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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헤아려 본 셈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헤아려 본 셈 
  • 의사신문
  • 승인 2016.10.1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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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48〉 

2016년 세계 분자영상학회가 뉴욕 맨하튼에서 열렸다. 10년 만에 방문한 맨하튼은 더 많이 화려해졌고 곳곳에서 오래된 건물을 헐고 더 큰 빌딩을 짓고 있어 번잡하였다. 학회 본부가 타임스퀘어 광장 매리어트 호텔에 있어 나도 그곳에 숙박하였다. `세계의 교차로', `불야성의 거리', `세계 엔터테인먼트 중심지'라는 별명답게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파와 현란한 광고판에 놀라면서도, 여기저기에서 한국어가 들리고 우리 기업 광고판이 눈에 잘 띄어 저절로 마음 속에 자긍심이 생겼다.

맨하튼은 바둑판처럼 잘 정리되어 있어 동서 길은 스트리트, 남북 길은 애비뉴라고 부르고, 그 앞에 일렬로 번호를 붙여 어느 곳이나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놓았다. 이 바둑판을 북서쪽에서부터 남동쪽으로 가로지르는 큰 도로가 브로드웨이다. 이 도로가 42번 스트리트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되어 47번가까지 삼각형 모양의 타임스퀘어 광장이 있다. 1904년 뉴욕타임스 신문사가 여기에 자리 잡으면서 이런 이름이 붙었고 미국의 성장에 따라 발전하다가 1993년부터 재개발하여 마침내 세계적으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번화하고 유명한 광장이 되었다.

타임스퀘어 북쪽에는 원형 극장식으로 거대한 계단을 만들었고 그 아래에 뮤지컬, 연극, 버라이어티 쇼의 티켓부스가 있다. 광장 중앙에는 앙증맞은 크기의 빨간 탁자와 의자 수십 개를 널려놓아 많은 사람들이 계단이나 의자에서 쉬면서 광장을 구경하고 있다. 이 사이를 자유여신상, 스파이더맨, 미키마우스, 엘모와 엘사 등 유명 영화나 만화의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돌아다니고 심지어는 벗은 몸에 성조기 문양 바디페인팅을 한 미녀 모델도 있어 팁을 받고 관광객과 같이 사진 촬영을 한다.

티켓부스에서는 이 지역에서 공연하고 있는 뮤지컬이나 연극 입장권을 판매한다. 특히 오후에는 안 팔리거나 반환된 표를 30∼50% 할인해 주어 기다리는 사람으로 긴 줄을 이루고 있다.

근처에 뮤지컬이나 연극을 공연하는 30여 개의 상업용 극장이 모여 있다. 흔히 3대 뮤지컬로 불리는 `캐츠(Cats)', `오페라 유령', `레미제라블'은 1980년 대에 시작해 지금까지 인기가 있다. 즉, 30년 이상 같은 극장에서 한 작품만 공연하고 있어, `오페라 유령'의 경우 1만2000회가 넘었다고. 이 세 뮤지컬은 모두 탄탄한 원작을 바탕으로, 정교하고 창조적인 무대에서, 귀에 익숙한 아름다운 선율과 뛰어나고 노련한 연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외에도 `미스 사이공', `라이언 킹', `맘마미아', `글리스', `42번 가', `카니발', `알라딘', `위키드' 등이 인기가 있고, 특히 디즈니 회사가 참여하면서 뮤지컬 내용과 형식이 더욱 더 미국성향으로 바뀌고 있다.

타임스퀘어는 항상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다. 중국 북경 천안문 광장의 혼잡과 비슷하다. 내가 천안문 광장에 모이는 사람 숫자를 추산한 적이 있다. 12억 중국사람이 50년 평생에 한 번만 광장을 방문한다고 가정해 보았다. 12억 인구를 50년으로 나누면 1년 동안 찾아오는 사람 수가 되고, 이를 다시 365일로 나누면 이론적으로 하루 방문객 숫자가 나온다. 계산상 6만 5천 명이니 어쩔 수 없이 혼잡하게 되어 있다. 물론 많은 중국인이 평생토록 북경을 구경하지 못 하고, 또 외국 사람들도 많이 오니 실제는 다를 것이다. 이와 비교해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타임스퀘어 광장은 계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통계로는 매년 4천만 명이 방문하고 매일 유동인구는 300만 명이란다.

타임스퀘어에는 백여 개의 현란한 네온사인 광고판이 즐비해 있다. 남쪽과 북쪽 한가운데에 큰 높이의 광고탑이 있고 광장을 둘러쌓고 있는 고층 건물에도 빽빽하게 설치했다. 가장 큰 것으로 20∼30층 높이의 광고판을 마천루에 걸어놓았다. 서로 시선을 끌기 위해 갖가지 디자인, 화려한 색깔을 동원하여 대부분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인근 극장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광고도 있지만, 대부분은 음료, 의류, 전자제품, 자동차 등 유명 제품을 선전하고 있다.

특이하게 한국과 일본의 경쟁 상품들이 이 광장에서 세력을 겨루고 있다. 북쪽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가장 좋은 광고탑에 위에서부터 프루덴셜 생명, 중국 산동반도, 삼성전자, 코카콜라, 현대자동차 선전판이 자랑스럽게 반짝이며 움직인다. 가뜩이나 자리 값이 비싼 곳인데 이 북쪽 광고탑 자리는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라고 들었다. 이와 맞서 남쪽 광고탑에는 펩시콜라, 야후와 일본전자인 도시바, 소니, 파라소닉을 선전하고 있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에 엘지전자, 혼다자동차, 벤츠, 디즈니 광고가 보이고 남쪽 끝에 뉴욕 증권시장의 현황과 시세표가 줄을 이어 돌아가고 있다.

이곳 광고 전쟁에서 우리나라 회사가 일본, 중국기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어 기뻐하다가 다시 생각하여 보았다. 막대한 자금을 들여 광고하면 결국 비용은 그 제품의 가격에 반영된다. 즉, 광고료에 해당하는 거금을 소비자가 타임스퀘어 광장 측에 지불하는 꼴이다. 현란한 광고 뒤에 숨어있는 계산법이다. 이상하게도 이곳에 유럽회사 광고가 아주 드문데, 그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실속보다 겉모양을 중요시하는 후진적인 우리 생활 태도와 비슷하지는 않은지?

이곳을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이 새해를 맞는 볼드롭(Ball drop) 행사이다. 매년 12월 31일 100만 명의 인파가 발 디딜 틈 없이 모여 인기가수 공연도 보고 올드랭사인 노래를 합창하며 한 해를 보낸다. 새로운 해가 오는 순간을 관중이 함께 카운트 다운을 하면서 축하한다. 정각 새해가 되면 남쪽 광고판 위에 설치한 공이 떨어지고, 폭죽은 하늘로 올라가 터지고, 동시에 색종이가 하늘 가득 머리위로 떨어진다. 옆 사람과 서로 얼싸안으면서 축복하고 남녀끼리는 새해 키스를 나눈다. 새해와 성탄절에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는 온 세계로 생방송 된다. 또 ABC 방송국은 아침 뉴스인 `굿 모닝 아메리카'를 매일 이곳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광장에서 공연과 인터뷰를 곁들인다. 2013년 싸이가 `강남 스타일'을 공연한 곳도 타임스퀘어이다.

아마도 철저한 조사와 세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 광장이 기획, 운영되고 있을 것이다. 세계 정상급 연극과 뮤지컬을 유치하여 사람을 모으고, 틈틈이 언론을 이용해 광장을 알리고, 볼드롭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 세계인의 머리 속에 꼭 방문해야 할 곳으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해 광장은 항상 각국 사람으로 가득 차고, 지역 상업권은 호황을 누리고, 광고로 천문학적 수입을 올린다. 공연하는 작품으로 미국식 생활과 이념을 선전하고 전 세계에 전파한다.

정말로 타임스퀘어는 미국의 문화경제 패권주의를 상징하고 실현하는 메카가 아닌가! 우리가 이 `세계의 불야성'에 아무 생각 없이 뛰어들고 있는 불나방이는 아닌지…..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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