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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에서 
하이델베르크 `철학자의 길'에서 
  • 의사신문
  • 승인 2016.06.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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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41〉 

많은 분들이 다녀왔겠지만 독일의 유명한 관광지로 하이델베르크가 손 꼽히고, 그중 인기 있는 코스가 `철학자의 길'이다. 이 길은 대학건물로 이루어진 구 시가지를 네카강 반대편 언덕 구릉에서 구경하며 걷는 산책로이다. 우선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다리를 건너 계곡 중간에 있는 숲길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나지막하게 경사진 언덕에 건물은 거의 없이 나무로 가득하다.

나는 이 `철학자의 길'을 이미 서너 번 걸어 보았다. 일생 동안 일관되게 같은 길을 일정한 시각에 산책했다는 칸트의 이야기와 혼동되어 많은 관광객은 이 위대한 철학자가 애용했던 곳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칸트는 다른 대학의 교수였다. 독일 최초의 대학교인 여기에서 물론 헤겔과 야스퍼스 등 유명한 철학 교수가 연구하기는 하였다.

다리를 건너는데 요즘 잦았던 비 때문에 강이 가득 차고 물은 짙은 황토색이었다. 물어보니 홍수로 변한 것이 아니라 본래 색깔이란다. 이러하니 맥주를 애용할 수 밖에 없겠다. 강을 건너자 처음에는 급한 언덕길이다. 마치 등산로인양 길가 건물 벽에 손잡고 올라가는 보조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길 왼편 언덕은 붕괴를 막기 위해 축대를 곳곳에 쌓아 놓았다. 특이하게 돌이 아닌 황토 벽돌로 만들었다. 길바닥의 흙 색깔과 강 넘어 펼쳐있는 주황색의 지붕과 조화를 맞추기 위함이다.

나는 이곳을 20여 년 전에 처음 방문했었다. 그 때의 기억과 비교해 보니 산기슭에 드문드문 있던 주택은 오히려 적어지고, 나무 하나하나와 전체 수풀은 더 다듬어진 느낌이었다. 곳곳에 설치한 구 시가지와 하이델베르크 성이 잘 보이는 전망대도 여전하였다. 화려한 4층 화단을 만들고 쉬면서 강을 구경하는 벤치를 설치해 놓은 자리도 있다. 노랑, 하양, 빨강, 보라색의 꽃이 함께 아름답게 어울려 천국이 있다면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 그 당시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곳 저택은 주위 환경과 전망이 매우 좋아 개발 유혹이나 압력도 많았을 것 같은데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40분 정도 걷는 오솔길 사이사이에 수백 년생인 큰 나무가 많이 있어 신선한 내음의 그늘을 만들고 중간 한 곳에 자그맣게 매점을 허가해 마른 목을 축이게 하였다. 일관된 정책으로 좋은 경치를 잘 감상할 수 있게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철학자의 길' 답게 사색하며 걸을 수 있도록 신중하게 조금씩 개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내판이 모두 독일어 만으로 되어 있어 여행객 유치보다 앞서는 그들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유럽의 많은 궁정이나 저택을 가면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다. 나무나 꽃을 기하학적 모양에 맞추어 배치하고 다듬는다. 큰 나무들이 정확히 줄을 지어 서있고, 무성한 나뭇잎은 면에 따라 깎아 반듯한 벽을 만들고 화려한 꽃을 대칭으로 심어 아름다운 무늬를 그린다. 마치 정원에 아랍 풍 양탄자를 깔아 놓은 모양새다. 자연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러나 `철학자의 길'에서는 자연을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의 손이 아닌 세월의 변화가 나타나도록 노력하고 있었다. 예로 최근에 넓힌 내리막 길의 벽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이끼로 덮어놓았다.

강 너머 대학가인 구 시가지 풍경은 압권이었다. 좁지도 넓지도 않게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있고, 1386년에 개교한 전통의 대학답게 낡았지만 건실한 건물로 빡빡하다. 주황색 지붕과 교회의 첨탑 위 숲 속에 폐허가 된 하이델베르크 성이 있다. 어디를 보아도 그림 같은 경치이다. 단지 숲 속을 헤치고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거슬리는데 옛 성터를 연결시켜 준다니 눈감아 주기로 한다.

숲 속 길이 끝날 쯤에 눈에 많이 익은 장소가 있었다. 우리나라 핵의학 창시자인 이문호 교수님이 사진을 찍었던 곳이 아닌가! 재작년에 선생님 서거 10주기 화보집을 발간할 때 이 사진을 내가 정리해 기억이 뚜렸하다. 1955년 독일 후라이부르크 대학에 유학 와서 공부할 때 여행오신 것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신생국에서 독일에 처음 와 이곳의 문물에 압도당했을 선생님과 지금 여유 있게 관람하고 있는 내 입장을 비교하니 감회가 새롭다. 은사님이 우리나라에 심어 논 핵의학이 지난 60년 동안 자라면서 겪은 굴곡의 순간들이 내 머리 속을 한꺼번에 스쳐갔다.

지금 막 수문을 통과한 기다란 화물선이 다리 밑을 지나가고 있었다. 네카강은 만하임에서 라인강과 합쳐 독일을 관통하기에 아직도 배를 이용하여 쓸모 있게 화물을 운송하고 있단다. 육로에만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비교된다. 라인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의 차이점을 나타내 주는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과거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착실하게 성장하는 독일의 탄탄한 경제를 모래밭 위에 서둘러 세우는 한국의 개발 경제가 따라갈 수 없다. 우리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밑바탕 없이 유행을 따라 연구 주제를 바꾸는 일부 교수가 배워야 할 자세이다. 구름에 가려있던 해가 다시 비치기 시작하니 강물 색깔이 마치 황금빛처럼 바뀌어 보인다. 황토색에서 황금빛을 빚어낸 독일역사와 유사하다.

언덕 길에서 내려와서 강을 건너 대학 중심가로 연결되는 옛 모양의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공식적으로 `알테 부르케'로 부르고 있다. `알테 부르케'는 오래된 다리라는 독일어 일반 명사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이 다리의 고유명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어 권에서는 어디 보다도 오래되고 훌륭하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문호 교수님은 이러한 자긍심과 자신감으로 평생을 내과 중에서는 외진 분야에 몰두하신 분이다. 그 결과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대표 의학자가 되셨다. 아직도 여러 면에서 은사님은 우리에게 나침반이 되고 있다.

아름다운 고풍의 경치와 잘 다듬어진 숲 속의 오솔길은 사람을 쉽게 사색에 잠기게 하는 법이다. 나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어느새 이번 산책이 끝났다.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드는 `철학자의 길'! 헛된 이름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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