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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사회장단 칼럼] 안산의 추억
[구의사회장단 칼럼] 안산의 추억
  • 의사신문
  • 승인 2016.10.3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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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수 종로구의사회 회장

지난 10월 1일은 토요일이었다.

십여년 전 이었다면 국군의 날로 공휴일 이었을 것이다. 이날은 우리 종로구의사회의 가을 산행 날이었다. 토요 개업 회원들을 위해 오후 3시에 모이기로 하였다. 장소는 무악재 고개를 끼고 있는 안산-무악산으로도 불리운다-을 목적지로 정했다. 

나는 멀지도 않고 ,퇴근 후 곧장 갈수 있는 곳이라 흔쾌히 가기로 했다. 게다가 이곳은 어릴 적에 아주 가깝고 정 든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했다. 나는 인왕산 아래 홍제천을 바라보는 홍제동 끝자락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고, 바로 윗누이와 함께 안산 초등학교를 걸어서 등하교를 하였다.

그러니까, 나는 안산 무악재 고개에 위치한 초등학교를 육년을 다녔으니 추억이 아련할 수 밖에 없었다. 6.25 종전 얼마 후에 총탄 자욱이 선명한 초등 학교 담벼락을 바라보면서 입학식을 치룬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 확성기가 없어 육성으로 교장 선생님의 훈시를 들었고, 삼사년이 지난 후에야 확성기 행진곡을 들을 수 있었다.

학교가 무악재 높은 곳에 있어서 등교 하려면 상당히 걸어 올라가야 했지만, 하교할 때면 한창 신나게 뛰어 내려 올수 있는 이점도 있었다. 나라에서는 무악재 길 확장을 위해, 높은 고개를 깎아 내리는 공사를 한창 진행하기도 했다.

그 언제였던가! 학교운동장 가운데에는 목조뚜껑으로 덮어놓은 지하 터널이 있었다. 당시 놀이시설이 전혀 없던 때인지라, 호기심과 모험심에 가득 찬 애들이 몇 명씩 모여 맨홀 뚜껑을 열고 들어 갔었다. 지하 터널 속으로 들어가 학교 밖 무학재 도로 밑을 가로 질러서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 축대 앞쪽 지하 맨홀로 나오는 아주 긴 모험을 했는데, 위험했지만 그야말로 스릴 넘치는 추억이었다.

이러한 기억 속에 조금은 기분이 들떠진 나는 이날 우리 종로구 산악회원들이 모이기로 한 독립문역 역사체험관 앞 공원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그곳엔 단지 여섯명의 회원 만이 모였을 뿐 이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다른 유명한 산들에 비해 산행코스도 짧고 동네 뒷동산 같은 안산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단출하고 적은 인원이지만 산행코스로 잘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힘차게 올라갔다. 산중턱쯤에 이르니 조금은 숨이 가빠 숨도 고를 겸 쉼터를 찾다보니 잠시 쉴만한 바위쉼터가 평평하게 뉘어 있었다. 벼랑 밑의 바위들 사이에는 여러 그루의 벚나무들이 바위 위를 덮고 있었다.

아- 여긴 내가 어릴 적에 여러 번 올라왔던 곳이 아닌가! 순간 검게 익은 버찌 열매를 따 먹으러 이곳까지 올라왔던 기억들이 살아나,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 온 것 같은 회상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항상 웃고 착했던 임언주라는 친구와 한 학년 위였던 영희 친누이 셋이(학교통학을 같이했으니) 이 바위 위에서 손을 뻗어 버찌를 따먹고 입에 머금은 버찌 씨앗들은 벼랑 아래로 멀리 뱉으며 놀았다. 그 시절에는 이런 것들을 하러 이 바위 까지 자주 올라왔었다. 

그런데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벚나무들은 늙지도, 많이 자라지도 않은 것 같다. 아마도 바위 사이 벼랑에서 잘 자라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도 나무들은 싱싱하고 버찌는 엄청 많이 달려 있었다.

아마 지금의 아이들도 컴퓨터 게임 없던 시절의 우리 때와 같이 밖에서 뛰놀았다면 버찌나무의 열매는 조금은 더 줄어 있었을까?  잠시 목을 축인 우리는 정상이 눈에 보이는 봉화대를 향해 올라갔다. 조금은 험난한 코스였던 바위돌길은 그 지면이 많은 발자국으로 움푹 패여 있었다.

꽤나 미끄러운 길이었지만 다행히도 밧줄 울타리가 있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봉수대 정상까지 올라 갈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저 멀리 왼쪽에는 홍제천으로부터 인왕산·북한산·성루·광화문·남산·한강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지도를 펴 놓은 듯 장관을 이루어 보인다.

예전의 서울여상은 강남으로 이전 된 듯 보이질 않고 주위엔 아파트 건물들이 빼곡하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작은 손바닥만 하게 보였는데, 워낙 날씨가 화창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교실을 두 배로 증축 했는지 ㄴ형 건축물이 ㅁ형으로 운동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당시 운동장 가운데 있던 맨홀뚜껑은 물론 맨드라미 심었던 화단들도 모두 갈색 인조 운동장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내려다 보이는 시내 일대는 예전의 기와집, 한옥 집은 사라지고 모두 하얀 상자 곽을 세워놓은 조형물처럼 보였다. 

하여튼 정상에 올라온 우리는 맑고 화창한 가을 날씨에 모두 감탄해 맞지 않았다. 봉수대를 마주하고 단체촬영을 함으로써 가볍고 부담 없었던 그날의 산행을 기념했다. 정상에서의 하산은 등반과는 다른 느낌으로 꽤나 녹록지 않았는데 중턱 까지의 미끄러운 바위는 모두에게 극도의 조심성을 요하게 했다.

그렇게 집결지였던 독립문 부근까지 내려와 보니 이 부근 일대도 지금 한창 재개발이 진행 중이라 아파트 건물들로 변모되어 가고 있었다. 다만 영천시장 쪽은 옛 건물이 아직 남아있지만 이곳도 언제 재개발이 될지는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산악회장이 갑자기 영천시장 내 잘 알고 있는 순댓집에 가서 순대 맛 만 보자는 말에, 시장도 언제 개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 영천시장 안 튀김집에 들려 조금씩 시식해보았다. 아는 집이라서 그런지 너무 싸게 받아 미안할 정도였다. 귀가길을 위해 사직 터널위쪽 주택가를 한창 걸어 나오다 보니 어느새 사직공원 내를 지나가고 있었다.

우린 사전에 예약된 서촌 횟집으로 가 뒤풀이 술을 각자의 기호에 맞게 먹었다. 어느새 막걸리 몇 잔을 들다 보니, 약간은 마음이 들떠 있는 기분의 나를 보았다. 오늘 버찌바위 위에서 내가 잊고 있던 기억을 찾아낸 것이, 마치 숨겨져 있던 추억의 창고를 열어 본 것 같았다. 그리고 문득 버찌바위 위를 옛 친우와 함께 등반하고 싶은 충동으로 가슴은 벅차 올라있었다.

아- 어릴 적 언주 친구를 빨리 찾아 봐야겠다! 하고 몇 번을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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