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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포커스]`매년 반복되는 불공정 수가협상…앞으로 과제는?'
[이슈 & 포커스]`매년 반복되는 불공정 수가협상…앞으로 과제는?'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6.08.30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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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짜놓은 `각본'에 공급자만 헛물켜는 `협상' 

수가협상 핵심인 총 밴딩 폭, 협상 전 공단 재정위서 이미 결정
재정위 위원 상당수 가입자·공익 대표로 공급자 의견 반영 안돼
불공정 협상 개선 위해 밴딩 폭 공개·건정심 위원 조정 선행돼야

사진은 2017년 수가협상에 앞서 사진 건보공단 성상철 이사장과 6개 공급자단체장 상견례 사진.

지난 6월 1일 새벽 3시를 넘긴 시각. 2017년도 유형별 수가(요양급여비용)협상이 전 유형 타결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등 각 의료공급자 단체가 수차례의 피 말리는 릴레이 협상을 벌인 끝에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이다.

협상 결과를 살펴보면, 건강보험 재정 총 밴딩폭(추가소요재정분)은 8134억원으로 전년 6503억보다 1631억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고 의협은 3.1%, 병협은 1.8%, 치과의사협회는 2.4%, 한의사협회는 3.0% 인상률을 기록했으며, 약사회는 역대 최대치인 3.5% 인상률에 협상을 체결했다.

평균 인상률은 전년 1.99%보다 0.38% 오른 2.37%로 사상 최대치이며 지난 2008년 유형별수가협상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이후 6개 공급자단체가 빠짐 없이 타결한 것은 2014년 협상에 이어 두 번째다.

협상이 끝나고 공단 측 수가협상단장을 맡은 장미승 급여상임이사는 “올해 수가협상은 약 17조원에 이르는 공단 누적 흑자로 인해 공급자들의 기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 쌍방 간 간극을 좁히는 데 난항이 있었지만 지난해 `메르스 사태' 당시 의료계가 헌신적으로 대처한 점과 어려운 의료계 경영현실을 감안해 전향적으로 협상에 임했다”고 밝혔다.

의협 김주형 수가협상단장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공단에서 의원급 의료기관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메르스 사태에서 의료계가 보여준 헌신을 인정해 준 덕분에 소정의 성과를 이뤘다”고 말했고, 병협 조한호 수가협상단장 역시 “100% 만족할 수는 없지만 공단 협상단도 많은 노력을 해줬다”고 긍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공급자와 보험자가 큰 무리 없이 원만히 협력해 3년 만에 한 단체도 빠짐 없이 수가협상이 체결된 것은 분명 값진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주목할 점은 사상 최대치의 인상률로 전 유형이 체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의 불만이 여전히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의 근본적 원인은 계속되는 저수가 현실과 불공정한 수가협상구조. 이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만성적인 저수가 체제에서 조족지혈(鳥足之血) 수준으로 수가가 인상돼 봤자 의료계 경영현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 뿌리 깊은 불만이 일선 의료현장에 널리 퍼져 있어 사상 최대치의 인상률로 전 유형이 타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의협이 3.1% 인상률로 협상을 체결함에 따라 내년도 의원급 의료기관 초진료는 1만4860원으로 결정됐다. 2016년 1만4410원에서 불과 450원 인상된 것이다. 재진료도 2016년 1만300원에서 1만620원으로 320원 인상됐다.

의료수가가 원가의 7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아무리 최대치의 인상률을 기록했다 하더라도 의료가 정상적으로 회복될 리는 만무하다.

의료계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일차의료를 책임지는 국민건강의 기본 파수꾼이라 할 수 있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우 경영난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어 의원급 진료비 점유율조차 최근 3년간 꾸준히 하락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건강보험 주요통계'에 따르면 2015년 건강보험 총 진료비는 57조9593억원으로 2011년 46조 2379억원에서 최근 5년 간 11조 7214억원(25.3%) 증가했지만 의원급 진료비 점유율은 최근 3년간 연속적으로 감소하여 2014년 20.8%에서 2015년 20.3%로 0.5% 감소했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이 48.6%로 전년대비 0.7% 증가한 것과 비교할 때 의원급의 경영난이 얼마나 더 심각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20%대의 점유율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매년 지적되고 있는 또 한 가지 심각한 문제는 불공정한 수가협상구조. 매년 수가협상 시기가 돌아올 때 즈음이면 공단은 공단대로, 공급자단체는 공급자 단체대로 각각 수가협상단을 꾸린 뒤, 공단 이사장과 각 단체장간 상견례를 시작으로 각 수가협상단이 물고 물리는 실무 협상을 수차례 거듭한다.

양측이 이처럼 노력을 기울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정작 수가협상의 핵심이 되는 총 밴딩폭(추가소요재정분)은 협상을 시작하기 전 열리는 공단 재정운영소위원회(이하 재정위)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속은 비었는데 겉치레만 요란한 내허외식(內虛外飾)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재정위에서 결정된 밴딩폭은 공단 수가협상단만 그 내용을 알고 있고 공급자단체에는 공유조차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공급자 협상단은 수가협상 최종마감일까지도 이를 알지 못한 채 별 의미 없는 데이터만 주고받다가 막판에 가서야 비로소 진짜 협상이 진행되는 형국이 매년 반복된다.

이런 이유로 김주형 의협 수가협상단장은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임에도 불구하고 “공단 수가협상단이 재정위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협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큰 재량권이 없는 것 같다”고 큰 실망감과 허탈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신현희 책임연구원 역시 최근 보고서를 통해 “총밴딩폭을 미리 정한 후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규정이 현행법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에도 재정위가 협상 전 임의로 결정한 후 협상이 진행되어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재정위가 지나치게 협상에 개입하고 있어 공정하고 자유로운 계약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공익·가입자 대표들로만 채워진 재정위 구성도 큰 문제다. 현재 재정위 위원은 직장 및 지역 가입자 대표와 공익대표 각 10명씩 구성되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어 의료공급자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다.

신현희 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의 경우 11개의 동일 단체가 공단 재정위와 보건복지부 건정심 위원으로 활동했고, 6명의 위원이 양 쪽에 중복 소속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수가협상이 공단이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되고 공급자는 헛물만 켜는 촌극이 지속되자 의료계는 공단이 일정한 시기에 총밴딩폭을 공개해 수지를 함께 반영하고 상호 존중과 소통이 가능한 계약이 되게 하며, 재정위도 공급자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단도 매년 수가협상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해 공급자와 보험자 간 협상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자 협상 프로세스 개선 필요성을 느껴 의료계와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논의키로 했지만 공단 측의 밴딩폭 공개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장미승 급여상임이사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밴딩폭을 공개하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은 포커게임에서 패를 미리 보여주고 승부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고 부정적 인식을 나타낸 바 있다.

또한 밴딩폭을 미리 공개한 후 협상이 진행되면 각 공급자단체가 나눠먹기를 위한 눈치싸움으로 수가협상이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수가협상제도 도입 이후 몇 번이나 비슷한 상황이 발생되기도 했다.

경제학에서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한쪽이 재화나 서비스 등의 특징을 감춰 불공정 거래를 하는 `역선택'이나 본 의도를 숨기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결국 정보를 가지지 못한 쪽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경고한다.

협상의 핵심이 되는 밴딩폭을 한쪽만 알고 진행되는 공단과 공급자 단체의 수가협상도 여기서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 6월 29일 진행된 `2017년 요양급여비용 계약 체결식'에서 각 공급자단체장들은 불공정한 수가협상 구조의 개선과 적정수가를 통한 적정부담을 이구동성으로 강조했다.

의협 추무진 회장은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과 국민들의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 욕구 충족, 그리고 환자안전보장을 위해서는 적정수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고, 병협 홍정용 회장은 “현재의 수가협상 구조를 앞으로도 계속 유지한다면 아무리 공단에서 생각을 해준다 하더라도 의료환경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배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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