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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진칼럼] 신학실종, 의학실종, 의료일원화?
[임원진칼럼] 신학실종, 의학실종, 의료일원화?
  • 의사신문
  • 승인 2016.01.18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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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서울시의사회 학술이사

의료일원화를 위한 교육일원화가 화두가 되고 있다. 한의사에게 현대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규제 기요틴에 편승해서 의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당황스럽다.

홍순원 학술이사.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런 기득권을 허물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었고 어디서나 있었다. 그러나 기득권이 허물어지는 것은 데모나 반대시위로 막을 수 없다. 희소성에 가치가 있을 때 희소가치가 있는 것처럼 기득권이라는 것은 기득권으로서 가치나 권위가 있을 때, 기득권자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지켜진다.

최근에 신학 실종 `No place for truth'라는 책을 접하였다. 현존하는 조직신학 및 역사 신학교수인 데이비드 웰스의 책이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권유로 읽게 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신학이 그랬던 것처럼 의학이 왜 권위를 가지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그 권위를 잃게 되는지를 어떻게 그 권위를 회복하게 되는지를 이해할 것 같아 인용하고자 한다. 인용하기 위해 읽었던 책을 다시 찾아보지만 정확히 어느 부분이었는지 찾기가 어렵다. 이제 내 기억에만 의존하여 그 느낌이나 이해를 말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에서 신학의 발전과 쇠퇴와 회복을 이렇게 소개한다.

웨넘이라는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는 중심에 교회가 있고 목회자가 모든 일상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었다. 흔히 종교적인 행사인 세례를 비롯해서 결혼식 주례, 장례식 집전, 병든 자를 고치는 의사 역할, 법적인 문제가 있으면 판결을 내리는 판사, 집안에 또는 개인적인 문제가 있으면 상담자, 아이들의 교육 등등 마을에 대소사를 모두 목회자가 담당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권위가 있었다. 그러나 점점 이런 일들은 시청, 학교, 병원, 법원 등으로 분리되어 그 역할을 뺏기게 되고 종교적인 일만 하게 된다. 이렇게 되다 보니 목회자는 더 이상 마을에 중요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초창기에 학교, 병원, 법원도 그리 전문화되지 않아서 좀 더 그 분야에 관심이 있고 경험이 있는 사람이 이 일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병원·법원은 대학을 만들어서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하면서 기득권을 형성한다. 대학에서 취득된 지식이나 기능은 특별한 수련을 받아야만 얻을 수 있기에 희소가치가 있는 것이 된다.

점점 더 목회자는 영적, 정신적인 영역까지 의사들에게 빼앗기게 된다. 이런 상황에 위기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신학대학이라고 한다. 그 특수성 전문성을 보장 받기 위해 평신도에게 서비스를 할 뿐 신학은 가르치지 않는다. 따라서 신학은 목회자만의 것이 된다. 그러나 신학대학에서도 목회현장에 나오면 더 이상 신학은 무용지물이 되기에 신학을 열심히 배우고 가르치려 하지 않고 단지 서비스를 위한 옅은 지식을 찾아 나선다. 심리치료나 도덕교육 같은 것들에 대한 지식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현대에는 정보 공유 방법이 발달하면서 웬만한 문자적인 지식은 쉽게 얻을 수 있기에 필요한 지식(파편화된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얻으면 된다. 더 이상 목회자에게 그 지식을 전수 받을 이유가 없어진다.

지식은 더욱 파편화되고 얇아진다. 인터넷에서 언제나 떠다니기에 기억할 필요가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모든 지식을 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신학을 찾지 않는다.

그러면 의학은 어떠한가? 민간의료가 필요에 의해 있었다. 이 의료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일대일 실습이 있는 교육이 있었고 이를 더욱 체계적으로 통합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대학 교육이 생겨나고 이런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이를 증명하는 의사고시를 치르고 의사가 된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의사면허를 주기 위한 시험이 그 실력을 가늠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지식을 축적하기에 필요한 시간, 통합적 지식과 실습 및 경험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의사는 목회자와 달리 서비스를 하는 것이지 환자에게 의학교육을 시키는 것은 아니다. 환자가 본인의 질환을 극복하기 위해 그에 대한 지식을 좀 더 알 필요는 있지만 본인의 질환과 상관 없는 다른 지식을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일정 기간의 시간이 투여되지 않고는 체화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매체가 세상에 떠 다닌다. 특별히 대학을 가지 않고도 양질의 지식을 살 수 있다. 현대의료기기를 쓸 수 있는 기술은 기기상도 가르쳐줄 수 있다. 안경사도 방사선사도 기기의 사용 및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르쳐 줄 수 있다. 그래서 의사가 아는 것을 다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면허로 막지 말라고 하며, 독점권을 사수하는 이기적 집단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의학은 면허로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전문성이 문턱이 되는 것이다. 의학을 열심히 배우고 문턱을 넘은 자들에게 의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의사 면허이다. 그러니 의과대학에서는 의학을 가르쳐야 한다. 세상의 흐름이라고 의과대학에서도 의학을 가르치기를 포기하고 유행을 따르면 안된다. 그러면 얄팍한 파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과 의사가 차별점이 없다. 한의사뿐 아니라 일반인도 의학을 가볍게 취급하는 이유가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고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에 쓰인다는 생각이 든다. 얇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 다 아는 것 같다. 그러나 의학의 방대한 지식을 배우면 함부로 의학을 말할 수 없다. 의학이 복잡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의학은 본질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머리 좋다는 인재들이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면서 6년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럼 “어떤 교육이 의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의학교육이 실종되면 더 이상 의사들이 전문성을 주장할 수 없다.

의학의 실종을 주도하는 것이 일반인일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의학을 배우고 특히 가르치는 사람들의 오해에 의해 주도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의학의 본연의 권위를 찾는 것은 과학에 근거한 기초의학의 바른 정립에서 시작된다. 이를 임상에 적용하고 적용된 임상도 기초의학에 대한 탄탄한 지식이 있어야만 세계를 이끄는 지식으로 인정될 것이다. 이것이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의학교육 특히 기초의학교육 사수의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요즘 대학에서는 교과목 안에서 지식의 습득을 약화시키고 학습목표라는 미명하에 얄팍한 지식에 만족하는 교육을 육성하고 남은 시간은 교양과목 같은 과목으로 시간을 때우고 심지어 골치 아픈 기초의학은 없어도 된다고 한다. 물론 환자와의 공감은 중요한 치료이기도 하고 의사의 덕목이다. 그러나 지나친 교양교육이나 사회교육으로 할애될 때 지식은 옅어지고 일반인의 지식과 차별이 없어진다고 본다. 풍부한 기초의학적 교육만이 의학을 사수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오히려 국민의 안전을 위해 기본적이고 중심이 되는 의학교육의 본질이 실종되는 것을 방치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면허제도 안에 담아두고 관리하여야 한다. 이것이 국민을 위하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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