로 파가니니의 연주를 보고 그는 정신적,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앞선 다섯 곡은 음악에 열정적인 아마추어 시기의 작품이라면, 1831년 작곡한 나머지 일곱 곡은 파가니니에 대한 경의를 화려하게 표현한 것이다. 12곡 중 대부분이 왈츠이고 제2곡, 제5곡, 제11곡만 다르다. 이 작품에 각각의 부제를 붙이지 않았는데 당시 볼롬 필드-자이슬러라는 피아니스트가 이 작품을 연주하며 연주회 프로그램에 다음과 같은 제목을 적었고 그 부제는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내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 공상적이며 환상적인 세계를 구성한 그의 작곡기법은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이미 그의 독창적인 음악으로서의 모든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서주 Moderato 양손의 유니슨으로 간단하면서도 독특한 느낌을 준다. △제1곡 가면무도회 가면무도회의 화려한 분위기를 그렸다. △제2곡 발트 Prestissimo 음의 강약이 대비된다. △제3곡 불트 왼손의 주제가 오른손에 옮겨지고 다시 왼손이 뒤쫓는 역동적이다. △제4곡 가면 슈베르트를 연상시키는 듯 아름다운 울림이다. △제5곡 비나 Polonaise 오른손의 선율이 차분하고 깊이 생각하는 여성적인 분위기다. △제6곡 불트의 춤 당김음 효과의 첫 부분이 되풀이되고 여리고 고운 주제가 나오면서 되풀이된다. △제7곡 가면을 교환하다 온화하고 고요한 멜로디가 사랑스럽게 펼쳐진다. △제8곡 고백 슈만이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다닐 적 쓴 곡으로 당시 친구들에게 슈베르트의 곡이라고 속이고 연주했던 곡을 개작한 것이다. 박력 있고 씩씩한 느낌을 준다. △제9곡 분노 빠르게 회전하며 움직이는 듯하다. △제10곡 가면을 벗기다 스타카토가 나오면서 알토와 테너의 선율이 베이스 위에서 흐른다. △제11곡 헤어짐 Polonaise 급하게 발전되다가 엇박자의 선율이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든다. △제12곡 사라진 형제들 무도회장의 왈츠와 행진곡이 울려 퍼지고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은은한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면서 짧은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급격한 선율의 변화가 슈만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들을 만한 음반
△빌헬름 캠프(피아노)(DG, 1967)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EMI, 1962)
△머레이 페라이어(피아노)(CBS, 1976)
△미에치스와프 호르쇼브스키(피아노)(Nonesuch, 1989)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Decca,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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