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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혼불문학관 〈2〉
남원 혼불문학관 〈2〉
  • 의사신문
  • 승인 2016.06.20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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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56〉 

지난 9일 `전주시민의날' 행사에서 `꽃심'을 전주정신으로 발표했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는 아직 등재되어 있지 않은 단어입니다. 작가 최명희가 대하소설 `혼불'에 심어 둔 말입니다.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노봉마을 끝자락에 있는 혼불문학관. 오른쪽에 부속건물이 한 채 더 있고 왼쪽엔 맑은 물이 찰랑대는 청호저수지가 있다.

`천 년이 지나도 이천 년이 지나도 또 천 년이 가도, 끝끝내 그 이름 완산이라 부르며 꽃심 하나 깊은 자리 심어 놓은 땅. 꽃의 심, 꽃의 힘, 꽃의 마음. 꿈꾸는 나라.'

작가 최명희는 특히 이 `꽃심'을 아꼈던 듯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호암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꽃심'에 대해 다시 말을 남겼습니다.

“아름다워서 수난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처럼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그 수난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힘이 있어 아름다움은 생명력이 있지요. 그 힘을 나는 `꽃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에서는 작가 최명희에 대해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드러낸 작가로 소개하며 세익스피어의 경우 어간을 기준으로 평생 4500 어휘를 사용하는데 그쳤지만 최명희는 혼불에서만 6000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혼불'이 우리나라의 문학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렸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혼불을 쓰기 위해 치밀하게 민속과 풍속을 고증하고 발굴해 이를 세심하게 기술했기 때문입니다.

혼불문학관에 오르는 길 오른쪽에 보이는 집들이 소설의 주된 배경인 노봉마을입니다. 최명희의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입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깨끗하게 포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을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고 다시 와서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혼불문학관에 차를 세우고보니 왼쪽에 청호저수지의 물이 맑게 찰랑거립니다. 문학관의 넓은 마당엔 잔디가 평화롭습니다. 작가에 관해, 작품에 관해 전시되어 있는 이런 저런 자료들을 천천히 살피고 나와 잔디마당 끝의 누대에 올랐습니다.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이 남긴 글들이 걸려 있습니다.

혼불문학관 건립기를 보니 2002년 11월 공사를 시작해 2004년 10월 개관했으며 총 사업비가 49억이라 적혀 있습니다. 참 많은 돈을 들였습니다. 찾아오는 이 많지 않은 이 시골마을에 문학관을 건립하기 위해 쓴 49억은 참으로 불편할 만큼 많은 돈입니다. 아마 작가가 살아 있었다면 찬성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문학관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청호저수지로 향했습니다. 둑방길을 걸으며 내려다보니 저 아래 논은 물 걱정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길옆의 꽃과 풀을 살피며 저수지 건너편의 오솔길로 들어섰습니다. 저수지를 호젓하게 도는 길입니다. 물이 흘러드는 곳 근처에 누군가 가꾸고 있는 고사리 밭이 있었습니다. 발소리에 놀란 다람쥐가 `호르르' 나뭇가지를 내달립니다. 소소한 것들을 살피다보면 모르는 새에 살면서 겪었던, 겪어야 할 온갖 시름이 사라집니다.

혼불을 찬찬히 읽고 다시 오겠다는 생각만 남았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성급하게 찾아와서 미안했습니다. 최명희 작가의 고향인 전주에 있는 최명희문학관에도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최명희문학공원도 있다하니 작가 최명희를 기리는 전주와 남원의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혼불은 전라도 지방의 방언으로 우리 몸 안의 불덩어리입니다.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인데 죽기 얼마 전에 몸에서 빠져나가며 크기는 종발만 하고 맑고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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