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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천후로 포기하려 했던 정상…정복에 만족
악천후로 포기하려 했던 정상…정복에 만족
  • 의사신문
  • 승인 2016.08.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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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산악회, 키나발루산(4095.2m, Kinabalu Mt.) 등정기(2016. 7.30.∼8.1.)
백대현 서초·방배성모정모정형외과의원

높이 4095.2m의 키나발루산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키나발루산 꼭대기에서 또 다른 삶을 산다고 알려진 전설을 가지고 있는 산이고, 말레이시아 사바 주 북부에 있는 산으로 보르네오 섬의 척량 산맥인 이란 산맥의 북쪽 끝에 해당하며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오래된 지괴에 속합니다. 산 이름은 토착민 카다잔족의 정신적 고향인 아키나발루에서 유래하는데 이는 `죽은 자가 존경받는 곳'이라는 뜻이고, 말레이시아는 1962년 이 일대를 중심으로 국립 공원 지역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조해석(관악 조내과의원·회장), 노민관(강동 노민관가정의학과의원·등반대장), 유승훈(강서 보아스이비인후과의원·총무), 양종욱(마포 양이비인후과의원), 연재성(서대문 항미소외과의원), 황홍석(은평 우리눈안과의원) 그리고 필자 이렇게 일곱 명의 원장님들은 지난 7월30일 토요일 저녁 코타키나발루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인천 공항을 출발하였습니다.

영종도 인천국제공항은 여름 휴가 기간을 맞이하여 해외로 출국하는 관광객들이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시기인데다가 주말이라 출발하는 비행기가 너무 많아서 예상 시간보다 무려 2시간이나 늦게 공항을 출발하였습니다. 한 가지 출발 전 아쉬웠던 것은 여름휴가 기간과 겹쳐서 그리고 2009년도에 우리 서의산 모임에서 이미 키나발루산에 다녀오시신 회원들이 많으셔서 그런지 많은 회원들이 참석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키나바루산 산행 간략지도

5시간30분의 비행 끝에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한 후 2시간 가량 차를 타고 이동하여 키나발루 산 내에 있은 `키나발루 헤리티지 리조트'에서 4시간 정도의 잠을 청한 뒤 2016년7월31일 일요일 아침에 기상하여 대망의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버스로 30분 정도 이동하여 산행 출발 장소인 팀포혼 게이트(Timpohon gate/1866.4m)에 도착하여 현지 시간 오전 10시부터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문제는 날씨였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비가 오고 있어서 오늘의 등산후 하루 잠을 자고 갈 산장까지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 같았으나 내일 월요일 새벽 2시에 있을 키나발루 산 정상 도전이 날씨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첫날 등산 내내 내리는 비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고, 또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와서 산 정상까지는 꼭 가야는 하는데….

7월31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팀포혼 게이트에서의 시작한 산행도 그칠줄 모르는 굵은 비로 인해서 7명의 대원들 모두 애를 먹었습니다. 빗속에 힘들었지만 정상 등정을 하게 될 내일 새벽의 기적적인 좋은 날씨를 기대하면서 참고 또 참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나마 40∼50분 산행마다 잠시라도 비를 피할수 있는 지붕이 있는 오두막 집 처럼 생긴 쉼터들은 그나마 큰 위안이었습니다. `칸디스 쉼터', `우바 쉼터', `로위 쉼터', `멤페닝 쉼터'를 거쳐서 오후 1시경 `라양라양 쉼터'에서의 점심 식사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해결을 하였습니다. 그나마 비를 맞지 않으면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적잖은 행복감이 밀려 온 순간이었습니다.

도시락과 등산시 필요한 일부 물품들은 현지인 포터 두 명을 고용하였는데, 이러한 포터들은 일본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는 볼 수가 없는 것이었고, 4년전 백두산 등반시 천지까지 오르는 서파(서쪽 코스)의 1442계단을 따라 줄줄이 있었던 중국인 포터들과 마찬가지로 후진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일하는 도우미들은 이번 산행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키나발루산 도우미들의 일당은 한국의 수준으로 환산하면 노동 강도에 비해서 비싸지는 않다는 생각이지만 말레이시아 일반 노동자의 급여와 비교해 보면 하루 일당 금액으로는 상당히 높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힘든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하는 것이리라.

고산 등산시의 또 다른 힘든 점은 내리는 비도 비이지만 3천 미터가 넘어가면서 시작된 고산증이었습니다. 대원들 중에는 물론 고산증이 거의 없이 산행하시는 강철 체력의 대원들도 계셨지만 저의 경우 아주 심하지는 않았지만 어지러움증, 두통, 호흡 곤란 등으로 단시간만 걷고 쉬고, 조금 걷고 또 쉬어야만 했습니다.

고산 지대에서의 산행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입니다. 또한 양말과 등산화, 등산복이 젖으면 산행이 무척 힘듭니다. 산행 중에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더 심하게 쏟아졌습니다. 필자의 경우는 이번 산행 한 달 전에 새로 구입한 바지와 등산화 덕을 크게 보았습니다. 새 것이라 그런지 비에 덜 젖어서 새것으로 준비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등산하는 내내 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성공적인 산행은 갖추어진 장비가 좌우할 만큼 장비가 중요합니다. 만일의 날씨와 사태에 대비하여야 좋은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은 어쩌면 등산 시에 가장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후 `빌로사 쉼터', `파카 동굴 쉼터'를 거쳐서 약 7시간의 산행 끝에 오후 5시에 드디어 하루 1박을 하고 갈 `펜던트산장(3314M)'에 도착하였습니다. 많은 비로 등산화, 양말, 등산복이 비에 젖은 채로 산행을 해야 했던 어려운 산행이었습니다. 내일의 정상 도전을 위해서 이곳에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있었는데 산장이 몇 개나 더 있기 때문에 족히 1∼200명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꿀맛 같은 저녁 식사를 `라반라타산장(3273M)' 에서 하면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맛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따뜻하고 비교적 푸짐하게 차려진 식사와 맛있는 과일, 커피 이런 것 또한 산행 중간에 위치한 비교적 시설이 잘되어 있는 산장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기쁨이었습니다.

비는 저녁에도 밤에도 그치지 않고 내렸습니다. 오히려 비는 더 굵어졌고, 바람도 더 세차게 불었습니다. 이런 날씨로는 내일 정상까지의 산행은 불가능한 것이 명약관화 하였습니다. 오늘의 등산 중에 산행을 마치고 하산 중인 한국인들 산악회 대원께서는 오늘 새벽에 날씨가 좋지 않아서 20여명의 일행 중 단 2명만 정상 도전에 성공했다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일 아침 날씨는 하늘이 도와주기를 바라는 마음 더욱 간절해졌습니다.

그러나 회의적인 것은 내일의 일기예보였습니다. 검색을 해보니 설상가상으로 정상을 도전하는 내일 월요일 새벽에는 비뿐만 아니라 천둥, 번개까지 예보되어 있었습니다. “내일 새벽의 정상으로의 산행은 99% 불가능하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내일 오전 2시에 시작하는 산행을 위해서 저녁 7시경에는 산장에 있는 대부분의 산악인들은 잠에 들었습니다. 필자는 어차피 날씨로 인해 산행이 거의 불가능할 거 같으니 더 잠을 잘 수 있겠거니 하고 밤9시가 넘어서야 잠을 청하였습니다.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내일 산행이 걱정이 되어서인지 잠을 자면서 몇 번이나 깼는지 모르겠거니와 잠을 깰때 마다 머리 위 창문 밖을 보면서 날씨가 어떤지를 확인하였습니다. 여전히 내리는 비에 “나원 참 혹은 망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발 하늘이 좀 도와줘야 할텐데…”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또 잠이 들었나 봅니다.

기상 시간인 오전 2시보다 1시간 앞선 오전 1시에 또 잠이 깨서 숙소에서 일어나서 산장 밖의 날씨를 확인해 보았지만 비와 바람은 그칠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세찼습니다. “아! 이제는 완전히 틀렸구나” 작년인 2015년 여름에 일본 북해도에 있는 산인 리시리산(1721M)도 나쁜 기상 상태로 정상 도전에 실패하지 않았는가. 작년에 이어서 두해 연속이나 이 멀리까지와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가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4년전인 2012년 서의산의 백두산(2744M) 산행시에는 산행 내내 천지를 깨끗하게 볼 수 있었던 거의 구름 한점 없었던 아주 드문 날씨였었는데, 3대가 덕을 쌓아야지만 볼 수 있다던 백두산 천지였는데”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키나발루산 정상을 위한 산행은 확실히 틀렸으니 좀 늦게까지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잠을 청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잤을까. 갑자기 일행중 누군가가 “야아. 비가 안온다 !” 라는 활기고 기분 좋은 외침이 들렸습니다. “엥! 이게 뭐지”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세차게 내리던 비였는데 밖을 나가 보았습니다. 정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친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산의 정상에 오르고 못으로는 것은 하루 차이가 아니라 불과 몇 시간 아니 한 시간 차이구나' 필자의 입에서는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정상 정복을 위해서 등산 장비를 갖추고, 고산증에 대비하여 준비한 약도 먹고, 우리 대원 7명은 8월1일 월요일 오전 2시45분 정상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헤드 랜턴은 필수였습니다.

새벽 산행 중에 수많은 산악인들의 길게 뻗은 헤드 랜턴에서 나오는 일련의 불빛 행렬은 또 다른 장관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쁨도 잠시 산에 오를수록 고산증은 심해져서 몇 분 등산 후에는 한참을 쉬었다 가는 것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필자는 즉석에서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서 40발자국을 걸어 간 후 잠시 휴식하고, 또 이렇게 반복하고, 이렇게 목표를 정하고 산행을 하였습니다. 조건은 모두에게 마찬가지지 않는가. 모두들 고산증이 너무 심하면 중간에 포기하고 가야지 하는 마음은 가지고 갔지만 필자 생각에는 한 분도 그냥 포기하고 내려갈 위인은 없었습니다. 나 또한 그랬습니다.

생애 한번 뿐일 키나발루산 산행, 이왕 온 거 기필코 정상을 밟아 수료증(Certificate)를 받아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쩌면 수료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도전 정신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인줄 모르겠습니다. 아마 대원들 모두 중간에 포기하고 가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였으리라.

하산 후에 있을 나를 반갑게 맞아줄 호텔에서의 따뜻한 물로의 샤워와 맛있는 식사를 생각하면서 나는 지금 걷고 또 걷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윽고 8월1일 월요일 오전 6시30분 정상(로우봉, Low peak, 4,095.2M)에 도착했습니다.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일출을 보려고 오전 2시부터 기상하여 산행을 하였으나 일출을 보기는 힘든 날씨였습니다.

날씨만 좋다면 하늘에 떠있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고, 멋진 일출도 볼수 있는 이곳 정상이지만 오늘은 정상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시다시피 아주 높은 산의 산 정상에서는 오래 머물지는 못합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춥기 때문입니다. 단지 몇 분간만 머무릅니다.

역시 남는 것은 사진. 산 정상 푯말이 보이게 단체 사진을 찍고 우리 일행은 정상에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산 정상을 정복했으니 하산 길은 얼마나 가볍겠는가. 고산증에 대해서도 하산 길은 거꾸로이니 호흡 등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산 정상에서 일출은 보지 못했지만 간간히 보았던 산 밑의 정경, 적은 수였지만 반짝 거리던 별들은 잊지 못할 듯합니다. 100% 불가능해 보였던 정상 정복을 기적같이 정상을 밟은 우리 대원들, 하늘이 도와야 정상도 밟을 수 있는 평범하지만 숭고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은 우리 일행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또한 기쁜 마음으로 산행을 마쳤습니다.

산행을 마칠 때쯤 등산화 밑창이 떨어지는 행운을 누렸던 노민관 등반대장님을 보면서 이는 어쩌면 한 개인이 아닌 우리 대원들 모두의 행운과 행복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산행 후의 모임 자리에서 서의산 모임 조해석 회장님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산에는 왜 가는 겁니까?” 물론 세계 최고봉인 히말라야 산맥의 에베레스트산(8848M)을 1953년에 세계 최초로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Edmund Hillary, 1919∼2008)경은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1924년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라는 명언을 남긴 채 의문의 실종을 한 조지 라이 말로리(George Leigh Mallory)라는 산악인도 있었습니다.

이번 산행에 동행한 한 원장님께서는 산속에서 듣는 새소리, 물소리 등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아서 산에 간다고 하셨고, 정상에 오르면 시야가 확 트이고 그것을 통해 삶의 힘든 과정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느껴서 좋다는 원장님도 계셨고, 등산의 효과는 신체는 이완되고, 잡념은 줄어드는 효과, 자연의 소리가 가져다주는 소리의 효과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명상의 효과 등이 있을 것입니다.

필자는 산에 왜 가느냐는 질문을 받고, “저는 아무 생각 없이 산에 갑니다”라고 뜬금없이 대답하였고, 글을 쓰는 지금에도 멋진 말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육체 건강을 위해서 산에 가던지 정신 건강을 위해서 산에 가던지 등산은 어쩌면 자연과 나와의 일체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을 뒤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일 듯합니다.

이제 산행은 끝났고 지금은 집에서 편안하게 지난 시간들을 회고하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히말라야에 있는 고산을 갈 때에 간혹 4천미터 이상의 고산에 다녀왔다는 수료증을 현지에서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히말라야쪽 산행을 위해 4095미터인 이곳 키나발루 산에 오시는 분들도 간혹 있다는 현지 가이드의 말을 듣고, 우리 일행의 다음 목적지는 어쩌면 히말라야가 아닐까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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