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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詩作을 시작始作 하면서
시작詩作을 시작始作 하면서
  • 의사신문
  • 승인 2016.11.2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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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51〉

찬바람이 불면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면
머리가 냉기로 시원해지면 
나는 문득 외로워 진다
바닷가에 던져진 존재의 의미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면
마음이 냉기로 싸늘해지면  
나는 문득 따뜻해 진다
서설瑞雪에 깊어가는 그대의 숲 속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면
가슴이 냉기로 차가워지면
나는 어느새 용감해 진다
병든 몸에 남아있는 여정旅程의 의지

겨울이 되어 찬바람이 불면
영혼이 냉기로 얼얼해지면
나는 어느새 경건해 진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이상과 소망

얼마 전 국문학 박사인 환자가 내가 쓴 수필집을 읽고 시를 써보라고 조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시작(詩作)을 해본 적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집사람을 만날 때 연애편지에 시와 비슷한 글을 적은 것이 전부이다. 그 후 45년이 지나고 권유에 힘입어 두 번째로 시도한 것이 위에 있는 〈찬바람이 불면〉이다.

더운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머리에 스치면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법이라는 외로운 상념이 든다. 동시에 내가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을 더 실감한다. 찬바람이 머리에 스치면 살아야겠다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되면 더 이러한 느낌이 강해진다. 추워진 환경에 대한 방어기전이 활성화되어서일까?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움직이는 원동력이 결국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여러 관계의 사랑이 만드는 생명의 열이 우리를 따뜻하게 하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게 한다. 사랑은 사람간의 만유인력이다. 먼저 운명적인 상대방이 생기면서 사랑은 시작한다. 내가 좋아하는 전원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 가에 서서〉에 잘 표현되어있다.

이 숲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는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 집은 마을에 있으니 
눈이 쌓이는 숲을 바라보려고
내가 여기 서 있는 걸 알지 못하리라.   

프로스트가 말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또 내가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서 우리는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이러한 감상의 질량이 클수록 끌어당기는 힘도 세지는 것이다. 또한, 사랑의 상대방도 내가 있어야 하므로 거꾸로 내 존재의 이유가 된다.

생로병사에서 알듯이 우리 인간은 늙으면 아프고 죽게 되어있다. 왜 반드시 병에 걸릴까? 의학적이고 합리적인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떻게 보면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시간을 준다. 질병이라는 것은 육체적으로 휴식과 회복을 갖기 위한 방어기전이라는 의견이 있다. 마찬가지로 정신적으로 자기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삶의 목표를 재정립하고 투병하고 회복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내 존재의 이유를 만들었듯이, 타인의 염려와 기원에서 병자는 회복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들이 만든 생명의 열이 바로 투병의 힘, 생의 애착이 된다.

환자의 간절한 소망도 투병의 에너지가 된다. 한하운 선생의 〈보리피리〉는 이런 염원을 노래하고 있다. 하늘의 벌이라는 나병으로 아픔과 절망 속에 살던 시인이 그리워하고 바라는 것은 우리의 평범한 인간살이이었다. 우리에게 지루하기만 한 속세와 번거롭다고 생각하는 인간사가 모두 그립다. 이런 평범에 대한 소박한 바람이 오히려 강하게 생의 의지와 애착이 된다.    

보리 피리 불며 불며
인환(人患)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 닐니리 

삶의 방향 또한 아주 중요하다. 머리가 멍할 정도로 매섭게 추운 겨울날 눈으로 얼어붙은 산하(山河)를 걸어가며 했던 생각이다. 모든 것이 정지된 것 같은 이런 악조건에서도 생명이 있으니, 반드시 그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생각해보니 이런 반문은 이성과 지혜를 가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혜이다.

또한 대답도 내 삶의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에서 시작한다. 건강할 때나 아플 때, 기쁠 때나 슬픈 때,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등등. 이렇게 내가 사유할 수 있게 인간의 생을 허용해 준 신에게 감사하고, 한번 만 있는 내 인생의 부침과 굴곡에서 존재, 사랑, 생명과 이상(理想)에 대한 조그마한 지혜라도 얻기를 소망한다.  

이 어설픈 시를 이비인후과 전문의면서 시인인 홍지헌 선생님에게 보내어 교정을 부탁했다. 다음은 고쳐준 싯귀이다. 

찬바람이 불면

가을바람에
머리가 시원해지면 
나는 문득 외로워 진다
바닷가에 던져진 존재의 의미 

가을바람에
마음이 싸늘해지면 
나는 문득 따뜻해 진다
서설瑞雪에 깊어가는 그대의 숲 속

겨울바람에
가슴이 차가워지면
나는 용감해 진다
병든 몸에 남아있는 여정의 의지 

겨울바람에
영혼이 얼얼해지면
나는 경건해 진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이상과 소망

홍 선생님이 보낸 교정 내용이다. “가을이 되어 `찬바람'이 불면 머리가 `냉기'로 `시원해지면'에서 같은 의미의 단어를 줄였습니다. 문득 문득 외로워지고 따뜻해 지는 마음과 대비시키기 위해, 용감하고 경건해 지는 것은 지속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어느새'를 없앴습니다”

과연 전문가의 안목은 달랐다. 작품이 더 산뜻해지고 내용이 뚜렷해졌다. 의미를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하기보다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모호한 표현이 더 시적이라고도 충고했다. 이 자리를 빌어 홍지헌 시인께 감사를 드린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이 물러나고 찬바람을 맞으며 어느새 생긴 시상(詩想)이다. 올해 가을과 겨울은 이 작품과 같이 진정한 존재의 사랑으로 좀 더 따뜻하고, 씩씩하게 지내고, 한편으로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찾아가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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