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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35>
메멘토 모리(memento mori)<35>
  • 의사신문
  • 승인 2009.11.2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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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란 라틴어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라는 의미이다. 너무 고와서 눈이 부셨던 형형색색의 단풍이 늦가을 비바람에 쌓인 것을 볼 때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자연이 가르치는 `메멘토 모리'를 떠올린다.

3년 전, 아흔다섯 해를 사신 할머니의 임종을 지키면서 죽음과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가족으로서도 의사로서도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의식이 명료하셨으며 음식을 끊으시고 주사까지 거절하셨지만 심호흡 등 필자의 지시를 잘 따르셨다. 어쩌면 할머니는 다음날 아침 다시 깨어나시리라 생각하고 견디기 어려운 잠의 유혹에 빠지셨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죽음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 것 같다.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죽음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필자의 부친은 필자가 의과대학 시절 폐암으로 2년을 투병하시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초기에 수술을 받으시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셨는데 후유증으로 심부전증이 온 것이었다. 목사님이 가끔 예배와 기도를 위해 오셨지만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와 상담을 받으셨는지 모르겠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회복을 기원했지 아무도 죽음을 준비하라고 못했을 것이다. 누구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죽음에 대해 혼자서만 고민하셨을 것이다.

종교적으로 죽음은 또 다른 세계에서의 삶의 시작이므로 믿음으로 현세의 고난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신의 품에 안기는 축복의 과정이다.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고 믿어도 죽음은 생소하고 죽음에는 무식한데 죽음이 모든 것의 소멸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은 두려움이 아닐 수 없다. 탄생은 스스로 준비하는 것이 아니지만 죽음은 준비할 수 있으므로 다행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기 어렵다. 특히 마음의 준비와 이별의 준비가 어렵다.

실제적인 죽음의 준비로 몸의 준비, 마음의 준비, 법적인 준비, 장례 준비, 사별의 아픔에 대한 준비를 들 수 있다. 깔끔한 정리와 함께 마지막까지 자신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것이 중요하다. 몸의 준비, 법적인 준비, 장례 준비는 미리 할 수 있다. 마음의 준비와 사별의 아픔에 대한 준비도 차근차근 해야 한다.

연명치료 중지에 대한 지침이 의사단체를 중심으로 발표되었다. 몸에 대한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말기 암일 때, 뇌사 상태가 되었을 때, 임종이 다가올 때 가족과 의료진의 고민을 덜어주고 마지막까지 내 몸을 내가 관리하기 위해 연명치료를 거절한다는 확실한 의사 표시를 해 놓아야 한다.

유산 문제 등 법적인 문제도 완벽하게 정리해야 한다. 죽은 후 보물찾기 재미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면 세금 문제까지 해결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장례 절차와 화장 문제까지 가족들에게 유언으로 지시한다면 세상에서의 흔적이 말끔하게 해결되는 것이다.

암 진단을 받고 치료하는 가까운 선배는 다른 것은 다 문제되지 않는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사별의 아픔을 준비하는 데는 지침이 없다.

어쩌면 `메멘토 모리'는 죽음이 가까울 때보다 생명의 환희가 충만하고 삶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을 때 생각해야 할 명언이 아닐 수 없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으로 마음이 스산할 때가 아닌 꽃이 만발하고 태양이 뜨거워 가슴이 벅차오를 때도 한번쯤은 주문처럼 떠올려야 할 단어이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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