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예술품과 비운의 왕
불멸의 예술품과 비운의 왕
  • 의사신문
  • 승인 2016.04.2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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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사랑한 루드비히 2세가 남긴 명작 건축물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하고 슬픈 사연을 안고 있는 백조의 성, 노이슈반스타인 성 (Schloss Neuschwanstein)이 생각난다. 이 성의 이름은 새로운 반석 위에 앉은 백조라는 뜻이다.

김화숙 전 한국여자의사회장 김화내과 원장

5월의 어느 따사로운 날 독일 의대생과 결혼한 한국 간호사와 함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바이에른 주에 있는 퓌센까지 운전하면서 갔다. 졸음을 쫓으려고 카페인이 함유된 초콜릿을 나누어 먹으면서 운전하고 가던 기억이 떠오른다. 항공사와 여행사에서 동유럽을 선전할 때 책자마다 의례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단골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에서만 보던 그 모습이 눈에 보이자 탄성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입구에서 너무 이른 시간이라 마차가 없어 우리 일행은 쉬엄쉬엄 튼튼한 다리를 믿고 걸어가기로 하였다. 결국 마차 신세를 지기는 하였지만.

미국 여행 중 디즈니랜드를 구경하고 난 후 그 넓은 공원 속의 상징인 디즈니랜드 성을 보고 동화 속에서 읽었던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연상하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답고 예쁜 성이 있을까 싶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로 유명한 디즈니랜드의 성이 바로 노이슈반스타인 성을 본떴다지만 실물이 보고 싶었다.

노이슈반스타인 성의 예술적인 전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마리엔 다리라고 했다. 루드비히 2세 왕의 어머니 이름이라고 한다. 레고 놀이할 때 한쪽씩 붙여 만든 장난감 같은 이 성은 실제 벽돌을 정교하게 쌓아 색깔까지 넣어 어느 방향에서 보던 오묘한 성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이 성을 가까이할수록 감탄의 소리는 물론이고 그저 입만 벌리고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없다. 성의 입구에 도착하자 멀리서 보던 그 모습은 사라지고 고개를 쳐들고 높은 탑을 바라보며 한장 한장 쌓아 붙인 새하얀 석회암 벽돌 성벽을 만져보고 이 높은 산 속에 어떻게 이런 육중하고 아름다운 성을 지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하였을까? 누가 설계하고 디자인하였을까? 한편으로는 애처롭고 부럽기도 하고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기 시작하였다.

알프스의 동쪽 끝자락 퓌센에서 4Km 떨어진 슈방가우 마을에 있는 이 성은 루드비히 2세가 17년을 투자한 성이다. 왕세자 루드비히 2세는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하고 미술과 음악 등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하여 자신이 직접 건축 설계도 하였다고 한다. 왕세자로 있던 1861년에 오페라 〈로엔그린〉을 보고 바그너에게 빠지게 된다. 바그너가 오페라 〈탄호이저〉의 흥행에 실패하여 곤궁에 빠져 있을 때 루드비히는 바그너가 음악에 몰두할 수 있게 자신의 재산으로 바그너의 부채를 탕감해 주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브라반트의 왕녀 엘자와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의 슬픈 전설에 푹 빠져있었다. 중세시대에 전설적 영웅인 〈로엔그린〉은 공주 엘자를 구출하고 결혼하면서 절대 자신의 신분을 묻지 말라는 약속을 한다. 하지만 엘자가 이 약속을 어기고 그의 신분을 묻자 로엔그린은 그녀를 떠나버린다. 작곡가 바그너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오페라 〈로엔그린〉을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루드비히는 아버지의 성인 호엔슈반가우 성에 있는 많은 벽화를 보면서 자랐고 상상의 세계를 펼쳐왔다. 루드비히는 그 오페라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노이슈반스타인 성(1869∼1886)을 짓게 되었으며 이 성에 자신이 상상하고 꿈꾸던 환상의 세계를 심어보고 싶었다. 그는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하여 오페라에 나오는 모든 주인공을 노이슈반스타인 성 속에서 사는 것처럼 꾸미고 싶었다. 〈로엔그린〉에 등장하는 백조를 좋아하여 문고리는 모두 백조 모양으로 만들고 벽화와 커튼에도 수많은 백조를 그려 넣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성 내부를 바그너의 오페라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경을 그린 벽화로 장식하였다. 거실에는 오페라 〈파르지팔〉과 〈로엔그린〉의 장면들이 그려져 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눈으로만 사진을 찍고 와야 했다.

루드비히 2세가 만든 두 번째 작품은 유일하게 완성된 린더호프(1869∼1878) 성이다. 린더호프 성은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을 혼합한 건축 양식이며 베르사유의 별채인 `쁘띠 트리아농'을 연상하며 지었다고 한다. 성 정면에 있는 연못의 분수는 30분에 한 번씩 물줄기를 뿜어 올려 금박을 두르고 있는 호화찬란한 황금 여인상을 적시고 있다. 린더호프의 뒤뜰에는 인공으로 만든 `비너스 동굴'이 있다. 바그너의 작품 중 〈탄호이저〉를 공연하기 위해 만든 동굴로 시인 탄호이저가 여신 비너스와 애정을 나눈 동굴을 재현한 곳이다. 왕은 이곳에서 황금빛 조개 모양의 조각배를 타고 인공으로 일으킨 파도와 푸른 조명을 받으며 연못 속에서 뱃놀이하다 죽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동굴에서 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아래로 철마다 바꾸어 피는 작은 꽃들로 장식된 화단, 곳곳에 설치된 비너스 조각품, 너무나 인공적인 꾸밈에 진력이 나는가 하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말 동상 코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면 또다시 감탄이 나온다.

루드비히 2세는 평소 프랑스의 루이 14세를 존경하였다.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하고 감동하여 베르사유 궁전과 똑같은 성을 짓게 된다. 이 성이 헤렌 킴제(1878∼1885) 성이다.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완전 프랑스식으로 지었다. `신사의 섬'(Herren insel)이라는 지명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뮌헨에서 동쪽으로 약 9Km 떨어진 킴제 호수를 끼고 있다. 바이렌 주에서 가장 큰 호수이며 호수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야 한다. 섬에 도착 후 울창한 숲길을 한참 걷다 보니 베르사유 궁전과 꼭 빼닮은 킴제 성이 보인다. 베르사유 궁전의 축소판인 이 궁전은 어딘가 슬픔과 이루지 못한 한이 맺힌 듯하였다. 불행하게도 우측 건물의 벽은 폭격을 맞은 듯 벽돌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루드비히가 비운의 왕으로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두 성은 미완성의 작품이 된 것이다. 아직도 킴제성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왜 완공하지 않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역사를 그스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가?

루드비히 2세는 정치에 관심이 없고 알프스 산에 있는 성안에 틀어박히기를 좋아했다.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 꿈속에서만 살다 보니 성을 3개나 지으며 국고를 거의 소진하였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그는 점점 현실에서 멀어져가며 자신의 환상 속에 더 깊숙이 틀어박혔다. 결국 루드비히는 강제로 폐위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비운의 왕이 되었다. 1886년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슈반베르그라는 호수에서 익사한 채 발견되었다.

자신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꿈만 먹고 살았던 비운의 왕은 결국 후세에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아름다운 불후의 명작 건축물을 3개나 남겼다. 시간은 사라졌지만, 증명서처럼 남겨진 유산은 후손들에게 영원한 예술품으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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