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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제2번 〈비밀편지〉
레오 야나체크 현악사중주 제2번 〈비밀편지〉
  • 의사신문
  • 승인 2016.10.3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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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74〉

■창작의 불을 지핀 서른여덟 살 연하와의 비밀 편지

야나체크는 40대에 두 아이를 잃은 후 가정은 불화가 계속되었고 독일계 귀족 출신의  아내는 농촌 출신의 야나체크와 잘 맞지 않아 결혼생활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70대 야나체크에겐 남 보헤미아의 골동품상의 아내인 카밀라 스테슬로바라는 38세 연하 제자와의 연애가 있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로 하여금 창작의 정열을 불태우게 해서 그녀와의 연애가 없었더라면 그가 죽기 전 10년간 모더니즘의 걸작들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현악사중주는 바로 카밀라와 오갔던 약 700통의 연애편지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그대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낮 동안에 광야를 비췄던 태양이 밤에도 떠 있는 것만 같이 한결같다'라는 그녀에게 쓴 연애편지의 한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의 사랑은 지극히 낭만적인 것이었다. `불행한 여인의 초상'이라는 현악사중주 제1번에 이어 이 마지막 실내악곡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카밀라를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신경정신과적인 심리극을 연상시키는 현악사중주 제1번보다 제2번은 보다 긴밀하게 구성된 걸작으로 평가된다. 카밀라는 이 곡 외에도 야나체크의 오페라 〈야누파〉와 〈카차 카바노바〉의 비극적인 여인상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곡은 1928년 2월에 작곡되었으며 반 년 후 그는 갑자기 사망하게 된다. 그 사인은 카밀라의 아이를 데리고 피크닉을 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리고 빗속을 찾아 헤맨 결과 생긴 폐렴 때문이었다고 한다.

체코의 체흐와 슬로바키아의 슬로벤스크 사이의 모라비아지방에서 태어난 야나체크는 그 지방의 민족음악을 소재로 동양풍의 독특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그 민족적 소재를 다루는 방법이 헝가리의 버르토크처럼 철저하지 못하나 그보다 한걸음 앞서서 민요를 분석하고 어법을 추출하여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는 방법을 썼다.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수필 `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Les testament trahis)'에서 “〈표현주의〉라는 말에 잠시 멈춰 본다. 한 번도 자신을 거기에 관계시킨 적은 없으나 사실상 야나체크는 이 말을 전적으로, 문자 그대로 적용시킬 수 있는 유일의 위대한 작곡가이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은 표현이며, 어떤 음정도 그것이 표현이 아니면 존재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단순한 `기교'상의 면, 즉 관현악법의 관례 등이 완전히 부재한다. 그 결과 연주자들로서는 음정 하나하나가 표현인 만큼 그 각 음정이 최대치의 표현력의 빛을 지니게끔 해야 한다. 쇤베르크가 창시한 독일 표현주의는 광란이나 광기 같은 과잉 영혼 상태에 대해 지나친 기호로 특징지어진다. 내가 야나체크에게서 표현주의라 부르는 것은 이 일측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지극히 풍요로운 감정의 부채이며, 어지러울 만치 정밀하게 짜인 상냥함과 야만성, 분노와 평화의 대면이다”라며 야나체크를 향한 애정을 아낌없이 표현하고 있다.

△제1악장 Andante Con moto Allegro 야나체크가 카밀라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되는 악장으로 현악사중주 제1번에서와 같이 맨 처음 안단테로 등장하는 악상이 전곡을 통일하는 주제의 원형이 되고 있다. 곡의 진행이 바이올린과 비올라에 의해 빨라지면서 발전해나간다. 후반부에 첼로의 독립된 선율은 움직임이 단조로운 곡의 흐름을 깨고 있어서 흥미롭다. 

△제2악장 Adagio Vivace 야나체크가 카밀라에게 보낸 편지에 의하면 `당신과 함께 있었던 그 곳에서의 우리가 서로를 원했던 그 천국 같았던 순간을 표현했노라고 하는데 야나체크 내외와 스테슬로바 내외가 1917년 온천지 루하초비체에서 보낸 여름휴가에서 있었던 두 사람간의 관계를 묘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느낌은 아다지오로 느릿하면서도 낙천적인 선율을 노래하는 바이올린에서 알 수 있다. 후반부에서 다시 프레스토로 빨라지는 바이올린의 조급한 선율은 그런 그들의 비밀연애에 파고드는 불안감을 묘사하고 있다. 

△제3악장 Moderato Andante Adagio 야나체크가 느끼는 카밀라의 이미지 자체를 창조해보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그에 걸맞게 중간부에 비올라와 첼로의 규칙적인 리듬 위로 흐르는 바이올린의 선율은 전곡을 통해 가장 뚜렷한 선율미를 보여준다. 이 부분은 야나체크 스스로도 그가 작곡한 가장 아름다운 선율로 여겼다한다. 

△제4악장 Allegro Andante Adagio 야나체크가 연인에 대한 `불안'과 동시에 연인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결국에 채워지는 것으로 끝맺어지는 그리움'을 표현한다. 첼로의 자신감 있는 선율의 반주로 시작한 바이올린의 노래는 곧 이어지는 혼란스런 부분으로 방해받는데 이는 곧 야나체크의 그런 `불안'을 표현한다. 이어지는 춤추며 행진하는 듯한 명랑한 악상이 악기들을 바꿔가면서 불리는데 이는 바로 `채워진 그리움'을 표현하는 사랑의 찬가이다. 이 사랑의 찬가는 전체 곡의 긴장을 풀어주는 카타르시스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마무리 짓는 코다에서도 이 찬가는 되풀이 되면서 악기들의 음색을 마음껏 뽐내게 한 후 화려하게 끝맺는다. 

■들을 만한 음반 
△야나체크 현악사중주단[Supraphon, 1963] 
△스메타나 현악사중주단[Denon, 1976] 
△하겐 현악사중주단[DG, 1988]
△알반 베르크 현악사중주단[EMI,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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