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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칼럼] 법에 그런 게 있었어요?
[임원진칼럼] 법에 그런 게 있었어요?
  • 의사신문
  • 승인 2016.01.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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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
전성훈 이사.

원시 씨족에서부터 현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그를 유지하기 위하여 법이라는 칼과 도덕이라는 채찍을 이용하여 왔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법은 동시대인(contemporary) 간의 규범적 합의인 도덕 중에서 반드시 강제되어야 하는 규범적 합의를 선별하여 규정한 것입니다.

과거의 법 역시 과거 사람들의 규범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법으로 규정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법 중에서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 `법에 그런 게 있었어?'라고 생각할 만한 황당하거나 혹은 무서운 내용의 규정들 역시 과거 동서양의 선조들의 합의의 결과물인 것이죠. 아래와 같은 과거의 법들을 살펴보면, `정말 법에 그런 게 있었어요?'라고 물으실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 알고 계신 `함무라비 법전'에서 가장 유명한 조항은 역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응보형 조항이겠죠. 응보형을 분명하게 관철하였기 때문에, 목수가 집을 잘못 지어 집이 무너져 집주인의 아들이 죽으면, 목수의 아들을 똑같이 집 가운데 놓고 집을 강제로 무너뜨려 그 아들을 죽일 것을 선고하고 집행하였습니다.

2001년 인도 서북부 구자라트 지역에서 2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 강진으로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고, 이들은 카스트 제도에 따른 다섯 개의 계층으로 나뉜 구호텐트촌에 들어갔습니다. 구호물자가 도착하자 1계급인 브라만 계층부터 순서대로 구호물자를 수령하여 간 결과 결국 4계급인 수드라 계층은 구호물자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구조단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지진이 집은 무너뜨렸지만 정작 보이지 않는 카스트는 무너뜨릴 방법이 없구나!”

이렇게 뿌리 깊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크게 4계급과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천민(파리아)계급으로 나뉘지만, 실제로는 세분화되어 수천 가지의 계층을 이룬다고 합니다. 이러한 카스트 제도에 따른 법적 관계를 규정한 고대의 `마누법전'에는 이러한 조항이 있습니다. `브라만과 크샤트리아는 수드라의 모든 것을 빼앗을 권리가 있다.'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신체형으로서 묵, 의, 월, 궁, 대벽의 5형을 집행하였습니다. 묵형은 죄인의 얼굴에 먹물로 `절도', `상해' 같은 죄명을 문신으로 새겨 넣는 것, 의형은 죄인의 코를 자르는 것, 월형은 죄인의 손과 발을 자르는 것, 궁형은 죄인의 생식기를 자르거나 난소를 적출하는 것, 대벽은 목을 자르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죄인의 양 반월상연골을 적출하여 앉은뱅이가 되게 하는 빈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형벌은 수천 년간 지속되다가 한나라 문제 재위 시에 폐지되었으나, 완전하게 폐지되기까지 다시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덧붙여 위에서 본 `마누법전'에도 이런 조항이 있습니다. `수드라가 브라만을 모욕하면 끓는 기름을 그의 입과 귀에 붓는다. 수드라가 브라만 앞에서 방귀를 뀌면 항문을 도려낸다.'

이러한 과거의 법들과 비교할 때 보편적 인권이 시대적인 흐름이 된 현대의 법이 그 절차와 내용면에서 크게 발전하였으며, 그렇다면 현대인의 외견적인 규범적 합의 역시 그 절차와 내용면에서 분명하게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 법을 실제로 운용하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내면적인 법인식 또는 법감정 역시 분명하게 발전한 것일까요?

우리는 아직도 내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죄인에 대한 응보형에 가까운 강한 처벌을 정의의 구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추가적인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의 기초적인 생존을 위협할 가능성이 큰 제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의 신체에 대한 물리적 침습(과학이 발달하여 화학적 침습으로 대체되었을 뿐, 그 목적은 범죄의 공포로부터 다수가 해방되기 위한 것으로 동일합니다)을 그 대상이 죄인이라는 이유로 옹호합니다.

우리가, 특히 본능 다음의 것을 고민할 책임이 있는 지성인들이, 응보형에 가까운 중형을, 욕구와 욕망을 넘어서 버린 탐욕을 제어하지 못하는 제도를, 생명 다음으로 소중한 법익인 인간의 신체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행위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불과 백 년 후의 우리 자손들은 후일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법에 그런 게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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