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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단칼럼]의료시스템 지역주민부터 설득하자
[의장단칼럼]의료시스템 지역주민부터 설득하자
  • 의사신문
  • 승인 2016.06.27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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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웅 부의장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2015년 7월 말 한여름에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아웃리치가 있었다. 한 팀이 9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의료인은 나 혼자였다. 거기서 9박10일 동안 서로 의지하며 진료와는 상관없는 일을 수행하는 미션을 했다. 60세가 훨씬 넘은 분부터 갓 군대를 제대하고 들어온 사람까지 나이도 각자 다르고 직업도 공무원, 학교 선생님부터 전기 기능장까지 다 달랐다.

우리는 오로지 5개월간의 준비과정을 거친 뒤 처음 접한 곳에서 10일 동안 24시간 내내 같이 지내야 했다. 그동안 사람들의 성격유형도 공부하고, 본인의 직업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역할을 분담하게 하고 힘든 상황에서 서로를 의지할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을 거쳤다. 처음 출발할 때는 앞으로의 닥칠 과정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모두들 의지가 충만했다.

하지만 24시간을 같이 있고 주어진 일을 수행해야 하는 부담감이 생기자 그동안 내면에 감추어 두었던 성격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격한 토론으로부터 거센 항의까지 오로지 자기 입장에 따른 생활습관이 나오기 일쑤였다. 또한 환경의 열악함으로 인해 더욱 예민해지게 되었다.

7월 말인데도 숙소에 더운물이 안 나오는 관계로 낮에 사역으로 인한 땀 흘린 몸을 찬물로 씻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치 계곡물처럼 물이 차가워서 한 번에 샤워를 할 수가 없었다. 머리만 빨리 감고 몸을 좀 말리고 다시 부분적으로 샤워가 아닌 등목 정도로 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한겨울에도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7월 말 한여름에도 밤에는 추워서 침낭 속에서 잠을 자야 했다.

10일 동안 지내면서 다시 한 번 사람이 얼마나 주위 환경에 약하고 ,또한 어려운 상황일수록 본인의 직업이라든가 경력, 경험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으며 오로지 내려놓는 마음으로 다가갈수록 서로가 훨씬 가까워진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또한 우리 의료라는 게 어디 가서도 사명이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의료와 연관되지 않는 일을 하면서 느끼게 되었다.

그 이유는 10일 동안 지내는 과정 중에 다른 단체에서 의료선교로 온 팀과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가 그렇게 온몸으로 몽골인들을 만나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본체만체하던 지역사람들이 무료진료를 하는 시간에는 너무나 많이 붐비는 것을 보고 느끼는 게 참 많았었다. 그중에 아는 의사가 있었고 또한 외과파트 의사가 오지 않은 관계로 잠시 동안 스케줄에도 없던 무료진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느낌도 우리 의료환경과는 참 많이도 달랐다. 그저 진찰만 하고 약 처방만 해도 감사해하는 그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처럼 방어적 진료, 의료쇼핑으로 반의사가 된 환자의 미심쩍어하는 태도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의사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의사를 보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 속에서 의료의 사명감을 겸허한 마음으로 실로 오랜만에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저녁마다 잠자기 전에 한 시간씩 의무적으로 갖는 정리의 시간에, 서로의 느낌을 얘기하면서 처음과 달리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가까워질 수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간간히 의료적인 자문의 시간도 가짐으로 훨씬 빨리 전체 분위기가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어느 정도 친밀감을 갖게 되니까 오히려 의료 현안에 대해서도 의료인이 아닌 동료들과 솔직하고 적극적인 토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한번은 울란바토르 국립병원에서 선교사로 일하는 우리나라 외과 의사를 만났는데 여러 가지 연관관계로 한참 얘기할 수 있었다. 이곳은 정형외과 의사가 정말 필요하고 또한 없다고 하면서 자기가 이곳으로 오면 다른 의사들보다 월급이 50%나 많게 한국 돈으로 매월 50만원을 보장을 해주겠다고 언제든 오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하면서 정말 사명감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이라고 몇 번이나 반복했었다.

물론 몽골의 의료는 아주 초기단계로 우리나라처럼 세계 최정상의 의료수준이라던가 시스템화된 의료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다. 또 이제는 단순히 진료만 생각할 수 없는 우리 의료환경 속에서 의료경영도 중요한 한 분야가 됐다. 여기에 따른 의료공급자와 국민 그리고 정부에서의 시각 차이는 우리 모두가 헤쳐 나가야 할 영원한 숙제다. 우리는 보건복지부를 설득한다든가, 국회와의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입법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중요한 역할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의료환경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다. 모두다 면전에서는 우호적으로 대할지 모르지만 알고 보면 실제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얼마 전 위헌 결정이 난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일명 아청법)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의료인의 개업 및 취업이 10년간 금지되는 불합리한 조치가 취해졌지만, 그동안 국민들은 설득이 되지 않았었다. 심지어 시민단체들은 정상적인 진료인지 성추행인지 모르겠냐고 하면서 그동안 논의되는 것조차 꺼려왔다. 그러는 동안 의료인은 방어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신해철법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명확한 진료상의 잘못이 있을 경우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환자 자체가 초기부터 중증일 경우, 설사 의료행위를 하더라도 중증장애 이상이 확실할 정도의 상황일 경우 누가 나서서 환자 처치를 우선으로 하겠냐는 문제가 명약관화한데도 마녀사냥 식으로 처리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당분간은 촌각을 다투는 중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의료인은 환자를 어떻게 하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할지를 당연히 고민하면서도 잠시 신해철법을 생각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음을 모두 알아야 한다.

물론 의료계가 이에 대한 불합리성을 몇 년 동안 말하더라도 보건당국은 무시할 것이다. 의료인과 환자 및 가족들 모두가 어려워지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바로 잡아질 것이다. 그러기에는 헤쳐 나가야 할 문제가 너무나도 많이 산적해 있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의료계가 국회나 보건복지부 등을 설득하는 등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럴만한 힘도 별로 없는 의료계를 향해, 사회는 강력한 이익집단의 부조화된 압력이라고 하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또 비슷한 상황에 있는 연관 단체들도 유독 의료계가 잘 되길 바라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 속에서 비록 더딘 과정을 거치더라도 모든 의사들이 국민을, 지역 주민을 직접 설득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의 의료 환경에서는 모든 현안을 서울시의사회나 의협의 집행부에만 맡기고 그들이 강력한 행동을 해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모든 우리 의사회원들이 각자가 집행부이고 임원이 된 마음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편안한 마음으로 지역주민을 설득하고, 또한 지역사회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우리가 바라는 의료환경을 만들어가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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