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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드뷔시 전주곡 〈목신의 오후〉 작품번호 86 
클로드 드뷔시 전주곡 〈목신의 오후〉 작품번호 86 
  • 의사신문
  • 승인 2016.04.1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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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49〉

■자연과 상상사이의 미묘한 흐름을 살려낸 인상파 걸작

“나는 감각을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데카르트에서 비롯한 견고한 명제를 인용하여 인상주의를 정의하였다. 모네의 작품 〈인상, 해돋이〉에서 유래된 인상주의 미술은 보들레르, 말라르메를 중심으로 한 모호한 분위기의 상징주의 문학과 함께 점점 밝아오는 여명처럼 각 예술 분야로 파급된다.

이 움직임은 음악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낭만주의 음악어법의 핵심인 조성과 화성을 붕괴시키고 독자적인 음악기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낭만주의의 환상과 공상의 모순을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을 정확하게 보려는 움직임과 함께 대상에 대한 주관적 인상을 표현하는 것이 사실주의와 다른 인상주의의 본질인 것이다.

인상주의 음악의 중심에는 드뷔시가 있었다. 드뷔시의 음악은 특정한 선율이 근본이 되지 않고 마치 세포가 분열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인상이 음악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는 구름, 바람과 같은 유동적인 운동체의 순간적인 인상을 색채적으로 음악에 담고자 했고 선율의 움직임보다는 음색의 미묘한 변화를 그리고자 하였다. 그는 “다른 예술에 비해 음악은 자유에 더 많은 중요성을 부여한다. 자연의 일정한 법칙에 통제받기보다는 자연과 상상 사이의 미묘한 상호작용 속에서 활동하는 자유를 나는 원한다.”라고 자신의 음악을 정의하였다.

1892년 30세의 드뷔시는 말라르메의 상징시 `목신의 오후'를 음악화하고자 하였다. 처음엔 전주곡, 간주곡, 종곡 등 세 개를 계획했으나 전주곡만을 작곡했다. 관현악으로서 선율적인 구성을 전혀 갖지 않은 이 곡은 화음의 깔끔한 설정, 단편적인 선율의 모자이크와 각 악기의 음색의 강조를 통해 섬세하고 관능적인 감각을 표현하였다. 2년 후 1894년 프랑스 국민음악협회에서 초연되자 호평을 받으면서 그의 작품세계도 확고하게 정립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말라르메의 시가 지닌 환상적인 시정을 그윽하면서도 정교하게 살려냄으로써 인상주의 음악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그 줄거리를 보면 `목신(Pan 또는 Faune)'은 제우스와 요정 아익스 사이의 아들이다. 그의 상반신은 이마 양편에 뿔이 달린 인간 모습을 하고 하반신은 동물의 몸으로 목축의 신이자 산과 들의 신이기도 하다. 그는 음악을 좋아하여 양치기의 풀피리를 발명하여 그것을 잘 불었다. 덥고 나른한 여름날 오후, 나무 그늘에서 졸던 목신은 잠이 깨어 풀피리를 조용히 불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는 꿈과 현실을 헤매면서 조금 전 시냇가에서 목욕하던 요정들을 생각한다.

그는 이 몽상의 환영에서 사랑의 정열을 느끼고 이것을 잡으려 하지만, 님프의 환영은 곧 사라지고 그의 욕정은 한층 더 공상을 펴 가다가 마침내 사랑의 여신 비너스를 포옹하게 된다. 이윽고 환상은 사라지고 모래 위에 비스듬히 누운 목신은 풀 섶에서 다시 졸기 시작하는데, 이 때 막연한 권태가 그의 마음에 엄습해 온다. 1912년 이 작품은 전설적인 무용수 니진스키의 안무에 의해 발레작품으로 초연되는데 무용수들은 머리와 발은 옆모습을 유지하고 몸은 전면을 향하는 마치 고대이집트 벽화처럼 이차원적인 영상이 돋보였다. 니진스키의 이런 실험은 당시 관객들의 논쟁 속에 극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마지막 장면에서 요정의 스카프를 이용한 목신의 자위행위는 엄청난 충격으로 파리시민은 그를 외설죄로 비난하였고 로댕이나 프로스트 등 예술가들은 이에 맞서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반주 없이 나타나는 플루트 주제는 목신이 부는 풀피리의 곡조로서 몽환적인 동경을 묘사하고 있다. 현의 트레몰로와 함께 목신은 그 환영으로 관능적인 정열을 느끼게 된다. 몽환의 세계에서 욕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게 하는 주제가 오보에에 이어 현으로 연주된다. 이 주제는 일종의 모자이크처럼 오묘하고 섬세한 변화를 지니고 있다. 이윽고 곡은 클라이맥스의 주제에 이르는데 이는 유일하게 음악적으로 정리된 선율로 비너스의 환상은 물론 관능의 달콤한 희열까지 느끼게 하는 주제이다. 이어 목관과 현의 멜로디가 연결되면서 약한 트레몰로 반주와 함께 다시 원래의 풀피리의 주제가 들려온다. 목신의 환상의 꿈도 사라지고 정적 속에서 하프의 하행선율과 호른의 화음이 목신의 환상 뒤에 오는 울적한 적막감을 절묘하게 나타내고 있다.

■들을 만한 음반
△피에르 몽퇴(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Decca, 1961)
△샤를 뮌슈(지휘), 보스톤 심포니오케스트라(RCA, 1962)
△에른스트 앙세르메(지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Decca, 1957)
△피에르 블레즈(지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DG,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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