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작은 차가 편하다
도시에는 작은 차가 편하다
  • 의사신문
  • 승인 2010.01.13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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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라는 생태계에는 고성능이 필요 없다

지난주 서울은 폭설이 내렸다. 폭설이 내리는 와중에 필자는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를 타고 한강변을 달렸다. 출퇴근을 자전거로 한 사람은 별로 없어서 바이크 동호회에 사진과 함께 올린 글은 조회수가 엄청 많았다. 일종의 컬트 취급을 받게 되었는데 폭설이 내리는 한강을 달린 것은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그날 눈을 치우기 위해 한강변을 달릴 수 있던 차량은 경운기들뿐이었다. 경운기는 전륜구동에 트래드가 엄청난 타이어를 갖고 있다. 눈이 한참 올 때는 경운기도 도로에서 약간 지그재그로 달린다.

도로에 올라오니 청담역 올라가는 길은 완벽한 정체였다. 유턴조차 되지 않을 만큼 미끄러웠다. 눈이 거의 그칠 무렵이 되어서야 26년만의 폭설이니 100년만의 폭설이니 하는 말들이 미디어에 올라왔다. 그날 도로에 올라간 차들은 체인이나 스파이더를 감지 않는 한 고행의 연속이었다. 체인을 감아도 앞차가 가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냥 눈 위에서 늦는다는 불안감과 짜증으로 시간을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언덕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차를 몰고 올라가 보면 확실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퀴의 트랙션이 어느 정도인가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전륜과 후륜 그리고 4륜 구동의 차이를 확실하게 알게 된다. 보통은 전륜구동이다. 차는 무게 중심과 타이어의 마찰 그리고 노면에 상태에 따라 언덕을 올라갈 수도 있고 못 올라 갈 수도 있다.

평상시는 쉽게 올라가던 작은 길들에서 차는 쉽게 헛바퀴 굴림을 한다. 조금 긴 길, 이를테면 분당의 태재 고개 같은 곳에서는 차들이 아예 포기를 해버리기 때문에 올라갈 차들만 올라간다. 대부분의 차들이 설상면을 올라가는 것을 포기한 날에 티코와 마티즈가 언덕을 가볍게 올라가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다. 이 차들은 가볍기 때문에 트랙션이 클 필요가 없다.

무게가 가벼우니 도로에서 잘 미끄러지지도 않는다. 미끄러지는 것은 큰 차들에서 더 간단하게 일어난다. 완전한 빙판길이면 ABS, TCS, ESP 같은 것들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타이어가 도로에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관성의 법칙에 지배된다. 무거운 차들은 낮은 속도에서도 줄줄 밀리며 쉽게 돌아간다. 이럴 때는 운이 좋기만을 바래야 한다. 무거울 수록 오르막길보다 내리막길은 더 무섭다.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가벼운 차가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도로에 차가 달리는 것은 오로지 타이어의 마찰력인 트랙션이 존재할 때 뿐인 것이다. 무게가 많이 나가면 관성이 커진다. 요즘은 작은 차들도 1400Kg을 흔히 넘어가는 추세라 진정 가벼운 차들은 별로 없다. 차라리 차량강도만 충분하다면 부피가 크고 무게가 가벼운 차들이 훨씬 낫다.

얼어붙은 서울을 벗어나 살짝 얼은 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 내려가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작은 차 이야기가 나왔다. 예전에 우리는 친퀘텐토(이태리어로 500이라는 뜻이다)라는 작은 차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Fiat 500은 무게 500Kg에 엔진 배기량도 500cc다.

지난번 컬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마티즈는 이 차와 관련이 깊은 차종이다. 고전적 500과 누오바 500 사이의 Fiat Cinquecento(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면 `500'을 `오백'이라는 모양의 로고로 만들어 붙였다고 생각하면 된다)라는 이름으로 나온 차의 배다른 형제이기 때문이다.

모델명의 이름은 `Lucciola'였다. 아주 예쁜 차였다. 뛰어난 컨셉카이기도 했다. 1993년에 이런 디자인을 만들 수 있던 이탈리아 디자인의 감각은 정말 대단한 안목이었다. 사실은 마티즈가 친퀘텐토보다 더 예쁘다. 컨셉카에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캔버스탑도 달려 있었다.날씨가 좋으면 오픈카처럼 타면 되니까 차라리 이 컨셉은 요즘에 더 어울린다. 〈사진〉

GM대우 마티즈에 유감이 있다면 엔진뿐이다. 출력도 안 좋고 연비도 좋지 않은 3기통 엔진이 불만이었다. 친퀘텐토에 붙어있는 1.1리터 푼토의 엔진이 마티즈에는 없는 것이다. 이 엔진을 달았으면 마티즈는 날아 다녔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필자도 한 대 사서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재미없는 엔진이 들어있다. 너무 현실에 충실했던 것이다.

도시에 어울리는 이런 차들은 실용성과 사람들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는 그 무엇이 없다면 절대 팔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생태계에는 고성능이 필요 없다. 메이커들도 이제는 이런 것들을 잘 안다. 시티카라는 세그멘트를 적극적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시티카는 펀카이며 토이카이다. 모든 인테리어는 사람들의 펀(fun)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실 생각해보면 요즘 우리들은 차를 별로 타지도 않는다. 특히 이 글의 독자인 진료실 선생님들이 그렇다. 대부분 차는 무난한 것을 탄다. 진료실 문을 나서면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선생님들은 그대로 차를 세워놓고 다시 아침이면 타고 나온다. 가끔 주말이면 갑갑한 도로, 도시보다 더 막히는 길을 식구들과 놀러가거나 골프를 치러 가는 정도다. 어찌 보면 갑갑한 트랙 속에서 사는 셈이다. 그러니 세상이 재미가 없는 지는 우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정말 재미없게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젊은 선생님들이 차에 대해 물어보면 재미있는 차를 사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몇 년은 타는 셈이니 타고 다니는 차가 재미없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느냐고 되묻곤 한다. 생각이 바뀐 것인지 모르겠으나 사실 소나타급 이상의 차는 너무 크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과밀을 넘어선 도시 생태계에 너무 익숙해진 것일까?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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