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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의사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갈 길이 멀다
[시론] 한국의사의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 갈 길이 멀다
  • 의사신문
  • 승인 2016.04.14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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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진 의사평론가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 명이비인후과의원장

2011년 3명의 고대 의대 남학생이 한 명의 동료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의대생의 신분으로 저지른 사건이지만 피해 여학생뿐 아니라 의사집단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피해를 주었고, 최근 헌법소원에서 위헌판결이 난 소위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최근 이 사건으로 출교된 학생이 성균관 의대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해당 의대 학생회에서 이 학생의 출교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함께 고민하고 싶은 몇 가지 문제점들을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 왜 해당 학생은 의사가 되려고 하는지 묻고 싶다.

의사, 법률가, 성직자를 일컬어 전문직(profession)이라고 한다. 전문직은 자체적으로 규율과 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직종과 다소 차이가 있다. 전문화된 자율교육과 자율징계를 통한 전문가의 자질 유지와 관리는 이들이 전문직으로 인정받는 근거가 된다. 만약 소속 구성원들이 의사로서 갖추어야할 규범에 동의하지 않고 규율과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전문직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의사들이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얻는 가장 큰 바탕은 의사들 스스로 자율규제를 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전문직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복잡한 지식과 술기를 습득하고 그와 관련된 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지속 발전시켜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소명(천직)을 말한다. 그러기에 일반적인 직업(occupation)과는 다르다. 다른 직종과 달리 전문직은 흰 가운과 법의, 그리고 성직자들이 입는 성의를 입는다. 흰 가운과 법의, 성의의 의미는 남다르다. 인간이 어떻게 같은 인간의 죄를 판단하고, 죄인인 인간이 인간의 고해성사를 듣고 죄를 사해주며, 인간이 인간의 몸에 칼을 댈 권리가 있는 것일까? 전문직이 입는 성의는 일반 직종들이 입는 작업복과는 차원이 다르다. 인간이 인간의 죄를 판단하고 사형을 언도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신이 법관에게 위임한 표시이고, 인간이 신을 대신하여 세례와 성례를 베풀 권한을 준 것이고, 인간의 배를 칼로 가르고 치료할 권한을 신이 위임한 표시이다. 소명을 받은 표식인 것이다. 그러기에 단지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해 선택하는 목적 그 이상의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의업을 가져야 한다. 해당 학생은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는지 알고 싶다.

둘째, 성균관 의대 학생회의 출교조치 요구는 이중 처벌인가?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있는 이 학생은 이미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기에 이중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있다. 성범죄의 전력이 있어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볼 때 이 학생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의 윤리기준은 감정에 치우쳐서는 고결함과 공정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우리가 먼저 짚고 가야할 점이 있다. 이번 성균관 의대 학생회가 요구하는 출교 조치는 `이중 처벌이 아니다'는 것이다. 고대의 출교결정에 따른 후속조치일 뿐이다.

2011년 성추행 사건으로 고대 의대에서 출교를 한 것은 이 학생은 앞으로 의학교육을 받아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결정을 의학 교육기관 전체를 대표하여 공표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출교 요청은 이러한 결정의 후속조치 일뿐이지 이중처벌이 아닌 것이다. 교육기관과 교육자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을 학생들이 용기 있게 나서서 요구한 것이고, 의과대학 학생들의 자정의지와 윤리성을 보여준 일이다. 오히려 기성 의사들의 윤리적 둔감함에 경각심을 준 사건이다. 뼈를 깍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없이는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의 가치와 전문직에 대한 사회의 신뢰를 유지할 수 없다.

섯째, 성균관 의대의 교육자들에게 묻고 싶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기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성균관 의대 당국의 입장 표명에 많은 실망을 하게 된다. 전문직업성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으로서 보인 반응은 과연 교육기관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입학 당시 학교에서 2011년 고대 의대의 결정을 존중한 후속조치로서 입학을 허락하지 말았어야 했다. 전문직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서 전문직 윤리를 실현할 전문직업성의 가치를 가르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성균관대학교의 당국자들은 전문가 집단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보여야 할 단호한 입장을 내 놓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비겁함을 보였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발뺌을 한다면 전문가 집단을 양성할 자격이 없어 보인다.

전문직업성은 이론과 강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성범죄로 인해 출교를 당하거나,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의과대학 입학이 허락되지 않고, 의과대학를 다니던 중에 저지른 비윤리적 행위(심각한 성범죄, 약물, 컨닝…)를 한 학생은 의사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기준이다. 전문가 집단은 법에 없더라도 자체적으로 자율기준을 만들고 지킬 줄 아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자율규제는 전문직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법에 없더라도 학교 자체적으로 전문직이 지켜야 할 기준들을 제시하고 지켜나가는 적극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넷째, 성균관 의대만의 문제인가?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교육을 이끌어 가고 있는 단체가 있다, 의과대학 학장협의회가 있고 각 의과대학의 의학교육 역량을 평가하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있다. 특히 실제적으로 전국 의과대학의 교육현장을 이끌고 가는 단체가 학장협의회다. 전문직업성이 위협받고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낳게 한 이번 문제에 대해 전국 의과대학 학장들의 공통된 입장 표명과 기준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의과대학생들의 입학기준과 피교육자의 자격기준을 제시하여야 할 것이고, 의사국가고시의 자격을 부여 하는 기준 등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 전문직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의과대학의 최고 책임자들로서의 결단과 행동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모든 의사들에게 전문직 윤리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전문직 윤리란 적용 대상에 따라 환자에 대한 윤리, 동료의사에 대한 윤리, 동료 의료인에 대한 윤리, 교육자와 피교육자와의 윤리 등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환자의 이익을 우선하는 환자에 대한 윤리가 중요하다,

그와 못지않게 동료의사에 대한 윤리가 중요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 원전에서 강조하는 것이 동료에 대한 윤리이다. 선서의 2단락에서 “나는 이 의술을 가르쳐 준 스승을 부모처럼 여기고 나의 삶을 스승과 함께 하여 그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나의 것을 그와 나누며 그의 자손들을 나의 형제로 여겨 그들이 의술을 배우기를 원하면 그들에게 보수나 계약 없이 의술을 가르칠 것이며 내 아들들과 스승의 아들들, 그리고 의료관습에 따라 선서하고 계약한 학생들에게만 교범과 강의와 다른 모든 가르침을 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동료의사를 형제처럼 여기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과 의학교육은 자질을 갖춘 사람에게만 배울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형제처럼 아끼고 존중해야 할 동료를 성추행한 사람을 다시 동료로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문구로만 읊고 정보로만 아는 구절이 아니라 살아있는 규범으로 인정하고 의사들과 의학교육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에 적용시켜야 할 구절이다.

대한민국 의사들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받고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의업이 일반 직업과 다른 직종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직종보다도 더 많은 의무과 책임, 그리고 윤리적 민감도를 유지해야 하는 직종이라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을 구현하기 위한 논의와 깊은 고민 그리고 단호한 결단이 의학교육기관과 의사들 모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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