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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생상스 바이올린협주곡 제3번 b단조 작품번호 61
카미유 생상스 바이올린협주곡 제3번 b단조 작품번호 61
  • 의사신문
  • 승인 2016.05.2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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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53〉

■고전 형식미에 프랑스 에스프리와 함께 스페인 정열을 겸비한 걸작

카미유 생상스는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오르가니스트, 피아니스트, 풍자만화가, 과학에 취미가 있어 수학과 천문학에도 매료되었고 아마추어 희극작가, 비평가이자 고고학자이며 여행가였다. 그럼에도 그는 다작의 작곡가로서 교향곡, 협주곡, 실내악, 독주곡, 성악곡 뿐 아니라 오페라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아우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광범위한 관심과 다양성은 어쩌면 그의 성격과도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 평소 짜증을 잘 내고 변덕스러우며, 빈정대기를 좋아하고 자기 모순적인데다 표리부동하게 의견을 잘 바꾸기도 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음악학자들 사이에 극명하게 호불호가 나뉘어왔다.

생상스는 평생 3곡의 바이올린협주곡을 작곡하였지만 그중 바이올린 제3번만이 지금까지 꾸준히 연주되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 바이올린협주곡들은 스페인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블로 데 사라사테와 관련이 깊다. 사라사테는 겨우 여덟 살에 여왕 이사벨라 2세 앞에서 연주를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났다. 스페인 특유의 정열적인 맛이 넘치는 그의 연주기량에 많은 유럽 작곡가들이 감동을 받아 너도나도 작품을 헌정했었다.

사라사테와 생상스가 처음 만난 것은 사라사테가 파리음악원을 졸업하던 1859년이었다. 당시 사라사테는 15세, 생상스는 24세였다. 생상스는 이 어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에게 바이올린협주곡을 써주기로 약속했다. 훗날 생상스는 바이올린협주곡 제1번을 사라사테를 위해 작곡하여 헌정하였다. 사라사테는 다소 손이 작아 운지에서 큰 스케일의 작품을 꺼렸고, 폭넓은 비브라토와 개성을 살리면서 화려한 기교를 발산하는 곡들을 선호했는데 자신에 딱 맞는 작품을 헌정한 생상스에게 계속 다음 작품을 부탁하게 된다. 덕분에 생상스는 바이올린협주곡 제3번과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도 헌정할 정도로 두 사람은 평생 동안 각별한 우정을 이어가게 된다.

1880년 작곡되어 이듬해 사라사테에 의해서 초연된 생상스의 바이올린협주곡 제3번은 독일적인 형식에 프랑스적인 에스프리와 함께 스페인적인 정열을 두루 겸비한 매혹적인 걸작이다. 생상스는 비록 낭만주의 작곡가였지만 위대한 고전주의 형식과 전통을 신봉했다. 이 작품 역시 생상스의 풍부한 낭만주의 정서를 바탕으로 작곡되기는 했으나 고전주의 협주곡에 가까운 튼튼한 구조와 형식을 갖추고 있다. 강렬하고 빈틈없어 보이는 제1악장과 매혹적으로 아름다운 제2악장, 리듬과 서정성이 조화를 이룬 제3악장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으로 선율이 아름답고 구성적으로도 짜임새가 있어 바이올린협주곡들 가운데서도 수작 중 하나이다.

△제1악장 Allegro non troppo 오케스트라의 트레몰로 반주 위 힘찬 바이올린으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문을 연다. 처음부터 응축된 에너지를 머금고 있는 바이올린 솔로의 아름다운 선율에 이어 긴장과 이완의 대비가 절묘하게 나타나면서 드라마틱한 멜로디가 당당하고 힘차고 웅장하지만 저편 너머에는 비장함과 슬픔이 가득 차 있는 느낌과 함께 주체할 수 없는 운명의 비정함이 몰려든다. 오케스트라가 이에 응답하면서 극히 평온하고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사라사테의 음색을 염두에 둔 듯한 마지막은 화려한 코다를 지나 힘차게 끝을 맺는다.

△제2악장 Andantino quasi allegretto 시실리아노를 노래하듯 감미롭게 독주바이올린으로 시작하는데 단순하면서도 조용하며 서정적인 맛이 넘친다. 마치 향수를 뿌린 듯 우아하면서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독주 바이올린은 레드와인처럼 낭만적이고 세련미 넘치는 선율을 감미롭게 노래하는데 마치 달빛 아래에서 은은하게 뱃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잔잔히 흐르는 뱃노래 풍 선율에 이어 피날레에서 왼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어 소리를 내는 하모닉스 주법은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며 절로 듣는 이를 매혹시킨다.

△제3악장 Molto moderato e maestoso 사라사테를 고려한 듯 독주 바이올린의 명인기가 돋보이는 화려한 악장이다. 울부짖듯 독주 바이올린이 심장을 찢는 듯한 격앙된 표정으로 도입부를 연주하고 그 여세를 몰아 제1주제가 힘차게 등장하여 강렬하고 현란한 세계로 이끌려간다. 얼마 후 제2주제는 섬세하고 유려한 선율로 다시 감미롭고 환상적인 선율로 노래한다.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두 주제가 태피스트리처럼 엉키면서 클라이맥스에서 다시금 독주 바이올린이 화려하고 다채로운 기교를 선보이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장엄하게 마무리된다. 이 악장에 흐르는 한결같은 비장감은 마치 비극의 운명 앞에 서 있는 주인공을 연상하게 한다.

■들을 만한 음반
△아르투르 그뤼미오(바이올린), 마누엘 로장탈(지휘), 라무뢰 콘세르트 오케스트라(Philips, 1963)
△정경화(바이올린), 로렌스 포스터(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75)
△지노 프란체스카티(바이올린), 드미트리 미트로풀로스(지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CBS, 1950)
△이차크 펄만(바이올린), 다니엘 바렌보임(지휘), 파리 오케스트라(DG,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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