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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과 쌍벽을 이루었던 병영상인의 고향
개성상인과 쌍벽을 이루었던 병영상인의 고향
  • 의사신문
  • 승인 2016.04.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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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 있는 정담 〈152〉 

■강진군 병영면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가 낮선 곳에서 낮선 사람을 만나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애초에 강진의 북동쪽 분지에 있는 병영성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하멜의 흔적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치 깊은 바다에 잠든 오래된 마을을 만난 느낌이었습니다. 학교도 있고 면사무도 있는 제법 규모 있는 소도시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풍차, 넓은 마당에 우뚝 선 이국 옷차림의 동상, 기념관 등이 제법 요란한 이곳도 고요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멜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와 마을의 안길로 들어서니 사람이 살고 있다는 흔적 없이 무너지고 있는 집들이 더 많습니다. 360년 전 이곳에 억류되어 있던 하멜 일행이 전해준 담쌓기 양식이라는 빗살무늬 담장만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곁에서 자라나 이젠 그 고인돌을 왜소하게 만든 수령 800여년의 은행나무와 그에 못지않게 거대한 비자나무가 전하는 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듣고 하멜기념관으로 다시 돌아와 다리쉼도 할 겸 찻집에 앉았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을 끌어안고 있는 고인돌과 추정 수령 800여년의 은행나무 그리고 110년 전에 세워진 교회가 이곳 병영면의 오랜 역사를 전한다. 겸손하고 검소했으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병영상인들의 모습을 바위와 나무가 전하고 있다.

예순이 넘은 찻집 주인은 겨울이면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찾아오는 이가 없는 날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찾아 들어오는 손님이 더욱 반가울 것입니다. 커피를 주문했는데 과일이며 군고구마까지 자꾸 내오니 그와의 이야기가 길어 졌습니다. 또 한 사람이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찻집 주인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외지 사람은 아닙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문득 그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곳 강진군 병영면의 상인들이 참으로 억척스럽고 장사수완이 좋았다고 합니다. 옛날 이곳에서 많이 재배된 목화솜을 외지로 반출하는 것은 금지했는데 병영상인들은 사람들을 모아 품삯을 주고 두툼하게 솜을 넣어 만든 옷을 입혀 함께 나가 현지에서 다시 솜을 빼내 팔았다는 이야기를 구수하게 풀어냈습니다.

병영상인의 이야기는 이제는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만 남아 있습니다.  한때 ‘북에는 개성상인 남에는 병영상인이 있다’는 말이 회자될 만큼 사업수완이 좋았던 사람들은 이제는 흔적으로만 남았습니다.

병영상인의 근원은 멀리 청해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통일신라시대 강진현에 속해 있던 청해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장보고의 상업에서부터 시작해 고려시대엔 강진의 청자가 해외로 공급되는 등 강진을 중심으로 한 상업 활동은 활발했습니다. 그리고 조선 초기 태종 때 광주에 있던 전라병영성이 이곳 병영면에 자리 잡으며 병영상인은 본격적으로 그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라병영성의 이전과 함께 병영면은 2천호의 큰 고을로 성장했습니다. 군수물자와 주민들의 생필품을 조달하며 병영상인들의 규모가 커지고 점차 그 사업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1895년 전라병영성이 폐지된 후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 병영상인은 만주까지 진출했다고 합니다. 전라도 일대의 오일장은 병영상인이 없으면 열리지 못할 정도로 번성했고 그와 함께 병영면의 생활형편도 좋았습니다. 1963년도 이곳에 극장이 있었다 하니 당시만 해도 이곳은 살기 좋은 마을이었을 것입니다.

오일장마저 쇠퇴하고 병영상인들은 그 무대를 더 넓혔지만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습니다. 이젠 아무도 병영상인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강진의 뜻있는 사람들이 병영상인의 자취를 찾아 그들의 활동과 행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병영상인들은 전국적인 유통망을 조직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했으며 투자에 과감했습니다.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진출하고자 하는 지역에 있던 기존의 상인들을 배려했던 상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겸손과 검약의 미덕을 갖춘 상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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