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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와 고흐, 두 화가의 눈
모네와 고흐, 두 화가의 눈
  • 의사신문
  • 승인 2016.12.0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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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52〉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오감을 통해 바깥세상을 파악한다. 이 정보를 다시 머리에서 인지, 분석하여 반응하고 느끼고 저장한다. 예술 활동도 같은 과정을 거쳐 우리에게 미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감각기관에 병이 생겨 기능이 떨어지면, 예술 활동과 작품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특히 작품 활동과 직결되는 감각기관에 이상이 생길 때 엄청난 상실이 오지 않을까? 화가의 경우 시각이 약화 되었을 때 작품 활동이 생명을 잃지나 않을까? 

이런 우려를 뒤로하고, 시각 이상을 오히려 새로운 예술세계로 도약하는 발판으로 승화시킨 화가가 있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활약한 전·후기 인상파의 중심에 있는 모네와 고흐이다. 인상파는 실내에서 벗어나 주로 야외에서 작업하면서, 그리는 대상의 고유색보다는 자연 빛의 양과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색감을 표현하였다.

인상파의 창시자이면서 대표 격인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중년에 프랑스의 작은 마을 지베르니에 정착하고 43년간 머물면서 연못과 수련을 주제로 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자연의 빛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무와 꽃의 색깔, 연못 물에 비치는 나무숲과 물결에 따라 움직이는 그림자, 그 사이 수련에서 보이는 햇빛과 물빛의 조화가 인상파 그림 소재로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이 무수한 변화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에 심취하여 일생 동안 250 여 개의 수련 그림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런 모네가 72세에 눈의 렌즈가 농축되는 백내장에 걸렸다. 병이 진행되면서 시력이 희미해 지고 나중에는 색을 구별하는 능력이 떨어졌다.
이 당시 그림을 보면 점차 수련과 주위 연못 물 사이에 구별이 불분명하고 선명도가 떨어진다. 병이 진행되면서 색깔 감각에 변화가 생겨 노란색과 빨간색은 인식이 잘 안되고 모든 사물이 녹색과 파란색으로 변해 보였다.

이에 따라 전체적으로 파란색 배경에 희미한 윤곽으로 수련만 그린 작품이 나에게는 추상화와 흡사하게 보였다. 그도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인식하지 못하는 색깔을 오히려 과감하게 강조하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다. 다행히 모네는 10년 후 인생 말기에 백내장 수술이 성공하여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러나 이런 과감한 그림은 뒤이어 등장하는 추상파를 예고하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네덜란드 출신의 가난하고 고독한 화가였다. 대표작 〈해바라기〉 같이 그의 작품은 캔버스 전반이 노란색인 화풍으로 특이하다. 왜 빛의 스팩트럼에서 나오는 많은 색깔 중, 오직 노란색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보았을까? 

그는 일생 동안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 간질이나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나, 조울증, 신경성 매독이라는 주장도 있다. 고흐의 주치의였던 가제트 박사는 고흐의 정신병을 디지털리스로 치료하였다. 디지털리스는 foxglove 약초에서 추출한 물질로 현재는 심장병에서만 사용하고 있으나 1889년 당시에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져 정신질환 치료제로도 처방되고 있었다. 〈가제트 박사의 초상〉에도 이 약초가 함께 그려져 있어 고흐가 효과를 믿고 충실하게 복용했음을 알 수 있다. 하여튼 이렇게 처방한 디지털리스의 주요 부작용이 yellow vision이다. 즉 고흐의 눈에는 모든 사물이 노란색으로 보였다. 

또한 고흐는 망막부종이 있었다고 한다. 망막에 부종이 오면 시야 중심부에서는 빛 주위에 둥근 후광이 보인다. 〈별이 빛나는 밤〉 그림에서 나오는 원형의 별무리와 달무리, 〈아를의 밤의 카페〉의 불빛 모양이 병의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그는 평소에 납이 주성분인 물감을 애용하였고 여기에서 생긴 납중독이 망막부종을 유발했다고 추측하고 있다. 종합하면, 이 세상과 문을 닫은 채 홀로 살아가는 고흐에게 낯설고 불편한 노란색은 황량한 외로움을 절실히 느끼게 해 주고 형형한 별무리와 달무리는 외로움을 풀어 주고 삶의 의욕을 되찾아 주었을 것이다. 살아 있을 때는 안정 받지 못했으나, 강렬한 개성과 뜨거운 예술혼을 보여준 그의 작품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켜, 마침내 그는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추대되었다. 

우리가 독창적이라고 여긴 그림이 사실은 시각장애 상태에서 화가가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면 작품의 가치는 떨어지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학적으로 설명 한다면, 그림은 화가의 영혼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시각적 매개체이고, 이로 인한 작가와 관람자의 상호작용이 예술성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햇빛 아래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자연과 사물의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하고 그 아름다움을 전달하려고 했듯이 두 천재 미술가는 질병의 질곡에서 만나는 시각적 변형의 특이로움을 표현하였고 관객들은 여기서 불러 일으키는 미적 감성을 느끼게 된다. 이는 베토벤이 청각 장애 상태에서 작곡한 곡들이 음악사에서 한 획을 긋는 주요 작품이 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삶은 항상 건강하고 즐겁기만 한 것이 아니다. 큰 병에 걸리고 고생하는 시기도 있지만 그 기간 역시 소중한 삶의 순간이다. 마찬가지로 인상파 그림이 우리 의식에 아름답게 느껴지듯이 질병으로 변형된 그림도 불편하긴 하지만 우리 무의식에 연결되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감성을 일깨운다. 개성이 있는 모티프를 뚜렷하게 나타낸 이 모든 작품은 우리에게 깊은 공감과 위안을 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두 화백이 안과질환으로 `어떻게 대상을 변형하여 보았는가?'가 아니라, 특이한 시각 경험을 뛰어난 감성과 지성으로 정제하여 얻은 핵심을 `어떻게 그림으로 다시 표현하였는가?' 이다. 화가가 겪었던 시각 장애는 이들에게 남다른 예술의 혼을 일으켜 주었고, 이정표적인 작품을 통해 미학적 방향(芳香+方向)을 우리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고흐와 동시대의 사람인 드가의 말이다. “진정한 예술이란 당신이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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