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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사회장단 칼럼]아이들과 나의 진료실
의사신문 | 승인 2016.12.05 11:06
정해익
영등포구의사회 회장

유난히도 무더웠던 2016년 여름, 8월5일부터 21일까지 남미 최초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리우올림픽(제31회 하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우리나라 대표팀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모든 국민이 열렬히 응원을 하며 더위도 식혔지만 우리 의료인에게는 지카바이러스(Zika Virus)가 더욱 화두가 되었고 감염에 의한 환자발생에 대비하여 긴장을 했어야 했다.

특히, 임산부가 감염 되었을 때에 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되어 더더욱 긴장을 하였고 아직도 유행지역을 다녀온 환자가 외래진료를 받게 되면 진료실 컴퓨터 창에 경고문처럼 뜬다.

올림픽 하면 내게는 특별한 해였던 1988년, 88서울올림픽(9월17일∼10월2일)의 성공적인 개최가 떠오른다. 온 나라가 올림픽 준비로 떠들썩할 때 나는 소아과(현재는 소아청소년과) 3년차 전공의였다. 전공의로 전문의 시험을 준비해야했고 한편으로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여러모로 바쁜 시기였다.

그해 올림픽이 개최되기 전인 4월에 결혼을 하였고 영등포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집 근처에는 그 당시로서는 커다란 쇼핑몰이 하나 있었다. 현재는 영등포 일대에 대형 백화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 이제는 동네 마트정도로 전락했지만, 당시만 해도 그 쇼핑센터는 주변지역의 대부분 주민들이 쇼핑을 하고 아이들 놀이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빈번하게 드나들던 유명한 장소였다.

다음해 소아과전문의 시험에 합격하고 3년간의 공중보건의 복무를 마친 뒤 고심 끝에 개업을 선택하게 되었다. 인연이 닿으려 그랬나, 처음 마련한 살림집 근처의 그 쇼핑센터 부속건물에 자리가 있어 1992년 5월에 개업을 했다.

개업 당시 주변에는 이미 개업으로 지명도를 높이신 분들이 계셨고 가까이에 대형병원이 두 곳이나 있어 그렇게 만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래도 젊음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믿음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면 실패는 하지 않겠지' 하는 신념으로 진료하였고 내원하는 아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한 지 20여 년이 지났다. 어느덧 머리가 희끗거리는 중년아저씨가 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초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소아청소년과를 개업해서 아이들을 진료하고 돌보는 동안 힘들었던 일도 있었지만 기억에 남거나 소소하게 재미있는 경험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남자 아기를 진찰하려 기저귀를 벗기는데 꼿꼿하게 서있는 고추로부터 시원스레 오줌세례를 받던 일, 속이 부대껴 힘들어하는 아이를 진찰하다가 입고 있는 가운이 토사물로 범벅이 되던 일, 변비로 얼굴이 벌겋게 고생하는 아기의 변을 손가락으로 빼주어야만 했던 일, 흔들어 대는 아이 발에 정강이를 차이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아프지 않아도 진찰을 받고 싶어 꾀병을 부리며 병원을 찾아오는 아이, 예방접종 시 사력을 다하여 몸부림치며 도망가려는 아이들과의 한바탕 기 싸움, 열이 높아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다가 열성경련을 일으키는 아이들, 흔히 체했다고 하면서 집에서 손을 따고 오는 아이들, 간혹 화가 난 녀석들이 뱉어 내는 침에 의해 얼굴이 범벅이 됐던 일,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진료실에 들어와 치근거리는 아이들, 형과 동생이 서로 먼저 진찰을 받기 위해 자리싸움을 하는 일, 대기실에서 아이들끼리 힘겨루기 하면서 서로 다투는 일, 자기 병원이라며 마치 내 아이처럼 살갑게 다가오고 진료가 끝나도 한 동안 병원에 머물렀다 가는 아이 등등 실로 진료실의 다양한 모습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상 속에 그래도 기분 좋고 기억이 남는 일도 있게 마련이다.

어려서부터 편도염(편도선 염증)으로 우리 병원을 자주 드나들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편도가 너무 커져있어 감기만 걸리면 염증으로 고열에 시달리고 목이 아파 잘 먹지 못하였고 항상 힘들어 했었다. 그렇게 잔병치례를 하면서도 그때그때 치료를 받으면서 잘 성장해 갔고 공부도 참 잘한다는 얘기를 듣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공부에 지쳐 힘이 드는지 간헐적으로 내원하여 편도염증을 치료 받았는데, 그 뒤로 한동안 내원이 뜸해져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듬성듬성 콧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걸걸한 훤칠한 청년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바로 그 아이였다.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에 다닌다며 여러 가지 일을 상담하러 왔다고 한다. 그 외에도 몇몇 아이들이 의과대학에 진학했다고 찾아오곤 하였고 가끔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주는 아이들을 보면 그래도 이 아이들에게 `나는 다시 찾고 싶은 의사선생님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흐뭇하다. 

다른 하나는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약간 젊은 분과 아이엄마가 신생아를 안고 진찰실로 들어왔다. 소아청소년과 외래에 3대가 함께 오는 일은 흔하여 대수로운 것은 아니다. 대개 친정어머니나 시댁 어른이 아이 엄마와 함께 오시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젊은 할머니는 아기 엄마를 가리키며 “얘가 원장님께 어려서부터 진료를 받으러 다녔던 ○○예요. 기억나시죠? 그런 애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아 데리고 왔어요.”라는 것이다.

연세가 드신 원장님들은 흔히 경험하는 일이겠지만 내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 생각하니 새삼 개업하고 흘러간 세월을 되짚어 보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내가 개업을 할 때 인근에서 30여 년간 소아과를 운영해 오셨던 자상하셨던 정소아과 원장님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며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원장님들이 공감하시겠지만 그 무엇보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환자 또는 아이들과 함께 오는 보호자들의 고충을 해결하고 요구사항을 충족시켜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즉 보호자와 좋은 라포 형성일 것이다.

처음 개원한 장소에서 20여 년이 넘도록 한 자리를 지키며 동네 주치의로, 한편으론 아이들의 다정한 친구로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하면서도 딱히 이것이 정답이다 하는 것을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점점 더 열악해져 가는 진료환경에서 초심을 잃지 않고 진료를 하며 그 답을 찾고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쉬지 않고 하루하루 진료를 하고 있다. 

어려서 나에게 진료를 받았던 수많은 아이들이 올바른 청년과 성인으로 성장하고, 사회에 진출을 하고, 마음이 따뜻하고 지혜로운 엄마가 되어 다시 찾아주는 것을 보며 세월이 꽤 흘렀지만 적잖이 보람있는 시간을 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변치 않고 항상 우리 병원을 찾아주신 분들의 커다란 도움이라 생각하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건강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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