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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슈만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작품번호 42 
로베르트 슈만 연가곡 〈여인의 사랑과 생애〉 작품번호 42 
  • 의사신문
  • 승인 2016.07.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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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61〉 

■오직 사랑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

슈만은 슈베르트의 가곡 양식을 한층 더 높은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슈베르트가 즐겨 애용했던 연가곡은 슈만의 가곡에서도 자주 나타나는데 슈만이 특히 가곡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배경은 그가 한때 문학가의 꿈을 가진 적이 있어 시에 대한 높은 식견과 그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슈만의 문학적 역량은 가곡을 작곡할 때 가사의 선택은 물론 선택한 시에 잠재한 사상과 감정을 수준 높은 음악작품으로 승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는 단편적인 시들도 사용했지만 연작시를 더 선호했는데 연작시는 일정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 음악의 극적인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슈만의 대표적인 연가곡들은 모두 `가곡의 해'인 1840년 작곡하였는데,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한 〈리더크라이스〉 작품번호 24, 아이헨도르프의 시를 노래한 〈리더크라이스〉 작품번호 39, 사미소의 시에 붙인 〈여인의 사랑과 생애〉 작품번호 42, 그리고 하이네의 시를 바탕으로 한 〈시인의 사랑〉 작품번호 48이다. 이들 연가곡에서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의 차원을 뛰어넘어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고, 슈베르트 연가곡에서 이미 성악과 동등한 역할을 하지만, 슈만의 연가곡에서는 더 나아가 언어와 음악의 의도적인 어긋남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단순히 성악 가사를 충실하게 재현하는 피아노 반주가 아니라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Adelbert von Chamisso)는 프랑스 태생의 독일 시인일 뿐 아니라 식물학자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는 연구를 위해 캄차카 반도까지 여행을 했을 정도였다. 베를린에서 식물원장직을 맡기도 한 그는 젊은 시절부터 시를 썼지만 시인으로서 인정받은 것은 그의 학문적인 성공 이후로 문화적, 비정치적, 일상적인 낭만주의 표현양식을 대표하는 그의 서정시들은 당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1830년 발표한 `여인의 사랑과 생애'로 이 샤미소의 연작시에 곡을 붙여 여덟 곡으로 구성된 연가곡이 바로 〈여인의 사랑과 생애〉이다.

이 작품집엔 슈만이 구사한 가곡 작법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피아노의 비중이 슈베르트 시대보다 월등히 커졌고 매우 기악적인 전주와 후주가 쓰이는 점 등 그의 가곡에서 나타나고 있는 특징들이 고르게 반영되고 있다. 이 연가곡은 서사적인 면에서 그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보다 간결하고 압축된 면을 보인다. 이 작품은 샤미소의 시집에서 마지막 부분인 할머니가 된 여인이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한 개를 제외하고 모두 음악으로 살려냈기 때문이다.

이 연가곡은 여인의 생애를 줄곧 사랑의 측면에서 묘사한 곡들로 서로 연속적인 성격을 띤다. 즉 여인의 일생을 통해 거치게 되는 단계를 음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제1곡에서 제3곡은 처녀 시절의 사랑, 제4곡에서 제5곡은 결혼, 제6곡에서 제7곡 출산으로 어머니가 된 기쁨, 제8곡은 남편의 죽음 이후 미망인의 쓸쓸함 등 여성의 삶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오직 사랑으로 살아가는 여성의 심리를 참으로 밀도 있게 그려나가고 있다.

△제1곡 Seit ich ihn gesehen(그이를 만나고 나서) 이 곡은 남자에게 반한 처녀의 설렘을 담고 있지만 감히 꿈꿀 수 없는 행복 때문에 분위기는 오히려 어둡고 차분하다. 바라보는 곳마다 그 사람의 모습만 보여 차라리 방에서 조용히 울고 싶은 심경이라고 처녀는 토로한다.

△제2곡 Er, der Herrlichste von allen(누구보다도 뛰어난 그님) 이 연가곡 중 가장 찬란하고 두드러지는 곡으로 사랑하는 이의 온화함과 선량함, 사랑스런 입술, 맑게 빛나는 눈, 명료한 의지와 굳센 용기를 칭송하면서도 자신은 그에 비해 너무나 하잘것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어울리는 기품 있는 처녀가 나타나길 기원할 뿐이라는 겸허한 내용의 노래이다.

△제3곡 Ich kann's nicht fassen, nicht glauben(나는 이해할 수 없어, 믿을 수 없어) 여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선택받은 기쁨을 노래한다. 강하고 메마른 듯한 반복적 스타카토는 이 기쁜 진실을 선뜻 긍정할 수 없는 여인의 두려움과 강박적인 심리를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제4곡 Du Ring an meinem Finger(그대 내 손의 반지여) 이 연가곡에서 가장 아름답고 우아하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곡으로 격정적이면서도 깊고 차분하게 내면을 관조하는 이 노래는 이제 드디어 여주인공이 결혼을 현실로 받아들였음을 말한다.

△제5곡 Helft mir, ihr Schwestern(얘들아, 날 도와줘) 결혼식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자신을 아름답게 치장해달라고 부탁하는 곡으로 이제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여자 친구들, 가족들과는 결별할 때가 되었다는 슬픈 노래이다.

△제6곡 S<&25073>ßer Freund, du blickest(사랑하는 이여, 저를 바라보시는군요) 이전 곡들과는 대조를 이루는 차분한 선율로 임신한 여인의 깊은 만족감과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제7곡 An meinem Herzen, an meiner Brust(내 마음에, 내 품에) 밝고 명랑한 자장가 형식의 노래로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노래한다.

△제8곡 Nun hast du mir den ersten Schmerz getan(이제 그대는 제게 처음으로 고통을 주시는군요)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와 남편을 데려간다. 어둡고 강렬하게 울리는 피아노는 깊은 슬픔과 고통으로 찢기는 심정을 보여준다. 기쁨과 고통과 더불어 한 생애를 살아온 여인의 당당함이 느껴지는 체념과 안식의 마무리이다.

■들을 만한 음반
△자네트 베이커(메조소프라노), 제프리 파슨스(피아노)(BBC legends, 1968) △제시 노먼(소프라노)어윈 게이지(피아노)(Philips, 1975) △안네 소피 폰 오터(메조소프라노), 벵크트 포르스베르크(피아노)(DG, 1995) △바바라 보니(소프라노),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피아노)(Decca,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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