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9:45 (목)
[임원진칼럼]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임원진칼럼]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의사신문
  • 승인 2016.04.25 10: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미자 서울시의사회 감사

창문 너머 목련나무에 꽃봉우리를 맺은지 며칠새 꽃샘추위로 주춤하더니, 어느날 갑자기 소문도 없이 활짝피었습니다. 나무는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는지 주저하지 않고 만개해 버렸습니다.

강미자 서울시의사회 감사

꽃만보면 봄이 왔지만 봄이 온것 같지 않습니다. 여전히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고 진료실 내부는 썰렁합니다. 그러나 봄이 무조건 반가운 것만은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봄이오면 중국에서 쳐들어 오는 황사가 피해를 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 의사들은 누구보다 더 `춘래불사춘'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합니다.

춘래불사춘의 유래를 살펴보면 기막힌 사연이 있습니다. 중국 전한(前漢)의 원조(元祖)때 `왕소군'이라는 궁녀가 있었습니다.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원나라 황제는 화친을 위해 공주를 보내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래 놓고는 공주대신에 궁녀를 속여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궁녀의 씀씀이를 위해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시켜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책으로 정리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예나 지금이나 황제에게 잘보이기 위해 대부분의 궁녀들이 궁중화가에게 뇌물을 갖다 바쳐 실물보다 더 훨씬 예쁘게 그려넣어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미모에 워낚 자신이 있던 `왕소군'은 뇌물을 갖다 바치지 않아 추한 얼굴로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궁녀들의 초상화를 뒤적이던 황제눈에 못생긴 `왕소군'이 보이자 낙점하여 오랑캐땅으로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흉노족 사신들이 와서 원나라 공주(?)를 모셔 가는데 황제가 마지막 가는 길 배웅을 하며 보니 기가막힌 절세미인일 줄이야. 황제가 한탄을 해도 이미 때가 늦어 왕소군은 오랑캐땅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뜻밖의 절세미인을 얻은 흉노왕은 뛸뜻이 기뻐하여 갖은 환대를 하였지만 `왕소군'의 마음은 고국산천 생각에 눈물만 흘리고 얼굴을 피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고 합니다. 이 일로 원나라의 궁중화가는 왕에게 참수를 당하고 화첩은 폐기하였다고 합니다.

후세 당나라의 시인 `동백규'가 `왕소군'의 처지를 들은뒤 시를 한수 읊었는데, 그 한구절을 소개하면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
- `오랑캐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더라'라고 읊어 가슴 아프고 애틋한 `왕소군'의 처지를 위로 하였다고 합니다. 슬픈 이야기죠.

우리의사들의 처지가 비슷합니다.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의약분업 초기에 의료계에 봄이 오는가 했습니다. 복지부장관까지 나와 의사들을 잘 살게 해주겠다고 공언을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슬그머니 처방전료가 사라지더니 추운 계절로 내몰더군요. 그래 5년만 참자. 봄이 오겠지. 참고 기다렸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여전히 추운 계절로 내몰더군요. 다시 5년만 참자. 이곳저곳 의사들 옥죄는 법만 대량생산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의사는 죄인입니다. 아무리 추워도 봄은 오겠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모두들 환호했습니다. 허나 무슨 법, 무슨 법, 무슨 법 해가며 목을 조이기 시작합니다. 숨을 못 쉬게 말입니다. 진료실에 수술용 산소기를 틀어 놓아야 될 정도입니다. 또 5년만 기다리자. 또 참고 기다렸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당선 전 일산에 오셔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선생님들에게 올바른 진료환경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모두들 만세를 불렀습니다. 정말 만만세를 불렀습니다. 눈물이 나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또 3년이 지났습니다. 의사들을 옥죄는 법은 더 많아 지고, 죽지 못해 환자를 봅니다. 더욱이나 환자보는 것 보다 행정적 서류 작성하는 일로 시간을 다 보냅니다. 엄동설한 후에 정말로 봄이 오나요? 요새 정부의 왕도 정부 화가(?) `모연수'를 시켜 모든 전문직의 초상화를 그려 화첩에 보관하는 모양입니다.

주변머리 없는 의사는 당연히 화가에게 뇌물(?)따위는 안 줘 예쁘게 그릴 일이 없겠죠. 산에 자주 다니는 필자에게 3, 4월은 배낭이 보통 때의 한 배 반은 됩니다. 겨울용 장비, 봄 장비 두 가지를 다 넣어야 하니까요. 아지랑이가 아른거리고 연두색의 새순이 나오는 가지마다 봄은 오는데, 실제는 봄 산행이 위험합니다.

일찍 봄을 느껴보려다가 혼난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말입니다. 눈이 녹지않은 언덕에서 아이젠을 준비 안해 엉덩방아를 찧고,설녹은 진흙탕에 미끄러져서 바지에 지도를 그리고 말입니다. 언덕에서 흙이 무너지고, 얼었던 바위가 녹아 난데 없이 돌덩어리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3월 말에 제주도에 갔다가 심한 눈보라로 한라산에 입산조차 못하고 발길을 돌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항상 조심을 한다고 하지만 애를 먹습니다. 봄을 기다리는 많은 산악 애호가들에게 쉽게 봄을 내주지 않습니다.

`왕소군'의 `춘래불사춘'은 이렇게 한국에서 왠지 잘 팔리고 있습니다. 많은 곳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