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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핵의학교 컨퍼런스와 마천루 
아시아핵의학교 컨퍼런스와 마천루 
  • 의사신문
  • 승인 2016.05.3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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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39〉

 

우리나라 핵의학은 지난 30∼40년간 고속 성장하였고 이를 인정 받아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핵의학회 회장국으로 선출되었다. 세계핵의학회 구성 단체로 아시아대양주핵의학회가 있지만 4년 간격으로 학술대회를 가지는 것이 활동의 전부인 상태였다. 우리는 우선 낙후된 아시아 국가에서 핵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동남아시아 원로들과 상의해 2001년 아시아지역핵의학협력기구(ARCCNM, Asian Regional Cooperative Council of Nuclear Medicine)를 만들었다. 이 지역 십여 개 후진국에 집중하여 진흥하자는 좋은 뜻에서였다.

이명철 교수님이 창립 회장을 하고 이듬 해에 세계 학회장이 되면서 내가 십 년간 회장을 맡았고, 전남의대 범희승 교수, 일본 오사카의대의 하타자와 교수가 그 뒤를 이었다. 핵의학 진흥에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의견이 모아져 2004년 ARCCNM 산하에 아시아핵의학교(ASNM, Asian School of Nuclear Medicine)도 만들었다. 실제 시설은 없이 인적 자원과 프로토콜만 있는 가상의 학교였다. 싱가포르 교수가 초대 학장을 맡은 후, 일본과 필리핀 출신 학장을 거쳐 작년에 중국 상하이 P 교수가 인계 받았다.

올해 5월 초 중국 상하이에서 3일간 열린 ASNM 컨퍼런스에 참석하였다. P 학장이 작년에 이어 마련한 교육 겸 학술 미팅이었다. 그와 친분이 있는 사업가가 개최비용으로 35만불을 지원해주었다고 하였다. 25개국에서 200여명이 참석했는데 주최측에서 상하이 주변의 꽤 좋은 호텔에서 숙박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였다. 실상 ARCCNM의 본 대회 보다 더 큰 규모였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크게 준비했다고. 우선 개회식이 볼만하였다. 강단의 전면을 다 덮은 LED 스크린의 현란한 불빛에 배경 음악으로 나오는 관현악기의 명쾌한 음향이 어우러져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세계핵의학회 회장, 국제원자력기구 핵의학 담당관과 중국핵의학회 회장도 초대되었고 여기에 P 교수와 사회자의 연기자 못지 않은 능숙한 무대 행동과 연설로 보통 개회식과는 색다른 근사한 모양새였다.

컨퍼런스는 호텔에서 셔틀버스로 30분이 걸리는 보건건강과학대학교에서 열렸다. P 교수가 총장으로 있는 이 대학은 의료기사와 의생명 과학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넓은 대지에 반듯한 새 건물과 잔디밭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최측은 모든 면에서 미팅을 철저하게 준비하였고, 많은 진행요원이 적극적이고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화장실은 좌변식이 아닌 재래식 변기이어서 많은 외국 사람들이 불편해 하였다.

차분한 교육적 모임을 기대한 내 생각과는 달리 일반 학회와 비슷하게 내용이 다양했고 분위기도 다소 산만했다.

물론 아시아 핵의학전문의 시험이나 ASNM 교육강화회의 등은 계획대로 진행되었으나 구연과 포스터 발표에 젊은 연구자 경연도 있었다. 두 방으로 나누어진 학회장은 강의 후 사진촬영과 감사장 수여로 얼룩졌다. 나는 첨단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는 내실 있는 교육과정이 되도록 노력을 집중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ASNM의 기본정신을 실천하기 보다 P 교수와 중국학회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뒤로 물러선 내가 공식적으로 의견을 말할 수도 없는 아쉬운 상황이었다.

마지막 날 오후에 MD앤더슨 암센터에서 온 김의신 교수님과 함께 상하이 중심부에 있는 황푸강으로 관광을 갔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유럽 강국에 조차지(租借地)로 빼앗겼던 강 서쪽과 마주보는 동쪽 지역에 마천루 숲을 건설하고 있었다. 김의신 선생님은 평소에 `건축가는 남의 자본으로 자기가 만들고 싶은 건축물을 세우고 그 창조물에서 자기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이란다. 선생님의 여덟 살 된 손자가 할아버지 영향인지 건축에 관심이 많아 상하이 마천루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중국 정부는 황푸강 동쪽인 푸동 지역을 1984년 경제특구로 개방하고 2013년에는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하여 물밀듯이 들어온 외국 자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상하이에 16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4천여 동이나 있다고 한다.

강 서쪽에는 제국주의 유물인 서양식 건물이 즐비하고 강의 동쪽에는 현대화를 상징하는 초고층 건물로 숲을 이루고 있다. TV탑을 겸한 467m인 동방명주타워, 101층 높이 492m인 상하이 세계금융센터, 125층 높이 632m의 상하이타워가 대표적 건물이다. 상하이 마천루는 새로운 건물 디자인의 경연장이다.

비슷한 모양은 하나도 없고 건물 전체가 장식 걸이 문양, 건물 꼭대기가 병 따개 모양, 건물을 휘감는 나선형의 유리 벨트 등등… 여기에 밤에는 각 고층건물 마다 산뜻하게 조명을 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인기있는 동방명주 전망대는 주말이면 만 명 이상이 몰린다고 한다.

특히 가장 높은 상하이타워 빌딩은 허리를 비틀면서 승천하는 용을 형상화 하여 그들의 속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이 상하이타워는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칼리파(829m)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고 잠실의 롯데월드 타워보다 77m가 더 높다. 역사적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마천루는 중국에 있었다. 516년에 지어진 낙양의 영녕사 구층 목탑은 273m(63빌딩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최근 조사결과 134m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은 98.5m로 추정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상하이 마천루도 일종의 과시 선전용이다. 지금의 중국 경제 형태는 공산당 중심의 독점 경제이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공산경제도 아니고 자유경제도 아닌 독재 후진국 형인 것이다. 어떤 미래학자는 빈부차이에 불만인 저소득층과 부패에 저항하는 지식인층의 도전으로 결국 중국이 분열된다고 예측하기도 한다. 정부는 이들을 달래기 위하여 스포츠, 경제, 문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위세용 성과를 만들어 `세계 제1의 중국'을 국민 자신과 동일시하는 대리만족형 회유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마천루도 중국 제1의 PR 용인 셈이다.

고층건물은 경제적으로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좁은 땅 위에 높은 건물을 지어 효율이 높다고 하지만 건축비용과 유지비용이 너무 커서 손익을 잘 계산 하여야 한다. `마천루의 저주'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세계적인 마천루가 세워지면 바로 세계경제가 위축되곤 하였다. 그 이유는 좋은 경제상황(값싼 이자, 호경기)에서 마천루를 건설하기 시작하나 완공시점에는 경기 과열이 정점에 이르고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경제불황을 맞는다는 것이다. 이 침체가 마천루 때문은 아니지만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경제환경 탓이다.

의학적 면에서는 어떠할까? 따로 지식은 없지만 조류가 아닌 인간이 높은 하늘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우리 생체와 맞지 않을 것이다. 고층에 살면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고 호흡기 질환과 심혈관 질환에 잘 걸린다는 보고도 있다. 앞으로 이런 의학분야에 대한 관심도 꼭 필요하다.

귀국하는 비행기 속에서 지난 15년 간의 ARCCNM과 ASNM 활동에 대하여 생각해 보니, 걱정과 함께 여러 기억과 감상이 번갈아 떠올랐다. ARCCNM과 ASNM를 만든 이명철 선생님의 리더십, 초창기 자금난과 주위의 몰이해로 겪은 고생, ASNM 전 학장들의 명예욕과 무성의, 내성적인 내가 가졌던 불편함과 회의(懷疑), 후진국 핵의학 전공자의 유대감과 자신감 회복, 구체적 발전 성과, 일본과 중국의 깊은 관여, 이에 따라 다소 호전된 상황, P 교수의 과시적인 운영 형태…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기구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었다.

관계자의 이해에 따라 다소 변형되기도 하지만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자체적인 힘과 탄력에 의하여 생존하고 번성할 것이다. 좋은 생각과 의지로 만든 단체는 결국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여 호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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