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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당국이 아닌 국민이 판단하고 행동해야”
“보건당국이 아닌 국민이 판단하고 행동해야”
  • 이지선 기자
  • 승인 2016.08.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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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위기대응 2차 포럼 개최…전문가들, 윤리원칙·알 권리·공개기준 합의 등 제안

환자·의료기관의 정보보호와 공개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던 메르스 사태를 통해 앞으로 닥칠 공중보건위기에 대비하고 대응할 위기소통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30일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개최된 ‘공중보건위기대비대응과 위기소통의 역할’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메르스 사태를 되돌아보고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의 정보공개의 타당성, 위기 소통 방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

박기수 질병관리본부 위기소통담당관

박기수 질병관리본부 위기소통담당관은 제한된 시간 내에 국민이 최적의 결정을 하게 하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며 그 바탕에는 신뢰가 기반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헌법에서 명시한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질병관리 및 예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 이는 보건당국이 아닌 국민이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박 담당관은 “일관성 없는 메시지, 뒤늦게 공개된 정보, 가부장적 태도, 루머나 오보에 늑장대응, 내부 갈등 공론화 등 메르스 당시 이 다섯 가지의 커뮤니케이션 실패 유형을 모두 저질렀다”고 지적하고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질병관리본부에는 위기관리담당관 등 직제를 새로 만들고, 역학조사관도 확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질병관리본부는 전문가와 함께 정보공개 원칙을 만들고 공개했으며, 향후 관련 법령도 내부 검토를 통해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또 100인의 국민소통 자문단을 구축해 운영하는 등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한 소통 방안을 모색, 실행할 예정이다.

박 담당관은 “위기 상황 발생 시 신속·정확·투명한 소통을 통해 국민들이 해당 질병 위험수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위험을 인식하고 행동하게 함으로써 국가의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일상생활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데 목적을 두겠다”고 다짐했다.

배종면 교수(제주대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앞서 ‘감염병 유행 관리를 위한 정보 공개 윤리원칙’을 주제로 발제에 나선 배종면 교수(제주대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는 “감염병 유행은 개인과 공중 간의 이익 충돌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신종 감염병이 유행하면 불확실성을 안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방역 조치 결정에 있어 윤리원칙이 지켜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거(evidence), 효과(effectiveness), 윤리(ethics)를 확보해야만 한다는 것. 하지만 지난해 메르스 사태에서는 이런 윤리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배 교수는 “지난해 메르스 유행에 있어 병원명 비공개와 1차 양성자 개인정보 공개에 있어 공중보건 윤리원칙, 선제적 대비 원칙, 시라쿠라 원칙 등에 비쳐 보았을 때, 모두 윤리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면서 “이런 위기 상황에서 윤리 원칙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의사결정을 위한 윤리체계를 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패널토론에서는 공중보건위기 상황 속에 정부와 전문가, 언론의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가 좀 더 심도 있게 진행됐다.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환자 이전에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윤리와 자유가 얼마나 인정돼 왔었는지부터 고민해봐야 한다”면서 “지금도 메르스 의심 환자가 ‘잡혀’ 오지만, 이들은 자신의 자율성을 말할 처지가 못 된다. 개인 자유의 최소 제한, 대안적 조치가 선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제혁 질병관리본부 위기대응총괄과 사무관은 메르스 사태 당시 충분히 자료 수집이 되지 않아 정보 제공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감염병 관리에 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건보공단, 심평원, 경찰서 등 각종 기관으로부터 역학조사 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법적 근거를 가진 지 얼마 안 됐다”면서 “역학조사관 30명을 이제야 뽑았고, 이들이 2년간의 트레이닝을 거쳐 정규 역학조사관이 되면 세계 각지에서 감염병 관련 정보를 수집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 사무관은 또 “정보를 어떻게 분리할 것인 지 그 공개 기준을 만들고, 개인정보보호와 전체 국민 니즈 사이에서 합의를 봐야 한다. 정부 내부에서도 환자 정보를 어디까지 공개해야 하는 지 아직 논의 중인 상황”이라며 “언론에서도 관련 기준이 필요할 것이며, 나아가 독자 측면에서도 어느 수준까지 정보를 요구해도 되는 지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서명옥 강남구 보건소장은 “질병 관리보다 질환에 대한 두려움, 불안에 떠는 대중을 관리하는 게 더 우선적이고 중요하다. 질환 관리는 의료인들이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는데, 대중 의 불안 관리는 보건, 미디어 전문가, 지역사회 단체 등이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 보건소장은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에게 좀 더 신중히 위기 상황에 접근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특종도 좋겠지만, 메르스 등 어떤 감염병 환자 발생 시 그 환자가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기사를 신중히 써주셨으면 좋겠다. 기사의 단어나 내용으로 보건소의 하루 민원 전화가 3000통이 될 수도 있고 300통이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 출신 조동찬 SBS 의학전문 기자는 정보 공개, 위기 대응 커뮤니케이션 이전에 의학적 판단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기자는 “병원명 공개 여부도 중요하지만, 메르스 사태 당시 최초의 의학적 판단이 맞았더라면 정보공개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위기 때에는 좀 더 보수적으로 폭넓게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서 “언론 입장에서는 방향성을 가진 정돈된 자료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미스커뮤니케이션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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