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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를 살려 주세요<38>
산부인과를 살려 주세요<38>
  • 의사신문
  • 승인 2009.12.16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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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부인과 의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는 것이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올 한 해 동안 NST 검사비 환수 문제, 진행 중인 불법 인공임신중절 관련 보도, 요실금 수술 재료대와 요실금 검사조작 사건과 함께 산부인과의 몰락이라는 다양한 기사들로 인해 의료계 내외에서 산부인과 의사들은 모두 불쌍한 죄인쯤으로 취급당하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그 동안 우리나라 여성의 건강을 책임져 왔고 출산과 가족계획,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불임 치료, 여성 암 관련한 예방과 치료실적, 연령별 여성건강 상담과 교육, 최근의 출산 장려에 대한 각종 역할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적으로 많은 일들을 성공리에 수행했다. 지금 낮은 출산율과 저수가, 산부인과 진료 환자의 감소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지만 자존심 하나로 산부인과 의사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데 비난까지 받아야 하니 참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다.

요실금수술 관련 일련의 사건 만해도 생명보험사와 공단의 건강보험 지급의 증가를 막기 위해 고가의 요실금 측정기를 구입하게 하고 검사의 정확도도 떨어지는 불필요한 검사를 급여로 시행케 한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데 이를 의사의 잘못만으로 매도하고 시술한 의사를 비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불법 인공임신중절 문제는 생명과 윤리, 종교를 떠나 산부인과 의사들 입장에서 볼 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가슴에 안고 항상 고민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사회의 어둡고 절박한 문제를 나름대로 해결해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산부인과 의사들이 낙태 수술을 못하겠다는 것은 사회를 향한 처절한 외침이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최후의 저항으로 마치 할복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깊숙이 복부를 절개하므로 냄새나는 내장을 다 쏟아내면서 자신의 속을 모두 보여 준 것이다. 이렇게까지 치부를 모두 드러내면서 온갖 비난을 받는 것은 진정 이 땅에서 생명을 경외하는 의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마지막 절규인 것이다.

분만하는 병원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지만 겨우 유지하는 병원들도 저 수가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근근이 유지한다고 하소연이다. 그나마 분만을 접지 못하는 이유가 출산한 여성들이 피임에 실패하여 비급여인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하기 때문에 그 비용으로 직원들 월급 준다는 대형 산부인과 원장의 기막힌 말도 있다. 이러니 소규모 분만 의원이나 분만실 운영이 어려워 외래 진료만 하고 있는 80% 이상의 산부인과 개원의들의 사정은 하루하루 버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불법 시술을 하지 않으면 병의원을 운영할 수 없다는 절박한 상황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시급한 문제이다.

그 동안 산부인과 병의원을 간신히 유지하게 한 주요 수입원은 산전 진찰과 여성들의 정기 검진이었다. 그러나 산전 진찰은 보건소의 무료 모자보건사업에 밀리고 자궁 암 검진은 최근 국가 무료 암 검진 사업으로 실비 정도를 의료기관에 지급하고 있다. 공단에서 지급하는 자궁경부암 검사는 진찰료 포함하여 1만1000원인데 검사실에 위탁비용을 지불하고 문진, 기구 소독, 질강 소독, 병의원 유지 비용들을 제외하면 의사 몫으로 남는 것이 없다. 더구나 전산에 의한 청구 절차도 복잡하여 인력이 부족한 소규모 의원들은 참여도 못하고 있으며, 참여해도 자궁경부암 검사를 산부인과 전문의로 국한하지 않아서 유치가 어려운 형편이다.

산부인과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 대한민국에 산부인과가 필요하다면 긴급하고 실질적인 대책을 세워 살려 주길 바란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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