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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냉장고로 들어 간 코끼리_설명의무법 관련
[시론] 냉장고로 들어 간 코끼리_설명의무법 관련
  • 의사신문
  • 승인 2016.11.0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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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의사평론가 명이비인후과의원장 전 의료윤리연구회장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그리고 문을 닫는다.” 대한민국 국회에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능력자들이 있다.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의원들이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이라는 풍자는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 추진 될 때 쓰이는 말이다.

2016년 11월 3일 보건복지위원회 새누리당 김승희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이 보건복지위원회 법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개정안의 내용 중에는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유령수술 등을 근절하기 위한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일부 의사들의 비윤리적 행태를 법으로 막겠다는 입법의도이다.

전문직으로서 지켜야 할 윤리와 신뢰를 상실한 결과다. 그런데 개정안에 포함된 다른 내용을 보면 도저히 법을 만들어서 해결할 문제가 아닌 부분도 버젓이 포함되어 있다. ‘설명의무’가 법으로 개정안에 포함되어 있다. 수술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ㆍ치과의사ㆍ한의사가 진단명, 진료 필요성과 방법 및 내용, 진료방법의 변경 가능성과 사유, 의사 성명 등을 설명하고, 서면동의를 받도록 하고 사본을 환자에게 주어야 하며 이를 위반 시 1년 이하의 면허정지와 벌금을 물게 한다는 것이다. ‘설명 의무’라는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 갈 판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지켜야 할 의무(responsibility)에는 법적(legal)의무와 도덕적(moral)의무가 있다. 도덕이라는 영역 안에 법으로 정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든 것이 법적 의무이다. 인간이 지켜야 할 의무이지만 법으로 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을 도덕적 의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부모를 잘 돌보고 부양하라는 것과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는 것들은 인간사회에서 지켜가야 할 미덕이고 도덕적 의무이다. 이런 것들은 법으로 정할 수 없다. 충분한 설명에 의한 동의(informed consent)는 환자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의사들이 가져야 할 도덕적 의무이자 전문직 윤리에 속하는 부분이다. 의사들의 도덕적 의무 행위를 법으로 강제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도덕적 의무를 법으로 정해 놓게 되면 엄청난 저항과 부작용이 발생하고, 숨쉬기조차 힘든 살벌한 세상이 된다. 국회의원으로서 우리 사회를 좋게 만들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먼저 입법하려는 사안이 법적 의무인지 도덕적 의무인지 가려낼 줄 아는 지식이 필요한 것 같다.

코끼리를 억지로 냉장고에 넣지 말고 코끼리 집을 잘 만들어야 한다. 코끼리가 스스로 집으로 들어가도록 도와주는 지혜로운 입법을 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법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가 잘 지켜질수록 안정되고 살기 좋아 진다. 그러기에 이러한 의무들이 잘 지켜지도록 제도를 잘 만드는 것이 입법기관의 책무이고 정부가 할 일이다. 법적 의무와 도덕적 의무의 내용이 서로 다르듯이, 각각 시행 방법 역시 서로 다르다.

법적 의무의 경우는 법적 제재를 가하는 negative 방식을 취하고, 도덕적 의무는 칭찬과 혜택을 주는 positive 방법을 택하고 있다. 법으로 정해진 병역의 의무나 조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법적 제재를 가해 고통을 주는 방법을 택하고, 도덕적 의무에 해당하는 부모 부양 등의 사안은 제도적으로 보상과 혜택을 주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실제로 캐나다의 경우 매 달 부모에게 생활비를 보내는 증명이 있는 경우 세금 감면을 해주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매 달 생활비를 부모에게 보낸 증빙이 있거나 일정기간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경우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것은 의사들이 해야 할 도덕적 의무이다. 이것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것과 같은 일이다.

환자의 자율성 보장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으로는 보장 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다.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육성 정책이 법안으로 만들어 져야 한다. 코끼리가 스스로 들어갈 집을 만들어 주는 진정한 능력자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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