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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사원이 남긴 화분<15>
인턴사원이 남긴 화분<15>
  • 의사신문
  • 승인 2010.01.1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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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함께 일해 온 인턴사원의 송별회를 가졌습니다. 저녁 한 끼 함께 먹고 동료 카드에 덕담 한마디씩 적어 선물과 함께 건네주었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기어코 참아내지 못하고 잠시 자리를 뜹니다. 겨우 열 달을 함께 일했을 뿐인데 나름 깊은 정이 들었던 것일까요?

직장생활 시작한지 30년이 넘었으니 이젠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법한데 아직도 가슴 한 구석엔 아쉬움이 떠나질 않습니다. 언젠가는 이름조차 잊겠지만 그 때 그런 사람과 함께 일했었다는 기억은 오래 남을 듯합니다.

때론 귀찮고 지루해서 싫은 내색을 보일법한 일을 맡겨도 그녀는 늘 기꺼운 표정을 보여주며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말 한마디도 아껴가며 제 일엔 소홀함이 없어 내 아이도 나중에 저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마지막 근무 날엔 동료직원들에게 각각 카드 한 장과 선물을 하나씩 남겼습니다. 내 책상 위엔 탐스런 머그와 텀블러 세트가 있었고 다른 남직원을 위해선 넥타이를 준비했습니다. 평소 커피를 즐기던 모습을 눈여겨보고 마음에 담아 두었던 듯합니다.

그리고 내겐 한 가지 선물이 더 있었습니다. 창가에 풍란과 보세를 키우고 있는데 그 옆에 안 보이던 빨간 화분이 하나 늘었습니다.

“제 친구가 입원했을 때 받은 선물인데요, 과장님이 저보다 잘 키우실 것 같아서 여기다 두고 가려고요.”

식물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동글동글한 잎이 꽤 두꺼운 것을 보니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는 않을 듯합니다. 줄기를 보니 나무는 아니고 잎 마디에 실뿌리가 돋고 있는 것으로 보아 나중에 꺾어 심어 심기 번식도 가능할 듯합니다. 잎 사이로 몇 개의 꽃봉오리가 크고 있습니다.

“여기 꽃이 맺혔네…”

“정말요? 어디요?”

그녀가 눈빛을 반짝이며 들여다봅니다. 언제쯤 어떤 색의 꽃이 어떤 모습으로 피고 언제쯤 질지 궁금하다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런 호기심 가득한 심성으로 그녀는 공부하고 우리와 함께 일했고 그리고 튼실한 직장을 찾았습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그녀의 삶은 늘 역동적이고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그녀의 호기심과는 달리 나의 호기심은 걱정이 반쯤 섞여 있습니다. 물을 얼마나 주어야 할지 한밤중 사무실 온도가 내려가면 추위 때문에 꽃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그렇지만 이렇게 걱정하며 가까이하다 보면 조금은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게 몇 주가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는 모를 일입니다. 올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지나갈 쯤 기별을 넣을 생각입니다. `그 때 자네가 남겨두고 간 화분 말인데… 생각보다 잘 자라서 화분이 두 개로 늘어서 보내니 잘 키워보길. 물은 이렇게 주면 되고 햇빛은 어쩌고, 거름은…'

그 때쯤이면 첫 직장에서 자리를 잡고 여기서처럼 여러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겠지요. 아무렴요. 그녀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우리말 하듯 잘 하거든요. 그리고 심성이 착하고 그 나이에 벌써 사람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압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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