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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서곡 〈에그몬트〉 작품번호 84 
베토벤 서곡 〈에그몬트〉 작품번호 84 
  • 의사신문
  • 승인 2016.02.2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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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43〉

■영웅에 대한 베토벤의 이상을 웅장하게 표현

서곡은 원래 오페라가 시작할 때 첫머리에 그 오페라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하는 곡이었으나 18세기 후반부터는 단독적인 곡으로 연극이나 소설의 소재를 요약한 교향곡 형식의 작품으로 많이 작곡되었다.

대표적인 서곡으로 베토벤의 〈레오노레 제3번〉, 〈웰링턴의 승리〉, 〈에그몬트〉 등과 롯시니의 〈윌리엄 텔〉, 주페의 〈시인과 농부〉, 〈경기병〉서곡,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서곡,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 〈대학축전 서곡〉 등이 있다.

베토벤은 평소 오페라 등 극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오페라는 〈피델리오〉만 남겼을 뿐이다. 그 이유는 그의 이상과 기질에 맞는 대본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평소 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너무 경망스럽다고 하여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코지 판 투데〉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비평으로 경박스런 대본에 대해 통박하기도 하였다.

다만 〈마술피리〉만큼은 그 내용이 영웅적인 요소와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어 선호하였는데 이를 반증하듯 〈마술피리〉의 아리아를 주제로 한 두 곡의 첼로 변주곡을 작곡하였다.

괴테가 12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한 5막의 비극적 연극 〈에그몬트〉는 내용이 애국적이면서도 영웅적인 극으로 비엔나 부르크 극장에서 막을 올리게 되었다. 당시 극장 지배인 하르틀은 베토벤에게 그 연극에 연주할 부수음악 작곡을 의뢰하였다.

평소 괴테의 사상과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있었던 베토벤은 이 극을 보자마자 수락하게 되는데 먼저 서곡과 클레르헨의 노래, 인터메조(막간 음악) 등을 포함하여 10곡을 빠른 시간에 완성하게 된다.

그 후 극 상연에 맞춰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그해 5월 성공리에 초연되었다. 그러나 초연이후 재상연되는 기회가 없어지면서 이 곡들 중 구성이 뛰어난 서곡만 오늘날까지 연주되고 있다. 이 곡은 체질적으로 영웅과 투쟁적인 것을 좋아했던 베토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에 적합한 작품이었다.

베토벤이 서곡 〈에그몬트〉를 완성하였을 무렵, 괴테가 몇 주 동안 비엔나에 방문하여 체류하게 된다. 그 기간 중 두 사람은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바이마르에서 베토벤은 괴테와 산책을 하게 되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옆을 지나면서 그들을 향해 모자를 벗고 인사를 하자 괴테는 일일이 그에 답례를 하고 있는데 베토벤은 상념에 잠긴 듯 하늘만 응시하고 있었다. 괴테가 푸념하듯이 말하길 “선량한 시민들이란 참으로 따분할 뿐이요, 무조건 인사만 해대니…” 그러자 베토벤이 말하길 “선생님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인사는 전부 제게 하는 겁니다.”라는 유머러스한 일화도 전해온다.

〈에그몬트〉는 역사상 실재하는 인물인 네덜란드 태생 라모랄 에그몬트 백작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다. 1568년 스페인군에 체포되어 처형당하는 국민적 영웅의 생애를 그린 곡으로 폭군의 압제 하에 에그몬트 백작의 기백과 용기가 전반에 걸쳐 비장하게 그려지고 있다.

원래 귀족집안 태생의 에그몬트 백작은 독립운동의 기수로 국민들로부터 높은 신망을 받고 있었으나 스페인의 핍박과 압제에서 조국을 구하려다 독립전투에서 스페인군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에그몬트가 체포되자 그의 애인 클레르헨은 그를 구하려다 실패하여 자살하게 되고, 천사로 등장하여 에그몬트를 격려한다. 그가 처형된 후 그의 죽음에 자극받은 국민들은 더 열렬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게 되고 마침내 1578년 스페인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되는데 에그몬트가 처형된 지 꼭 10년 후의 일이었다.

이 서곡은 첫 서주부터 에그몬트 백작답게 장대하면서 비장한 선율이 흐른다. 이 곡은 비극적인 서주를 지닌 소나타 형식의 두 개의 주제는 강인한 성격과 따뜻한 애정을 간직한 에그몬트 백작의 성격을 절묘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곡의 주제가 환상적으로 전개되면서 차츰 여러 가지 형태로 변화하여 애국의 열화로서 불타는 듯 웅장한 선율이 나타나게 된다. 서곡의 클라이맥스와 종결부는 에그몬트 백작이 단두대 위에 섰을 때 연주하는 `승리의 교향곡' 선율을 그대로 인용하여 비장한 폭발력을 나타내고 있다.

■들을 만한 음반
△빌헬름 후르트벵글러(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47)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67)
△슈미트-이세르슈테트(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ecca, 1965)
△레너드 번스타인(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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