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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단칼럼]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의장단칼럼]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 의사신문
  • 승인 2016.08.3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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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석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전문위원

해발 4095m, 키나발루산에 다녀왔다. 보르네오섬 북부, 말레이지령에 속한 동남 아시아 최고봉이다. 보르네오섬 원주민들인 카다잔족은 이산을 아키나발루(죽은자가 존경받는 곳)라고 부르며 신성시 하고 있다. 산 이름도 이에서 유래한다.

오르고 내리는데 1박2일의 여정이었다. 첫날은 해발 1800m에 위치한 공원관리소(Timpohon gate)에서 출발하여 3200m 산장(LabanRata Rest house)까지 올랐다. 다음날 새벽 2시부터 산행을 시작하여 정상(Lows Peak, 4095m)에 오른후 산행을 시작했던 지점으로 하산했다. 17시간을 꼬박 걸었다. 등산과 함께 내리기 시작한 비는 하루종일 내렸다. 열대 지방의 비는 촘촘하게도 내렸다. 그마나 바람이 불지 않아 다행이었다.

홈빡 젖은 채 도착한 3200m 산장에서는 밤새 추위에 떨었고 고산증상인 두통이 밀려왔다.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굉음을 내고 있었다. 내일 등산은 어떻게 해야하나? 이런 기상상태라면 포기해야 하는데… 이 걱정 저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새벽 1시 30분 비는 그쳤고 하늘에 별이 보였다. 산장에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헤드라이트를 켜기 시작했다. 어둠과 안개 속을 뚫고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한걸음씩 천천히, 천천히, 그렇게 3시간 만에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오른 이들 중에는 8살짜리 일본인 어린이도 있었다. 산행 내내 쉼터에서 얼굴을 마주쳤었다. 볼 때 마다 안쓰러웠다. 어린아이에게는 무리한 일정일 텐테, 부모가 무슨생각으로 저 어린 것을 끌고 정상까지 올라왔나 싶었다. 한참 뒤 하산길에서 또다시 만난 일본인 가족들, 어느샌가 아내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아빠는 가이드와 뒤처져 힘들게 걷고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저 가족들 4명은 억지로 무리한 산행을 하고 있는거야. 리조트에서 편하게 쉬지, 뭐 볼게 있다고 이 높은 산에 애들까지 끌고 와서 보는 사람 피곤하게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못마땅해서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다. 정작 그 가족들은 웃으면서 산행을 하고 있었다. 맑고 행복해 보였다. 엄마와 딸 둘이서 앞서가면서 아빠가 안보이면 기다리고 서있었다가 아빠가 보이면 좋다고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지막까지 그들은 너무도 즐겁게 그들만의 산행을 마무리 한 듯이 보였다. 정작 힘든 건 8살짜리 꼬마가 아니고 나였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은 여러 부류다. 산 속에서 바람소리 들으며 아무 생각없이 걷기 위해서 산을 찾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일정구간을 일정시간 내에 주파하기 위해서 도전적으로 산행을 한다. 또 어떤 이들은 쳐다만 봐도 아찔한 절벽에서 스릴 넘치고 멋진 암벽산행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산행을 하면 가끔씩 심사 뒤틀리는 일들이 벌어진다.

`뭐하느라고 이렇게 늦게 내려와! 기다리는 사람을 생각도 좀 해야지'- 흥, 100m 달리기 경기하냐? 누가 그렇게 빨리 가라고 했냐' ` 산행이 뭐 이래, 너무 밑밑하고 싱거워. 이건 등산이 아니라 초등학생들 소풍같다' - ` 그래 너 잘났다. 특수부대 요원같은 체력을 가져서 좋겠다.' 다들 내놓고 말은 안 하지만 속은 부글거린다. 애써 화를 참으면서 다짐한다. `다시는 너랑 같이 산에 안온다.' 일주일 내내 좁은 진료실에서 까칠한 환자들 보다가 힘들고 지친 나를 달래려고 찾은 산이다. 나랑 산행 스타일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 받으려고 산에 온 건 아니다. 결국 기분만 상한 채 씩씩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화가 났을까? 산행을 빨리 끝내는 친구는 일부러 내 화를 돋구기 위해서 뒤도 안 돌아 보고 산악 마라톤 같은 산행을 했을까? 산행이 소풍같다고 말한 친구는 나를 무시하고 내 기분 잡치게 하려고 작정하고 자신의 강한 체력을 과시했을까? 키나발루산에서의 일본인 부부는 안쓰러워하는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녀들 극기 훈련시키려고 4000m가 넘는 곳에서 산행을 했을까?

가만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 보았다. 이 세상 중심에 똑똑하고 잘난 내가 존재한다. 나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이 있는 것이다. 나만이 남들이 못보는 것을 보고, 못 듣는 것을 듣고 있다. 나만이 제대로 읽고 분석 하면서 살고 있다. 혼자만 잘났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살면 그래도 봐줄만 하겠는데, 한걸음 더 나가서 한 수 가르치려고 덤벼든다. 상대방의 입장이고 뭐고 생각지 않는다. 우매하고 못났으니 일깨워 주어야지하는 사명감까지 갖는다. 상대가 고분거리지 않으면 목소리 높이고 위압감 조성해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든다. 이쯤되면 상대방도 부처님 반토막인가, 가만히 있을 턱이 없다. 다툼과 미움이 일어난다.

나를 짜증나게 만든이는 아무 데도 없었다. 그들은 평범한 일상생활을 했을 뿐이고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고 있었다. 키나발루산에서 마주친 일본인 가족들도 그들의 문화적 습관대로 가족산행을 즐긴 것이었다. 그저 내마음에 안드니까 화를 내고 결과적으로 나만 손해본 꼴이다.

똑같은 일이 정부와 의사 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고 경제적 효용성을 높인다는 기치아래 수많은 의료정책을 쏟아 내왔다. 규제일변도의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으로 정책을 밀어 부쳐왔다. 어쩌다 의사들이 반발이라도 할라치면 언론매체를 이용해서 제 밥그릇만 챙기는 저급한 이기주의 집단으로 몰아붙였고, 그래도 성에 안 차면 공권력을 동원해서 의사들의 목소리를 막아 버렸다. 정부의 입장만 되풀이해서 주장했지, 한 번도 의사들의 정당한 요구에 대해서 귀기울이고 이해하려고 들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모든 이유를 일일이 다 알 필요는 없지만, 이유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고 있어야한다. 의료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도 합당한 이유가 있듯이 의료정책을 반대하는 의사들에게도 정당한 이유가 있다.

소신있고 책임감있는 정책입안자들이라면 책상을 박차고 의료현장으로 나와야한다. 의사들의 삶의 현장인 진료실, 응급실, 수술실에서 의사들과 7일만 함께 생활해 보자. 그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정책이 시행될 때 실질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환자인 국민들의 입장에서 불만사항을 무엇인지 면면히 살펴보고 분석해 보시길 바란다.

이제는 우리모두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이기심을 버리고 넓은 마음을 가져야할때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고 “너와 나는 다를 뿐이다.”

서로 다르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한다.

깨달음을 얻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지루한 여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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