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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보랑께박물관 
와보랑께박물관 
  • 의사신문
  • 승인 2016.05.02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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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53〉

큰마음 먹어야 겨우 한 번 가 볼 수 있는 곳이 강진입니다. 그런데 가보면 새록새록 호기심을 돋우며 가보아야 할 곳이 여기저기 생겨납니다. 사의재, 다산초당, 백련사 그리고 백운동별서정원엔 다산의 자취가 있고 읍내엔 시인 김영랑 생가가 있습니다. 영랑생가 뒤엔 금서당 옛터에 아담한 기와집이 인상적인 완향미술관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강진에 온 이라면 누구나 꼭 보고 가야 할 곳입니다.

그리고 조금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면 강진읍 동북쪽 분지에 있는 병영면을 찾아갑니다. 여기엔 병영성과 하멜기념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령 800여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와 그 주변의 고인돌, 100년이 넘은 교회, 골목길마다 늘어선 하멜식 담장이 찾는 이들을 끝없이 걷게 합니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이곳 토박이 주민으로부터 `북송상 남병상'으로 불렸던 이곳 병영상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고 저쪽 어디에 있다는 말무덤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령 500여년이라는 비자나무 앞에 서면 그 위용에 압도되며 동시에 `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킨다'는 말이 사실임을 깨닫게 됩니다.

병영성을 돌아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미루었습니다. 성벽은 거의 복원이 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성 안에 학교를 세우는 등 이런 저런 명목으로 훼손되었던 과거의 흔적을 찾는 일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병영상인의 흔적이 있을지도 모를 오일장터는 이제는 쓸쓸함 마저 느껴집니다.

장터 안쪽에 꽤 알려진 한식당을 찾아가 점심식사를 하고 도룡리로 향했습니다. 병영성에서 3 킬로미터쯤 되는 곳인데 `와보랑께박물관'이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길가에 서 있는 여러 개의 나무 팻말입니다. 가까이 가 보니 지독한 전라도 사투리입니다.

 - 맴생이 띠끼랑께 나무에다 짬매나부러야'
 - 소개기금이 대아지금 대아붕께
 - 아야 거시기 그거 가꼬와야
 - 작년시안 게집머리로 솔찬니 보대께 부럿당께
 - 올랑가 말랑가 우짤랑가

없는 것 없이 다 있는 곳, 와보랑께박물관 내부 전시실.

그냥 읽기만 해서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이 말들 역시 와보랑께박물관에서 수집해 야외에 놓아둔 전시물 인듯합니다. 박물관 입구에서 노인이라하기엔 아직 젊은 남자가 맞이합니다. 김성우 관장입니다. 그의 얼굴에 반가움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찾는 이가 거의 없는 곳이지만 엄연히 박물관이니 입장료도 냅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지난 100년간 사람들이 살며 사용했던 온갖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김성우 관장이 내 주는 커피 한 잔 받아들고 입구에 서서 눈으로 휘 둘러보니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TV 시청 중에 방문객을 맞은 듯 아직 방송 소리가 들립니다. TV가 눈에 들어오는 데 저절로 고개가 갸웃해집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김 관장이 설명합니다. `40년이 넘은 흑백 테레비인데 100볼트 전기를 쓰는 것이라 도란스를 연결해서 틀어놓고 있다' 합니다. 아직도 화면에 아무 이상 없이 깨끗합니다.

한 번쯤 본 듯한 온갖 농기계와 생활도구들이 엉켜 있습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살핍니다. 똥장군과 똥바가지도 있습니다. 과거 재래식 변소의 분뇨를 퍼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습니다. 가만히 보니 똥바가지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군용 철모 내피에 막대기를 고정해 만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생 플라스틱 제품인데 막대를 끼울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상품화된 똥바가지인 듯합니다. 얼마 전 젊은 처자들이 왔을 때 물어보니 그 용도를 모르고 있기에 알려 주었더니 `똥스푼'이라 하더라는 말을 해 줍니다. 상여도 눈에 띄고 옛날식 벽걸이 전화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한 공중전화기도 있습니다. 3000점이 넘는 다는 수집품을 가지런히 정리해 그 용도를 하나하나 설명하기에는 이 전시장은 너무 좁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19세 이상의 성인만 들어갈 수 있는 전시공간이 있습니다. 각종 춘화와 다소 민망한 형태의 도자기 등 꽤 많은 전시품이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 공간에 그의 화실이 있습니다.

와보랑께박물관에서 화가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라져가는 주변의 말과 온갖 물건들이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르는 농부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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