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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제1권 846-69, 제2권 870-93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제1권 846-69, 제2권 870-93
  • 의사신문
  • 승인 2009.10.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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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개 조성이 어우러진 '피아노의 성서'

 
“듣게 해주고 느끼게 해주오. / 소리가 마음에 속삭이는 것을 / 생활의 차디찬 나날 속에서 / 따스함과 빛을 내리시기를” 독일의 문호 괴테는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를 듣고 이렇게 노래했다. 원래 `평균율'이라는 말은 서양 음악에서 장단음계의 음정을 12개로 균등하게 나누는 방법을 나타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연음계는 자유롭게 진동할 때 생기는 음정을 기본으로 만들어 배열한 음계로 `순정음계'라고도 한다. 이런 자연음계는 음정 간에 음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화음이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단성 음악(monophony)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바흐시대에 피아노포르테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순정음계로는 일정한 옥타브를 구사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대두되게 된다. 특히 피아노와 같은 건반악기를 연주하면서 음높이를 즉각적으로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가장 잘 조율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논의되었다. 당시 작곡가와 이론가들은 다양한 조율방식의 이점들을 증명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조성들로 일련의 곡들을 작곡하였다. 바흐는 이들의 방식을 응용 통합하여 그만의 평균율을 작곡한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이버'는 8음계의 모든 장조와 단조로 쓴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로 구성되었고 곡의 순서는 C장조에서 시작하여 b단조로 끝난다. 바흐의 목적은 평균율에 의한 장조와 단조로 된 24개의 조성을 작품으로 모두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새로운 운지법과 건반의 조율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체계에 접근하기 쉽도록 했다.

이 작품은 동일한 모습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구성방식이나 스타일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유명한 구노의 `아베 마리아'의 반주로 편곡된 제1번 전주곡은 바흐의 화성들이 얼마나 일정한 모양을 갖추지 않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밖의 다른 전주곡은 바이올린 협주곡이나 오보에 협주곡에서의 느린 악장과 같은 아리오소 선율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한 것은 조율체계의 유용성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1722년 악보 표지에는 `이미 기술을 연마한 연주가들의 즐거움뿐 아니라 갓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 학생들을 위해'라고 쓰여 있다. 그는 이 곡이 연습과 경쟁, 음악의 즐거움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했다.

`평균율 클라비어'에 들어있는 스타일과 표현들이 너무나도 다양하여 당시 사람들은 `바흐는 이제 한 사람의 작곡가로서 가능한 모든 기법과 표현양식들을 다 소진하였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흐는 20년이 지난 1742년 똑같은 이름으로 두 번째 모음집을 발표하면서 이 형식으로 얼마든지 더 많은 표현이 가능함을 입증하였다. 제1권이 발표된 이후 1730년대와 40년대에 일어난 음악 양식의 변화에 대해 바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아마도 그는 제1권 평균율보다 좀 더 제자들이나 연주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모음집을 선보이고 싶었을 것이다. 제2권에서는 구성방식이 훨씬 발전적이고 다양해졌다. 심지어 제2권에서는 전주곡들의 형태가 앞으로 다가올 고전주의 소나타형식에까지 접근하고 있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는 다음 세대의 여러 작곡가들에 의해 모방되는 한편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당시의 도미니코 스카를라티 뿐 아니라, 나아가 19세기와 20세기에는 쇼팽,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도 모든 조성으로 구성된 일련의 전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이 두 권의 작품은 합해서 흔히 48개의 평균율이라 불리며 오늘날 피아노 연주자들이 필히 넘어야 할 피아노의 `구약성서'로서 그 자리를 굳혔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오래된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가 떠오른다. 각각 구성된 음계가 하나하나의 벽돌처럼 단단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어 벽돌이 하나라도 빠지면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은 치밀함과 견고함이 느껴진다.

■들을만한 음반 :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피아노), Melodya(1971); 글렌 굴드(피아노), CBS( 1975); 니콜라예바(피아노), Meldodya(1983); 완다 랜도스카야(피아노), CBS(1954); 안젤라 휴이트(피아노), Hyperion(1997); 톰 쿠프만(하프시코드), EMI(1982); 피터 앙타이(쳄발로), (Opus, 1992) 
  

오재원〈한양대 구리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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