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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록을 써야겠다<28>
실패록을 써야겠다<28>
  • 의사신문
  • 승인 2009.10.1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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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돌아보고 회고록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노력과 행운과 성공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타인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으므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라리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에 대한 것을 기록했으면 좋겠다. 성공은 한번 정도 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은 계속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실패에 이르는 길과 결과가 오히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실패 혹은 실수를 인정하고 이것을 남들에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동시에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남에게 말을 함으로써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고 재도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 좌절하게 되면 비슷한 여건만 닥쳐도 대부분 뒤로 물러서려 한다. 그러나 비슷한 여건이라는 것은 실패한 경험으로 이미 50%의 노하우를 획득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는 항상 성공으로 배우는 것보다 실패에서 배우게 된다.

세상에는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과 그냥 산 사람으로 나뉘어져 있다. 성공이나 실패를 한 사람은 무엇인가를 한 사람이고 그냥 산 사람은 도전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 도전 없이 산다거나 도전이 필요 없는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저주이며 무의미한 삶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그것을 감추려 하고 외부의 탓으로 돌리면서 책임을 회피하려는데 있다. 또 수많은 경고를 무시하고 다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벼랑으로 자신을 내모는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들도 흔히 그런 식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회원들을 기만해 결국은 그 비열한 행위들로 인해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 설혹 남을 속이는데 성공해 위기를 넘긴다 해도 하늘과 자신을 속일 수는 없으므로 실패는 악몽으로 남는다. 그것이 개인사로 국한되면 다행이지만 정부나 단체의 중책을 맡은 사람이라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잃게 되고 역사에 오점을 남긴다.

의사들은 갈수록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느낀다. 최근에는 원격진료 논란과 함께 이에 따른 진찰의 의미 훼손과 의료전달체계 파괴의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고 실시간 의료행위 감시는 물론 약제비 환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료 여건의 불합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의사로서의 권리는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대한민국 내에서 의사는 누구이며 어떻게 처신하고 살아야하는가'라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을 못하고 있다. 회원들의 이런 불안을 안다면 의협 집행부도 책임을 미루지 말고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하루빨리 궤도를 수정하여 대안을 찾아야 한다.

어떤 직책을 맡고 임기가 끝나면 성공담으로 가득 찬 회무백서를 작성한다. 차라리 `우리(나)는 이런 부분에서 실패했다'라는 실패록을 진솔하게 작성해 남기는 것이 더 많이 읽히고 참고가 될 것이다.

언젠가 내 인생의 백서를 작성할 기회가 생기고 누군가 읽어 줄 사람이 있다면 실패 혹은 실수에 대한 회고록을 쓰고 싶다. 사랑과 연애와 우정관계의 실패, 사회 적응과 투자 실패, 환자 관리와 경영 실패, 가족과 대인관계 실패, 건강관리 실패 등등 분류해서 나열하다 보니 셀 수 없이 많은 실수와 실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온 것 같다. 우리 모두 실패한 경험을 수기로 쓰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자.

김숙희<관악구의사회장ㆍ김숙희산부인과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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