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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칼럼] 긍정의 힘
[임원진칼럼] 긍정의 힘
  • 의사신문
  • 승인 2016.02.0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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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수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
송정수 학술이사.

내과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접하다보면 성격, 직업, 배경, 그리고 성장 환경이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 다양하게 호소하는 증상을 듣게 된다. 진찰 결과 다행히 나쁜 병이 아닌 경우에는 환자에게도 좋지만 나에게도 부담이 많이 줄게 된다. 그렇지만 세상 일이 모두 잘 풀리게되는 경우는 드물다. 진찰을 하다 보면 말기 암이나 치료가 매우 힘든 자가면역질환을 진단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환자에서 처음에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진단을 반복하여 확인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이런 경우에는 매우 곤혹스럽고 최선의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애를 쓴다.

 

필자의 전공 과목은 류마티스내과로 주로 다양한 종류의 관절염과 전신홍반루푸스와 같은 자가면역질환 환자를 많이 보는데 골관절염(퇴행성관절염)이나 통풍, 일시적인 근육통, 관절통 등은 비교적 치료 효과가 좋아 환자도 만족하고 의사인 필자도 치료 결과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신의 모든 관절이 붓고 아프고 자꾸 재발하는 류마티스관절염이나 뇌, 폐, 심장, 신장, 혈관 등 전신의 거의 모든 조직을 침범하여 염증을 일으키고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전신홍반루푸스, 피부와 폐, 신장, 심장 등의 내장이 점차 딱딱하게 변해가는 전신경화증, 팔 다리의 근육이 점차적으로 녹아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다발근염 등 치료하기가 비교적 힘든 질환을 가진 환자들은 환자들도 많이 아프고 치료하는 의사도 곤혹스런 경우가 많다.

질병의 종류나 심한 정도에 따라 환자들이 의사에게 대하는 태도가 다를 수도 있지만 가장 의사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환자의 성격과 인격이다. 어떤 환자는 단순한 퇴행성 관절염 같이 심하지 않은 질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료실에 올 때마다 왜 병이 빨리 낫지 않느냐? 약은 제대로 쓰고 있는 것이냐? 이 약을 먹으면 부작용이 생기지 않느냐? 등등의 불평과 불신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고 이와 반대로 전신홍반루푸스처럼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질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웃는 얼굴과 평화로운 미소를 띄우며 증상이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잘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고 진료를 받는 환자들도 있다. 이런 환자들을 보면 필자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고 환자에 대한 애정이 더욱 두터워져 쾌유를 향한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더욱 깊이 들게 된다.

다음은 대조적인 환자 두 명의 예를 들고자 한다.

30세 남자로 아침마다 허리에 통증이 생겨서 진찰과 방사선 검사, 혈액 검사 등의 결과로 강직척추염이란 진단을 받은 환자가 있었다. 강직척추염이란 병은 HLA-B27이란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환자에게서 발생되는 자가면역성 척추관절염으로 현재로서는 완치되는 방법이 없고 다만 항류마티스 약물로 통증을 줄이거나 없애고 질병의 진행을 막는 것이 최선인 질병이다. 이 병의 증상으로는 허리, 척추, 무릎, 손목, 발목, 꼬리뼈 등 다양한 관절에 관절염이 생기고, 눈에 포도막염이라는 염증이 생겨서 시력을 잃을 수도 있고, 심장과 신장, 폐에도 이상이 발생될 수 있는 까다로운 질병이다. 이 질병에 걸린 환자는 병의 진행과 합병증을 막기 위해 약을 거의 평생 복용해야 한다. 처음 진단되었을 때 이 환자는 병에 대한 설명을 모두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약을 꾸준히 복용하지 않고 아플 때만 조금 먹더니 치료 효과가 없다고 불평을 하고는 내과 외래 방문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 환자는 나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다가 3년이 지난 후 눈에 심한 충혈이 되어 다시 내과 외래에 왔다. 눈에 포도막염이라는 합병증이 생긴 것이었다.

그동안 치료를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까 약만 먹으면 속이 쓰리고 부어서 치료를 하지 않았다고 하며 필자에게 왜 이런 독한 약을 사용했느냐며 항의를 하였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치료도 꾸준히 받지 않고 부작용에 대해 의사에게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니 이를 어찌 하리요. 일단 급한 대로 입원을 시켜서 실명을 막기 위해 강력한 치료를 하였고 포도막염은 많이 호전되었다. 입원 기간 중 내내 약물 치료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과 환자의 항의에 시달려야 했고 아침에 회진을 돌 때마다 30분씩 논쟁을 벌이곤 했다.

그 환자가 많이 호전되어 퇴원하는 날 의료진과 간호사들은 한숨을 놓았다. 서로의 불신으로 인해 너무 진료진을 피곤하게 하여 기력을 다 빼 놓게 했기 때문이다. 퇴원 후 외래로 계속 치료를 받으러 오라는 필자의 권유를 뒤로 한 채 그 이후로 그를 보지 못하였다.

27세 여자로 심한 전신홍반루푸스를 앓아서 전신의 관절과 신장이 많이 손상된 환자였다. 소변에서는 단백질과 피가 계속 나오고 몸이 자주 붓는 환자였다. 3년 전에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은 하였으나 루푸스를 앓는 과정에 난소가 파괴되고 월경이 끊어져 임신을 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 환자는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라는 다양한 부작용이 있는 약물로 치료받았고 이로 인해 몸이 붓고, 살이 찌고, 피부가 약해지는 등의 다양한 부작용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허리와 다리 쪽으로 피부가 빨갛게 변하고 물집이 생기고 매우 아픈 증상을 보이는 바이러스성 감염질환인 대상포진에 걸린 것이다. 이 환자도 입원을 한 후에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받는 도중에 심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의사나 간호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고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자기보다 더 아픈 다른 환자의 병 수발도 자기가 대신해 주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녀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아기는 어떻게 할 예정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녀가 대답하기를 자신이 아기를 갖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나 이로 인해 다른 세상을 돌아 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 루푸스란 병이 나를 약하게 하여 나보다 더 약한 사람을 돌아보게 하였다고 하였다. 그로 인해 자기는 생명을 누릴 수 있는 기쁨과 남을 도울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불우한 아이들을 입양하여 누구보다 더 훌륭하게 키워 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도록 가르치게 만들겠다고 하였다.

참으로 감동스런 말이었고 의사-환자간의 신뢰는 더욱 굳게 되었다. 그녀의 대상포진은 곧 치료되어 퇴원하였다. 그 후 외래를 방문하면서 잘 치료받고 있으며 하늘의 감동으로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루푸스 증상은 많이 호전되어 관해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리컵에 물이 절반정도 차 있다. 어떤 이는 “물이 반밖에 없네” 하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있네” 한다.

이 세상에는 밝은 면도 있고 어두운 면도 있다. 이 세상의 어두운 면만 보는 사람이 있고 밝은 면만 보는 사람이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의 나쁜 면만 보고 자기에게 피해가 생기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면서 남을 믿지 못하고 비관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으면 이를 의지하고 성취시키고자 노력하면서 기쁘게 살고 자기보다는 남을 배려하며 자기 주위의 사람들을 믿고 자신을 희생하여 이웃을 기쁘게 해줌으로써 즐거움을 얻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더 행복할까? 또 같은 환경과 상황일지라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 더 일찍 사망한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직업별로 볼 때 항상 감사하고 축복하며 지내는 성직자의 수명이 가장 길다는 보고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이런 면을 볼 때 같은 상황이라도 좋은 면, 밝은 면, 긍정적인 면을 보고 기뻐하고 행복해하며 희망을 같고 사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나 힘든 여건이더라도 세상을 밝게 보고 긍정적으로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pilogue… 당신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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