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진료 당당하게 받는다<34>
산부인과 진료 당당하게 받는다<34>
  • 의사신문
  • 승인 2009.11.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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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만해도 산전 진찰을 받으러 오는 임산부들을 제외하고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 여성들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진료 받는 것을 꺼리고는 했다. 특히 미혼 여성들은 더욱 심해 산부인과라는 곳이 비밀스럽게 방문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했다. 오죽하면 산부인과 개원 장소를 고를 때 대로변보다 골목 안이 더 좋다는 말들도 했었다. 심한 경우는 선글라스를 쓴 채 진찰을 받고 나갈 때까지 벗지를 않는다든지, 코까지 가리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상담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환자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말을 주고받아야 할 텐데 이럴 때는 정말 답답한 일이었다.

혼전에 임신 여부를 검사하는 여성들은 부끄러운 마음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일반 염증 치료를 받는 것도 보험 카드를 가져오지 않고 신분 노출을 꺼리면서 이름도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질염이나 방광염 등은 성 관계와 관련 없이 생길 수 있으며 아기들이나 초중고 학생들도 치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해도 한사코 비용을 많이 들여서 일반으로 치료를 받으려고도 했다.

산부인과 진료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는 이들 대부분이 진료비가 부담스러운 대학생이나 젊은 여성들이라 치료하면서도 마음이 불편했다. 부끄러워하고 수줍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병을 숨기고 고민만 하면 치료 받을 기회를 놓치게 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버릇처럼 진료실 밖에서 얼굴이 익은 환자를 만나면 쑥스러워 할까 싶어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걸었다. 얼굴을 아는 산부인과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한다는 점은 참으로 의사로서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모르는 척 하는데도 내게 와서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라고 말하는 여성도 있었다. 나는 분명히 누구인지 알기 때문에 이럴 때는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결혼하고 나이 들어도 사실 산부인과 진료받는 것이 쑥스러운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산부인과 진료실에도 많은 변화가 왔다. 부인과 위주의 외래 진료 때문인지 요즘은 50%가 미혼 여성이다. 물론 20∼30대 여성들의 결혼율이 낮기 때문이지만 산부인과 다니는 것을 예전처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들 모두 당당하게 건강보험증으로 진료를 받고 직장과 사 보험사 제출용 확인서와 영수증을 요구한다. 의사인 내가 오히려 걱정하는 것을 일축하고 챠트 복사까지 해서 보험사에 제출하는 것도 거리낌이 없다. 과거에는 가끔 검사 비용을 현찰로 지불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모두 신용카드로 진료비를 계산한다.

4년 전에 연말 정산 진료비 내역을 공단과 국세청에 신고하는 정책이 발표 되었을 때 산부인과를 비롯한 몇몇 과는 환자들의 사적 정보를 유출하게 된다고 절대 반대를 주장한 바 있다. 필자역시 일선 세무서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신고하지 않다가 작년에는 국세청에 직접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비 급여 진료비는 신용카드로 수납이 되고 세무 관련하여 떳떳하다고 생각하여 버텼지만 결국 국세청의 변경된 신고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또 하나 간접적인 동기는 연말정산 영수증을 인터넷으로 조회하려 했는데 왜 이곳은 신고를 하지 않았냐는 항의 전화 때문이었다.

당당하게 산부인과 진료를 받은 것인데 이것을 권장해야 할 산부인과 의사가 그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산부인과 진료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는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며 질환 치료는 물론 예방 목적으로 여성들은 더욱 더 산부인과를 찾아야한다.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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