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7:52 (목)
보춘화와 변이종<10>
보춘화와 변이종<10>
  • 의사신문
  • 승인 2009.10.15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중국란 적아소심계의 산반중투 무늬종. 새로 올라올 때에는 잎 가장자리에 녹색 테두리를 두르고 가운데 뿌연 흰색 무늬를 가지고 있다가 자라면서 점차 녹색으로 변하는 품종이다. 꽃향기도 매우 좋고 튼튼한 편이라 한 번 쯤 권해보고 싶은 난이다. 살마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어쩌다 한 번 흰 제비 또는 흰 까치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를 신기하게 생각하고 좋은 일이 생길 길조라고 해석을 합니다. 백록담의 흰 사슴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 상태에서 이들 변종이 살아남아서 자손을 번식시킬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대부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해 도태되기 때문입니다. 동물과는 달리 이러한 돌연변이가 식물에서 나타나면 관상 가치를 인정받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배양해 이를 널리 퍼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실물이 난입니다.

우리나라 충청도 남부 아래 지방에 보춘화라는 자생 춘란이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그냥 흔해빠진 식물이라 어떤 지역에서는 `개난'이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개복숭아, 개살구 하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보춘화가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파트 한 채에 맞먹는 값에 팔린 난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달려가 먼지 풀풀 날리며 캐내고 꽃을 따내고… 이런 난리 법석이 또 있을까요.

춘란 중에서 그렇게 높은 값에 매매된 난은 그야말로 희귀한 변이를 일으킨 종자입니다. 난의 변이종은 크게 보면 잎에 무늬가 있는 경우, 잎의 모양이 변해 있는 경우 그리고 꽃이 변해 있는 경우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잎의 무늬종 중 `중투호'라고 불리는 개체는 잎 가장자리가 초록색이면서 가운데는 온통 흰색 또는 황백색인 경우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꽤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 십상입니다. `호'라는 품종은 잎에 흰색 줄이 그어져 있는 품종이고 `복륜'은 초록색 잎 가장자리에 흰색 테두리가 있는 품종을 말합니다. 잎 모양이 변해 있는 품종 중 대표적인 것이 속칭 `짜보'라 불리는 품종인데 통상 잎이 극단적으로 짧습니다.

꽃의 변이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통상 잎에 무늬가 있는 경우 꽃에도 유사한 무늬가 나타납니다. 춘란 꽃은 일반적으로 녹색이며 가운데 `설'이라 불리는 부분이 흰색이고 여기에 붉은 점들이 찍혀 있습니다. 이러한 보통 춘란 중 혀에 붉은 점이 없는 난이 꽤 많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품종을 소심(素心)이라고 합니다. 그 외에 꽃잎이 노란색, 주황색, 붉은색, 자주색으로 피는 경우도 있는데 각각 황화, 주금화, 적화, 자화라고들 부릅니다. 때로는 꽃잎에 두 가지 색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복색화라고 합니다.

이러한 변이가 잎과 꽃에 동시에 나타나는 품종들은 그 희귀성과 높은 관상 가치로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산에 가서 이러한 난을 만나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이런 난을 찾아 한 밑천 잡겠다고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 산자락마다 휘젓고 다니면서 춘란 자생지가 쑥대밭으로 변했습니다. 난을 시작할 무렵 아무 버스나 잡아타고 산골 마을에 내려 산속을 다닌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처음엔 눈앞에 보이는 난들이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차츰 솔바람 소리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양지바른 곳의 무덤가에서 쬐는 따뜻한 봄볕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파헤쳐져 뒹구는 난들이 눈에 들어오고 하루 종일 이들을 다시 심어주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지금쯤 남녘의 산자락 솔밭에는 여전히 보춘화들이 솔바람을 맞으며 내년 봄에 피울 꽃을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고 버티다가 봄이 오면 어느 결에 쑥 자라 올라 수수한 꽃을 피웁니다. 수천, 수만 송이 가운데 하나쯤은 특별한 꽃을 피울 것이고, 누군가에게 발견되면 다시 잘 배양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나누어 줄 것입니다. 보춘화는 그냥 그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오근식〈건국대병원 홍보팀 과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