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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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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16.04.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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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36〉

누이 동생의 아들인 조카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뜻밖에 H를 만났다. 누이 친구로 옆집에 살던 그녀는 어릴 적부터 모범생이었다. 중학교 교사 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은 그림을 그리며 산다고 했다.

우리 집이 멀리 이사를 가는 바람에 소식이 끊겨 45년 만에 만났지만 어릴 때 기억이 생생하여 반갑기 그지 없었다. 내가 어릴 적 살던 동네는 당시로서는 서울 변두리 지역인 영등포 철도역 뒤에 있는 일본식 주택가였다. 식민지 시절에 유명한 운송회사인 조선운수(나중에 한국운수, 대한통운으로 바뀜)의 사택 단지였다. 당시로는 제법 크고 번듯한 기와집이어서 보통 다른 가구가 전세로 들어와 한 집에서 살았다. 그야말로 식구처럼 지내며 별미 음식을 하면 나누어 먹고, 방학이면 점심식사 정도는 몇 집 식구가 한솥밥을 먹곤 했다. 특히 우리 집과 옆집과 사이는 담이 무너져 아이들도 한 집처럼 넘나들었다. 옆집으로 우리 이모님 댁도 이사와 양쪽 집에 다섯 가족이 거의 20년을 같이 살았으니 실로 이웃사촌이었다.

골목길 주택가로 비교적 차분한 환경 덕인지 학구적 분위기에서 자란 아이들은 공부를 제법 하였다. 양쪽 집에서 서울대학생이 4명이나 나왔고, 다른 아이들도 유수한 대학에 다녔다. 사실은 형제처럼 섞여 지내며 자연스럽게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자란 덕이다. H는 또래 중에서 제일 키가 크고 어릴 때부터 철이 들어 부모들이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고 키웠다. 우리 집에는 책을 파는 아버지 친구분 때문에 구입한 두꺼운 〈세계명작전집〉이 30여권 있었는데 사춘기에 들어선 그녀가 모두 통독했단다. 우등생이었으나 어려운 집안 사정을 잘 아는 H는 학비가 저렴한 교육대학으로 진학하여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는 것이 내가 들은 마지막 소식이었다. 그녀가 중이염 때문에 우리 병원에 다니고 있고, 아직도 독서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결혼식장에서 듣고 내 수필집 두 권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얼마 후 H는 편지를 한 통 보내왔다.

“보내 주신 책을 받자마자 하나, 둘 책장을 넘기다 앉은 자리에서 반을 읽었답니다. 그 다음 날 또 반을 읽고, 두 권을 읽는 데 5일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그냥 스마트폰으로 `책 잘 받고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문자만 보내기에는 책에서 받은 감동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운 인사라는 생각이 들어 저절로 펜을 들게 되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재미있게 후딱 이 책을 읽었는지, 읽는 내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웠는지 작가에게 알려주는 것도 독자의 몫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자라왔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청년 시절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의학 공부는 어떻게 했으며 무슨 책을 읽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60년 평생 그 많은 시간 어떻게 지냈는지… 소소한 일상이 글 속에서 마치 누드화처럼 다 드러났답니다.

독후감으로 `한마디로 감동이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생 독서와 학문에 열중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뜻한 바대로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또 읽었으며 의학을 공부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논문을 쓰면서 밤을 밝혔겠지요.

글을 쓰게 된 동기도 언젠가 논문을 남보다 빨리 쓰는 자신을 발견하고 `혹시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한 편 한 편 쓰게 되었다면서요? 덕분에 독자에게는 한 사람의 일생을 거울 들여다보듯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참으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누구의 인생을 엿보는 그 이상의 즐거움이 있었답니다. 잘 몰랐거나 대충 알고 있었던 사실을 다시금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내가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선배 언니가 부생육기를 강추하여 읽은 적이 있는데 35년이 지난 후 `아! 그 책이 그런 내용이었지'하고 자고 있는 뇌리의 한 부분을 툭 쳐주는 느낌, 그런 신선한 느낌은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되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아는 만큼 느낀다'라는 말로 바꾸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일상일 뿐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누구는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며 소중하게 여기고 어떤 역할을 하고자 노력한 삶의 태도가 그대로 전해집니다.

어린 시절 옆집에 살던 추억 속의 친구 오빠가 훌륭한 의학자가 되어 우리나라 의학계에서 한 몫을 하고 있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특히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얻은 생각을 글로 남기고 책으로 출간하여 `아름다운 한 사람'으로 새롭게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남은 인생과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보고 싶은 책 더 많이 읽으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비인후과 진료 차 병원에 온 그녀가 내 연구실을 방문했다. 교육대학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가 되자마자 자기가 그리던 미래상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단다. 마음 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던 화가가 되기 위해 야간 미술대학에 입학하여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학생으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했다. 마침내 중학교 미술교사가 되어 좋아하는 미술을 가르치다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망설이지 않고 퇴직하여 자유롭게 작품 생활을 즐기고 있다.

교사 생활도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신기하고 기쁘더라고 했다. 선생님의 남다른 애정을 학생들도 알아서 첫 번째로 담임을 맡았던 제자들이 중년이 된 지금도 만나고 있단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회화 전시회도 몇 차례 열었다고 한다. 실로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2014년에 출간한 졸저 〈참 좋은 인연〉에 내 생애가 다음과 같기를 염원한 글이 있다.

 “내가 선택한 외길에서
 순수한 열정으로 노력하였고,
 인간과 문화에 대한 애정을
 일생 동안 가꾸고 나누려 하였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람에 대한 믿음과 책 읽기, 그림 보기, 음악 듣기에서 나와 같은 과科임을 알 수 있었다. 일생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흔히 형제 사이로 비유한다. 이웃에 살았던 H는 45년 만에 다시 찾은 내 `사촌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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