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 지난 100년, 한국의료를 말한다' - 원로 의사 초청 좌담회
■`서울시의사회 지난 100년, 한국의료를 말한다' - 원로 의사 초청 좌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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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2.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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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격변기에 의료계 중심으로 맹활약”

주제 : 시민과 함께한 의사회, 건강서울 100주년'을 돌아 본다 ◆일시 : 2015년 5월 20일 낮 12시30분 ◆장소 : 광화문 달개비 - 참석자 명단 - △김숙희 서울특별시의사회장(33대)((2015.4.1- ) △한광수 서울시의사회 100년사 편찬위원장 (서울시의사회 27대 회장 : 2000.4.1-2003.3.31) △권이혁 우강건강포럼 대표(전 보건·노동·환경부 장관) △이상웅 서울시의사회 24대 회장(1991.4.1-1994.3.31) △지삼봉 서울시의사회 25대 회장(1994.4.1-1997.3.31) △김재정 서울시의사회 26대 회장(1997.4.1-2000.3.31) △박한성 서울시의사회 28대 회장(2003.4.1-2006.3.31) △경만호 서울시의사회 29대 회장(2006.4.1-2007.6.7) △문영목 서울시의사회 30대 회장(2007.7.14-2009.3.31) △나 현 서울시의사회 31대 회장(2009.4.1-2012.3.31) ◇사회=김숙희 서울특별시의사회장 ◇진행=김기원 의사신문 편집국장

서울시의사회 100년사 편찬위원회는 지난 5월20일 낮 달개비에서 100년사 편찬작업의 일환으로 `원로 초청 좌담회'를 개최하고 역대 서울시의사회장들의 좌담을 통해 지난 100년을 돌아보는 고귀한 시간을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는 역대 회장 중 작고 및 행방불명이신 16분과 병환 중이신 김도영 제21대 회장, 지방에 계신 양문희 제23대 회장 그리고 개인적 사정으로 참석치 못한 임수흠 제32대 회장을 제외한 9명의 전·현직 서울시의사회장들과 의료계 대원로이신 권이혁 선생님께서 참석, 지난 100년의 경험을 통한 `미래 한국 의료 100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셨다. 다음은 이날 좌담회를 요약, 정리한 내용이다.

김숙희 회장.
한광수 위원장.
권이혁 대표.
이상웅 전 회장.
“100주년 맞아 의료환경 개선·봉사단 활성 등 대국민 소통 강화 최선…
특별분회 회원 적극적인 포용정책 펼쳐 개원의 단체로 축소 막을 것”
“서울시의사회 역대 회장님들 발자취 기록 위해 100주년 편찬위 참여 영광…2000년 의약분업 철폐 궐기대회 서울시의사회로 앞장 결국 구속 까지”

“서울시의사회 100년 축하, 가장 인상적인 것은 김숙희 회장 당선…의학 교육과 인성 문제에 관심 더 쏟아 존경받는 의사로 거듭나야”

“뇌염백신 관련, 제약사의 공정위 제소 소송까지 가지 않고 공문으로 해결…의사신문 효율성 낮은 인쇄시스템 개편·공정위 소송비용 문제 해결”

△김숙희=서울시의사회가 올해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이를 기념, 역대 회장님들과 고문이신 권이혁 전 장관님을 모시고 원로 초청 좌담회를 개최하게 됐습니다. 서울시의사회 100주년을 의미있게 맞이할 수 있도록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광수=저는 의협 100년사 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인연으로 서울시의사회 100주년 편찬위원회 작업에도 2년째 참여하고 있습니다. 편찬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서울시의사회 역대 회장님들의 발자취를 남겨야겠다는 생각때문입니다.

서울시의사회는 1996년 `서울시의사회 80년사'를 발간했습니다. 편찬위는 80년사를 기반으로 100년사를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의료계는 80주년부터 100주년 까지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편찬위원회에서는 이 시대를 겪은 역대 회장님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숙희=권이혁 장관님께서는 서울시의사회 창립 때부터 회무에 관여해 오셨습니다. 의사신문의 역사도 잘 알고 계십니다. 당시 일화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권이혁=특별히 말할 것은 없습니다. 다만 서울시의사회 100주년을 맞아 제일 인상적이고 특별한 일은 김숙희 회장이 여성 최초로 서울시의사회장이 된 일입니다. 다른 좋은 일도 많았지만 100년사를 이야기할 때 특별한 일을 꼽으라면 이를 꼽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서울시의사회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1957년인지 58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가 모셨던 서울의대 명주환 학장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당시 서울의대 교직원은 아니었지만 명주환 학장님의 요청으로 비서직을 수행했습니다.

명 학장님은 서울시의사회 역사상 업적을 남기신 분으로 생각됩니다. 명 학장님은 매우 부지런했습니다. 그리고 머리는 컴퓨터처럼 빠르고 뛰어났으며 계산능력이 매우 탁월했습니다. 명 학장님의 뛰어난 계산능력으로 의대 학장 시절 행정상 사무장들이 많이 혼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명 학장님의 이런 성격은 서울시의사회장이 되고 난 후에도 변함없었습니다.

명 학장님은 회장 재임시 서울시의사회에서 발행한 의사신문을 잘 활용하셨던 분 중 한 분입니다. 이런 명 회장님은 서울시의사회 임기가 끝날 무렵 의협회장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습니다. 그런데 의협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제일 먼저 봉착했던 문제는 신문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시의사회에는 기관지인 의사신문이 있었지만 의협에는 신문이 없었던 시기입니다. 명 회장님은 서울시의사회 기관지인 의시신문을 의협으로 가져가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회원들이 명 회장님의 움직임에 강하게 반대, 의사신문을 의협으로 가져가는 것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이런 과정 속에서 의협신문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저는 서울시의사회와 함께한 시간 동안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화를 이야기한다면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의 당선과 의사신문을 들 수 있습니다.

△한광수=의사신문 소유권을 놓고 의협과 서울시의사회가 소송을 했었습니다. 당시 선봉에 나섰던 분이 이문호 교수입니다. 소송 결과 의협이 소송에서 패해 현재 서울시의사회 기관지로 의사신문이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일간지, 전문지들이 정리되던 4·19 당시에도 전문지 중 의사신문만 살아 남았습니다. 그리고 의협 기관지인 의협신문은 1967년 서울시의사회와 재판에서 진 후에 창간됐습니다.

△이상웅=저는 서울시의사회장에 당선되던 해인 1992년 4월1일부터 출근,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당시를 기억하면 서울시의사회 건물이 옛날 건물이다 보니 가을과 겨울이 되면 많이 추웠습니다. 직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 속에서 겨울만 되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석유난로에 펌프질하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서울시의사회 창문을 이중창으로 바꿔줬던 기억이 납니다.

권이혁 고문님께서 신문사 이야기를 하셨는데 당시 의사신문은 서울시의사회 지하에서 활자 인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신문사 수입은 적은데 인쇄비용 지출이 높아 인쇄를 아웃소싱으로 바꿨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시의사회 부지는 서울시에서 준 땅입니다. 의사들이 배짱이 적어 그런지 서울시에서 길거리 땅을 준다고 했는데 사양하고 현 건물이 있는 뒷부지를 조금 받았습니다. 더욱이 땅을 받은 지 수십년이 지나다 보니 이 땅을 받을 때 등기에 올라 있던 사람(선배)들이 없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문제를 명확히 하기 위한 논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김숙희=옛날엔 서울시의사회 회장 선거에 나올 때 대부분 경선하셨나요?

△이상웅=경선으로 치러졌습니다. 제 선거를 도와준 김재정 회장님도 옆에 있지만 당시 대의원 수가 227명이었는데 투표를 위해 227명이 다 참석했습니다. 그것도 위임 아닌 대의원 227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참석해 선거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열의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지삼봉=제가 회장 재임 당시 서울시의사회관 건물 등기가 10명 정도의 원로 선배들의 명의로 되어 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세월이 흘러 원로선배들이 돌아가시자 회관 건물의 개인재산권이 후손들과 문제가 됐었습니다. 보통 골치 아픈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서울시의사회관 건물을 개인이 아닌 협회 재산으로 반드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해 개인적으로 친분이 깊은 고문변호사를 모셔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당시 고문변호사가 돈을 받지 않고 헌신적으로 도와줘 문제가 잘 해결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회장으로 부임해서 해결한 사안 중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이후 세월이 흘러 정부가 발표한 의료보험 통합이 이슈였던 시절, 서울시의사회 전 회원이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에 모여 궐기대회를 했습니다.

이날 최선정 보건복지부 장관이 궐기대회에 참석해 수가를 상당히 많이 조절해주었던 것으로 기대됩니다.

최 장관은 의사들의 정책적인 문제와 정부 알력 등을 중재하며 의사들을 많이 도와준 인물사회입니다. 이때는 국민들도 의사들이 진료실을 나와 궐기대회를 한다는 것에 대해 의사들의 편을 들어주던 시대였습니다.

△한광수=지삼봉 회장님이 업적 중 중요한 이야기를 안하셨는데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이 일어났던 때입니다. 당시 지 회장님과 저는 캐피탈 호텔에서 의료경제연구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지 회장님은 삼풍백화점이 붕괴됐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캐피탈에서 강남까지 그 먼 거리를 뛰어 갔습니다. 강남성모병원에 도착하니 내·외신 기자들과 앰뷸런스가 뒤엉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지 회장님이 의료원장에게 서울시의사회가 `의사 지원' 또는 `혈액 지원(헌혈)'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강남성모병원장은 `도와줄 것이 없다'며 말을 아꼈습니다. 근데 당시 응급실 상황을 보니 원장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강남성모병원 도서관 및 인근에 있던 많은 시민들이 헌혈에 동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국민들의 의식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김재정=오늘 젊은 의사들은 옛날 선배들이 좋은 시절 개업해 돈을 많이 벌었다며 그 시대를 `요술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당시도 지금 후배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좋은 시절만은 아니었습니다. 불만이 많은 시대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의사단체들이 `선포'를 내놓을 때였습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부터 `의료계 투쟁'이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 김대중 후보가 연세대에서 열린 조찬회에 저를 초청한 적이 있습니다. 김 후보자가 의료계 상황을 보고 받더니 “내가 당선되면 무엇을 해드려야 하냐”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진료 심사기준'을 꼭 독립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되고 의료계와의 약속을 지켰던 것이 기억납니다.

근데 당시 김대중 후보에 대한 소문이 `소변을 눈다', `기저기를 찬다' 등 말이 많을 때였습니다. 나는 김대중 후보의 건강이 소문과는 달리 좋아 보여 외교분과위원에게 “후보님 건강이 좋으시네요”라고 말했더니 “신문에 발표해도 되냐고 물어와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서울시의사회 김재정 회장이 김대중 후보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기사가 보도돼 여당에서 전화가 오고 난리났던 기억이 납니다.

△이상웅=당시 김재정 회장이 한 이야기가 이슈였습니다. 김대중 후보가 소문에 아프신 분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의사가 괜찮다고 하니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김재정=제가 당시 방배경찰서 심의위원으로 활동할 때였는데 정보과장이 사석에서 “회장님 한마디가 대선 수십만표를 왔다갔다한 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찌 되었건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서 `진료비 심사기준'이 심평원으로부터 독립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제도가 의사들을 발목잡는 도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97년 11월30일 `의료수가 현실화'라는 슬로건을 내걸지는 않았지만 장충체육관에서 의료계의 대규모 데모가 시작됐습니다. 아마 이날이 금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시위 날짜를 금요일로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금요일은 교통이 가장 복잡한 날로, 우리가 시가행진을 하면 교통체증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매스컴에서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전국의사들이 대투쟁을 하기 위해 장충체육관에 모이기로 했는데 공부만 한 의사들이 구호를 외칠 줄 몰라 난감했었습니다. 회원들을 수소문, 운동권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는 권용진 공보의를 섭외해 서울시의사회 강당에서 각구 대표들을 모아놓고 구호를 배우게 했습니다.

근데 시가행진을 할 때 제일 먼저 어떤 구가 나갈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있어 제가 `영등포'를 앞장세워 시가행진을 했습니다. 당시 영등포구 회원들은 수술복과 모자 등을 입고 시위에 앞장서 종묘까지 행진했었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데모 선두에 서울시의사회가 앞장서게 된 것 같습니다.

△한광수=장충체육관에서 대정부 투쟁이 진행되던 그날, 김재정 회장은 서울시 회원들을 이끌고 저는 의협 공보이사로 기자들을 상대했었습니다. 그때 서울시의사회가 집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집회 장소였던 장충체육관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회원들로 가득했고 노도처럼 휩쓸고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김재정 회장님에 이어 2000년도부터 서울시의사회장직을 역임했습니다. 2000년도는 의약분업이 시행된 해입니다. 전국 의사들이 의약분업 철폐 궐기대회를 외쳤던 시기인데 서울시의사회장으로 선봉에 나섰다 구속됐었습니다. 저는 서울시의사회장직을 맡으면서 의사회 수장으로서 지도자보다 의약분업 해결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서울시의사회장 시절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업적이라면 `서울시의사회 강당-동아홀 리모델링과 엘리베이터 설치'를 들 수 있습니다. 제가 엘리베이터를 만든 계기는 과거 작고하신 한경구 회원과 국회의원이셨던 신영순 회원이 서울시의사회 행사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시의사회관이 폭이 좁고 좀 가파르다보니 연로하신 선배 한분 한분 손을 잡아 5층까지 모시곤 했었습니다. 그때 신영순 회원이 저에게 “앞으로 나 여기 못 와”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왜 그러시나 했더니 여성들은 신발굽도 높고 미끄러워 5층 강당으로 오르시는게 힘드시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임기 중에 엘리베이터를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하고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동아제약에 요청해 동아홀을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김숙희=서울시의사회장은 처음부터 의협 부회장에 고정적으로 들어갔었나요?

△이상웅=의협 회장이 외국 출장갔을 때 수석부회장을 서울시의사회장이 수행했었습니다. 근데 의협 조직체계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해져 현재는 수석부회장이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한성=제 재임 때 없어졌습니다.

△김숙희=지금은 조금 달라져서 상근부회장직이 있습니다.

지삼봉 전 회장.
김재정 전 회장.
박한성 전 회장.
경만호 전 회장.
“원로 선배들 명의로 돼 있던 서울시의사회 건물 소유권 분쟁 해결…의료보험통합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에 의료현실 알리고 도움 받기도”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 진료 심사기준 독립 요구 추후 심평원 독립…의협 직선제로 바뀐 뒤 추진력 약해져 서울시의사회가 중심 잡아야” “의약분업 투쟁 후 잃어버린 국민 신뢰 회복위해 의료봉사단 창립…서울시의사회 연봉제 도입·진단서 비용 인상 등 회무 내실화 최선” “부당한 공정위 과징금 5억원 부과에 의료계 현실 알리고 3억원 삭감 성과…의사신문 폐간 논란에 대의원 설득과 회비 인상 통해 의사신문 활성”

△박한성=저는 서울시의사회장을 하면서 김재정 회장님과 한광수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한광수 회장님은 서울시의사회 동아홀도 리모델링하고 엘리베이터도 설치하시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한 분입니다.

제가 회장으로서 한 일을 꼽으라면 `의사회 날 제정'과 `서울시의사회 봉사단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일의 기초를 닦아주신 분은 한광수 회장님이십니다. 저는 2003년 `서울시의사회 날'을 만들고 `제1회 의사회 날 행사'를 잠실에서 개최했었습니다. 지금 와서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감개무량합니다.

우선 시대의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의료계는 2000년대 의약분업의 투쟁으로 열기가 고조됐다가 식는 시기로 `의약분업 특별법'이 나오면서 의료계가 의기소침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의약분업 투쟁을 통해 우리가 잃은 것이 많았는데 그 중 국민 신뢰를 가장 크게 잃었을 때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다시 의사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국민들과의 관계를 회복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의사들이 투쟁을 하면 매스컴은 밥그릇 싸움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정례화되어 있던 때입니다. 이런 의사들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 서울시의사회 의료봉사단을 만들게 됐습니다.

의료봉사단을 만들 때도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서울시의사회의 뿌리는 한성의사회입니다. 제가 한성의료봉사단이라는 명칭으로 만들려고 하니까 주위에서 봉사단 이름이 제 이름과 같아 안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봉사단 앞에 서울시의사회가 붙게 됐습니다.

서울시의사회 봉사단이 구성되고 난 후 제일 먼저 봉사단에서 빠진 단체가 대한간호협회였습니다. 이유는 의사들만 하는 봉사단에 간호사 단체가 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봉사단이 아직까지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시의사회 봉사단을 만들 때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앞으로 서울시의사회 봉사단이 좀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의료계 최초로 서울시의사회 직원들의 급여에 `연봉제'를 도입, 적용했습니다. 아마 의협보다 서울시의사회가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연봉제 도입을 하게 된 이유는 회장 취임 후 업무 파악 중 직원 퇴직금이 적립은 되고 있으나 수치가 낮아 나중에 돌려받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연봉제를 도입, 매년 퇴직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연봉제 도입 이전의 퇴직금은 한꺼번에 다 지급했습니다. 이로 인해 차기 경만호 회장이 고생 많이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연봉제 도입으로 직원이 퇴직했을 때 발생되는 분쟁은 물론 퇴직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 편하게 지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자랑인지 욕먹을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진단서 비용을 올린 것입니다. 당시 2000원 하던 진단서 비용을 1만원인지 2만원까지 올린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런 과거를 돌아봤을 때 제가 서울시의사회장을 했던 시대가 가장 드라마틱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흑과백이 뒤섞였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김숙희=서울시의사회 봉사단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감사 지적사항이 빠지지 않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는 봉사단은 서울시의사회의 브랜드 파워 역할을 많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진 것은 물론 서울시에서도 뜻있게 봐주고 있습니다. 한동안 시행되지 않던 변호사 무료상담(법률상담) 시행과 회비도 더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최근 이종구 박사가 `심장병 알기' 출판기념회를 개최, 모인 수익금을 기부했으며 봉사단에 1만원 후원하기에 회원들을 적극 참여시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올해는 서울시의사회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00주년 행사를 앞두고 서울시의사회 날 행사 진행에 대해 고민하던 끝에 의사회 날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크게는 아니더라도 진행을 해야겠다고 판단해 5월30일에 진행하려고 합니다.

현재 의협은 파산 직전이라고 합니다. 그 핵심에는 직원들의 퇴직금 문제로 현재 24억원 적자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시의사회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정=의협은 퇴직금을 적립했다고 해도 모자랍니다. 퇴직금은 월급의 2.5배를 지급해야 하는데 현재 의협은 월급의 100%만 적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숙희=가장 큰 문제는 제가 올해 의료수가 협상 단장이었습니다. 이번 수가협상단을 꾸릴 때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보험 일을 연속적으로 한 보험부회장이 없어 보험이사와 수가협상단을 꾸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의협은 재정난 해결을 위한 비용절감 차원에서 국과 실을 다시 개편하고 있습니다.

△경만호=저도 1996년 의협 이사직으로 들어온 이후 그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박한성 회장님이 말씀하신 과징금 5억원건은 황당하게 부담이 됐습니다. 공정거래위원장을 찾아가 이 문제에 대한 부당성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위원장께서 하는 말이 무조건 깍아줄 수 없다며 공정위에 출석, 의료계에 잘못 부과된 과징금 5억원에 대해 위원들에게 이야기하고 설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위원들을 상대로 이 사안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했더니 `의료계 내부에 이런 문제가 있구나'라고 인식하고 깎아줬습니다. 약 3억원 정도 삭감해줬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의사신문 폐간 논란이었습니다. 저는 회장으로서 기관지인 의사신문 폐간에 반대했습니다. 대의원들은 신문사가 매년 적자를 내며 직원 월급도 못주는데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신문사 폐간을 막기 위해 말 많은 대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하고 회비를 2만원 올려 신문사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의사회비 2만원을 인상시켜 의사신문의 폐간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서울시의사회 예산은 20∼30억원이었는데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시행하는데 빠듯했습니다.

△나현=가용예산은 약 15억원이었습니다. 현재 16억원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경만호=신문사가 앞으로 큰 역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의사신문은 의료계가 선행하고 있는 봉사활동이나 재난현장에 타 매체들보다 먼저 현장에 나가 속보기사를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 의협회장직을 수행할 때 의협은 시도의사회장들의 의견개진을 하다 보면 행사를 추진하기 어려웠습니다. 의협 방침과 달리 말도 안되는 의견을 내는 분들도 많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의사회는 회장을 중심으로 조직화되어 있습니다. 저는 의협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자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봅니다. 모두가 하나되어 똘똥뭉치면 모두 함께 주저 않을 수 있습니다. 같은 의료계 단체라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예전부터 주장했던 것처럼 의료계 단체도 예술인총연합회나 과학기술총연합회와 같이 의료인총연합회로 나가야 합니다. 의협회장 선거시 개원의협의회에서 특정인을 지지한다는 등 목소리가 나와야 의료계도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의협이 하는 것에 무조건 반대하라는 것이 아닌 한꺼번에 뭉치는 것은 색깔이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의사회가 서울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인 만큼 서울시의사회의 목소리도 내고 정책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의사회가 100주년을 맞아 신임 여성 회장이 탄생한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서울시의사회는 100년의 업적을 이루었으며 그동안 의학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반면, 100년 동안 우리 의료인들은 국민에게 많은 봉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도당해 억울한 측면도 있습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료계 현장의 목소리를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문영목 전 회장.
나현 전 회장.
임수흠 전 회장.
“국립중앙도서관과 연계 `의사신문 CD화 작업'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용산구청 비의료인 보건소장 임명 저지 위해 발로 뛰며 해결 노력” “서울시의사회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회무 시스템 체계화 기틀 마련…25개 구의사회·50개 특별분회 서울시의사회로 통합 외적 성장 발판” “원격의료·규제 기요틴 등 의료계 현안 해결 위해 삭발 투쟁 등 펼쳐…젊은의사정책연·협의체 지원·회무 참여 확대 등 젊은 의사와의 소통”

△한광수=과거 에볼라, 광우병 사태를 보면 의사단체가 시민과 국민에게 책임있는 목소리를 못냈던 것 같습니다.

반면, 권이혁 장관님이 주도한 의학평론가회에서는 국가재난(광우병)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의료계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전문학회에 자문을 얻어 의학적으로 책임지는 말을 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경만호=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바로 광우병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촛불시위를 하는 등 정권 자체가 흔들리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의협 회장직을 막 시작할 당시였습니다. 5개 일간지에 9000만원을 들여 신문 1면 하단에 `광우병 문제없다'는 문구로 광고했습니다. 청와대에서 이 광고를 보고 고맙다는 연락이 왔었습니다.

의사들도 `옳은 것은 옳다'는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시의사회에 또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정책 추진시 `의료정책연구소'가 서울시의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연구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하십시오. 의료정책연구소가 어젠다를 선정할 때 서울시의사회장의 생각과 문제점, 대안들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숙희=의협이 광우병사태 때 아무것도 안 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 대의원 총회에서도 이야기했습니다만 KMA폴리시에서 가이드라인을 정해 내놓으면 의학, 질병 등 갑자기 일이 발생했을 때 대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제가 광우병 사태 때 의협이사로 있으면서 국민, 의료계를 위한 대책과 대안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그런데 `왜 의협은 가만히 있냐'라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당시 의협이 추진했던 일들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또한 의료정책연구소도 많은 연구 진행 및 발표를 했는데 당시 자료를 찾으려면 소요시간도 오래 걸리고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저는 KMA폴리시를 통해 과거를 다 정리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재정=의협이 광우병 사태가 일어났을 때 바로 나섰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시기가 많이 늦어져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당시 선한의료봉사단을 만들었을 때인데 의협보다 먼저 광우병 사태에 적극 나섰습니다.

의협의 이 같은 행동은 아마도 의협 내 학자들이 많기 때문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서로들 눈치 보다 보니 이 같은 오해와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의협은 중심을 잡고 임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상황에 재빠르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만호 회장님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어떤 일이든 시기적으로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서울시의사회도 세미나, 토론회는 물론 공청회를 통해 법안이 제정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들은 의료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국회와 손잡고 법령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시의사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문영목=역대 회장님들이 서울시의사회 정책과 역사에 대해 많은 말씀들을 해 주셨고 저도 공감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정책을 수립할 때 중심을 갖고 옳다 생각하면 TF팀을 구성,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입장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의협은 맏형으로서 일을 꾸려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의사신문사에 대해 이야기하면, 앞서 말씀하셨듯이 폐간 이야기가 거론될 때 곤혹스러웠습니다. 서울시의사회 임원진 중 폐간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 중 이해설득이 안됐던 이사들은 자리변동이 있었습니다. 서울시의사회장 재임 시절 의협이 종이신문을 없애고 인터넷 신문만 운영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의사신문도 인터넷만 운영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협이 신문을 어떻게 운영하건 의사신문은 현 체계로 가자는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결정했던 사안이었습니다.

의사신문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지제근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지제근 선생님이 논문을 쓰기 위해 의사신문 자료를 참고한다면서 서울시의사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의사신문은 신문보관을 제대로 하고 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지제근 선생님이 의사신문사를 방문하신 후 신문이 구석에 놓여 먼지가 수북한 것 등 보관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반세기 역사를 가진 의사신문의 보관상 문제를 지적하셨습니다.

그때 나온 이야기가 의사신문 CD화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CD작업을 추진하기 위해 당시 예산으로는 자금이 부족해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신문 보관현장을 가보니 통풍, 온도 조절 등 어느 것 하나 되어 있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 신문을 그냥 쌓아 놓아 먼지처럼 변해가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국립중앙도서관과 연계, CD작업을 진행하게 됐고 약 4/5정도가 CD로 제작되어 보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립중앙도서관 내 문제로 CD작업이 중단된 이후 진행이 안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사신문의 역사를 담은 신문이 먼지로 날아가는 것을 지제근 선생님의 지적으로 면한 것 같습니다. 당시 이 작업을 하면서 신문 보관 창고도 정리됐습니다. 신문 CD작업과 창고정리를 하면서 잃어버린 신문의 기증을 요청하는 캠페인도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회장으로 있으면서 의사신문 보관 문제를 해결한 것은 기쁘고 또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것이 용산구청장입니다. 용산구청장이 보건소장을 의사가 아닌 자신의 지인인 비의료인으로 임명한다고 해서 의료계가 발칵 뒤집혔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용산구 국회의원이었던 진영 의원을 만나 설명했습니다. 진영의원도 머리를 흔들며 용산구청장은 건축만 해 말이 안통하는 사람이라며 도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상당히 애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시의사회의 노력에 더해 의협이 많이 도와줘서 용산구 보건소장이 비의료인으로 넘어가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시 용산구보건소장에 비의료인이 임명됐다면 서울 보건소의 의사 보건소장 체제가 무너져 비의료인 보건소장 임명이 보편화됐을 것입니다.

△나현=제가 서울시의사회장을 맡은 후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 경만호 의협회장님과 함께 용산구청장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용산구청장이 경만호 회장님과는 먼 사돈관계였습니다. 그러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보건소장 임명은 인재원에서 면접을 보고 명령내리는 것을 알고 서울시 인재원장을 만나러 간적이 있습니다. 당시 인재원장이 이명박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이었는데 의료계 입장을 들어보더니 제도를 바로 잡아주겠다며 의료계와 의기투합, 잘 해결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인재원장이 용산구청장 같은 사람에게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보건소장은 의사가 해야 한다'는 공문을 내려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 공문은 서울시 25개구에도 전달됐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제 임기 때부터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100주년을 대비해 내부적으로는 건물 청소와 주차장 돌담을 구축, 행사자금 1억원을 마련했었습니다. 그리고 외적으로 서울시의사회가 커져야 한다고 판단해 서울시의사회와 의사신문사, 의료봉사단을 통합시켰습니다. 김숙희 회장님이 100년만에 서울시의사회장이 되셨지만 서울시의사회 여자 사무총장은 제가 처음 임명했습니다. 또한 각 조직의 자율성을 주지만 통합성을 갖자는 의미로 25개 구의사회의 통합과 50개 특별분회를 서울시의사회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숙희=지난 주말 서울시의사회 임원 및 이사회가 끝장 토론 워크샵을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진행했습니다. 이때 주제가 `의사회 가치, 왜 서울시의사회가 필요한가'였습니다. 회원들 입장에서는 `구의사회와 의협이 있으면 됐지 왜 서울시의사회가 필요한가'라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특별분회 문제였습니다. 특별분회도 회비를 내는데 `어떻게 하면 서울시의사회가 특별분회 회원과 함께 갈 것인가'였습니다.

△나현=의협에서 하는 것은 정책입니다. 갑자기 의협이 커져서 그렇지 사실 서울시의사회는 회원들의 복지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의학은 인간학, 사회와 소통 확대에 힘써야”

의료 정책·사회적 이슈에 의협과 공조·견제 함께해야
의사신문·봉사단 활성, 서울시의사회 정체성 확립 도움

△김숙희=현재 서울시의사회 임원들을 보면 의협보다 더 잘 구성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추무진 회장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이날 우리 임원들은 자신들이 의료계 지도자라 생각하고 막장토론으로 치부하며 서로 치열하게 많은 현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하지만 이 중 특별분회 문제는 답답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별분회 회원들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서울시의사회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앞으로 논의해야 할 사안입니다. 그리고 의협도 개원의 단체처럼 흘러가는 면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오기 전 `의료수가협상'을 하고 왔습니다. 정부와 의료계 간 수가 협상이 의원과 병협을 분리해 진행하다 보니 의협이 개원의 단체를 대표해 수가를 올려달라는, 자기 밥그릇 챙기는 것 밖에 안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정부의 수가기준 금액을 병협과 나눠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문제는 개선돼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박한성=김숙희 회장님의 말씀을 토대로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데 개원의협의회가 힘을 가져야 합니다. 어디에 소속이 되어 있던, 뭉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현재 내과, 산부인과 등 7개 진료과는 의사회 자체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각각 단체는 자기 하나의 학회나 롤을 다하고 있고 각 지역의사회도 갖추고 있습니다. 이것을 합치기만 하면 개원의협의회가 각 지역에 다 생기게 되는 것인데 지금의 현실에 너무 안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시의사회와 의협의 갈등도 이런 것 같습니다. 서울시의사회가 올바른 목소리를 내야 되는데 잘못되면 의협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오해로 의협도 견제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답은 있을 것입니다. 김숙희 회장님은 의협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서 서울시의사회의 목소리를 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서울시의사회는 작은 의협입니다. 서울시의사회가 작은 의협 역할을 하면서 의협과 불협화음만 안 내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한광수=100년사 편찬에 의사신문을 CD로 남길 수 있도록 업적을 세우신 지제근 선생님의 도움을 역사에 남겨야겠습니다. 이상웅 회장님 시절 제가 의무담당부회장직을 수행할 때 서울시의사회가 당시 예방접종 700원으로 동일하게 내렸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당해 애를 먹었습니다.

당시 이 문제를 두고 최수병 공정거래위원장을 만나 `대한민국 의료수가는 책으로 정해져 있어 접종 수가를 결정해 발표하는 것은 담합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최 위원장이 “의료계 현실을 잘 몰랐다”고 전하며 벌금을 적게 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상웅=나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예방접종 인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의사들이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뜻으로 주사약값만 받고 주사를 놔준 것으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가 1300원이던 진료비를 2500원으로 올려줬습니다.

`병원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보고 주사를 놓아야 한다'며 예방 접종비를 올려준 것입니다.

△한광수=당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된 것은 서울시의사회에서 진료수가를 얼마 받으라는 공문을 내려 보낸 것이 잘못됐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이상웅=공정거래위원회 이야기를 듣다보니 한 일화가 생각납니다. 제가 회장직을 수행하기 전 회장님이 제약회사에서 뇌염백신 가격을 규정에 따라 구입했었나 봅니다. 나중에 이 제약회사가 의사회를 공정위에 제소했습니다. 제소를 하고 나서 판결이 나왔는데 서울시의사회가 잘못했으니 신문에 공개사과를 하라는데 제가 잘못한 것이 아니어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김재정 회장을 찾아가 2∼3년이 걸릴지, 차기 회장이 책임지고 사과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의협에서 소송비용을 지불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의협을 찾아가 비용을 청구하고 공정위에 제소했었습니다. 당시 소송까지는 가지 않고 공정위에서 제약회사에 의사회 전후 사정을 이야기 하고 공문으로 해결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재정=서울시의사회가 우리 시대 때와는 달라졌습니다. 의협 회장 선출 방식이 직선제로 변경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의협 회장은 구회장, 서울시의사회, 개원의협의회장직을 하면서 의료계를 이끌어 본 사람들 중에서 나왔습니다. 이들은 한 단체의 회장을 맡으면서 회원들한테 질책도 받고 경험도 쌓으며 회원들을 이끌어 보며 산전수전을 격은 인물들이었습니다.

요즘은 의료계 집행부의 일을 해보지 않은 무경험자들이 상임이사직이나 의협회장 후보로 선출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이는 곧 서울시의사회나 의협이 정책적인 일을 추진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회장직을 수행할 때 의협 직선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회장 선출 방식을 두고 회원들의 요구가 너무 강렬해 추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회원 자신들의 손으로 선출한 회장의 뜻을 잘 따르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며 진행했었는데 그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손으로 뽑은 회장이다 보니 회원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는 현상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의협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서울시의사회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은 것 같습니다. 김숙희 회장님이 중심을 잡고 의료계에서 앞장서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삼봉=저도 김재정 회장님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추무진 회장님을 만난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든 단체가 젊은 사람과 목소리 큰 사람만 모여 있다 해서 일이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일에는 순서와 단계가 있다. 적어도 협회에 뜻이 있다면 초반부터 협회에서 일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어야 한다. 대의원도, 감사도 투표로 한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본다. 의료계를 정책과 정치를 모르는 사람이 협회 수장이나 대의원회, 감사가 되면 회원을 위한 협회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렇게 구성된 협회는 한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추무진 회장님도 현 상황에 대해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김숙희=권이혁 장관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십시오.

△권이혁=의사는 대단한 직업입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대우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땀 흘려 공부한 결과에 비해 의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덜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결과는 의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IT가 발달하면서 어디서든 쉽게 우리사회의 화제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의사들이 조금 잘못하거나 비리 등 일화가 있으면 바로 뉴스에 나옵니다. 제가 봤을 때는 웃고 넘어갈 이야기인데도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아 요즘에는 너무 자주 나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계가 이런 이미지가 된 것은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결과는 근본적으로 의학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의학교육은 `인간학'으로 인성문제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현재 의학교육과정은 인성문제를 많이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서울시의사회장은 의사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의사입니다. 이 대표자들은 의과대학, 대학의 초청을 받아 의료계의 경험담이나 의료계 정책 등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서울시의사회 의사들을 대표하는 회장을 초청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의사들도 일반 사회인들과 보다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의사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것을 한쪽에 책임을 물을 게 아니라 의사들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의학은 인간학'이라는 주장을 끝으로 말을 마치겠습니다.

■한편, 지난 5월 20일 달개비에서 개최된 `원로 초청 좌담회'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했던 임수흠 제32대 서울시의사회장(2012.4.1∼2015.3.31)은 자신의 3년 임기동안 회무추진 성과를 간략하게 요약, 보내왔다.

△임수흠=제 자신, 서울시의사회장으로서 지난 임기 3년 동안을 뒤돌아볼 때 `원격의료'와 `규제 기요틴'을 비롯한 의료계에 산적한 현안들에 대해 강력한 추진력과 함께 돌파형 리더십으로 적극 대처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투쟁과 대안 그리고 상생'을 화두로 △의약분업 재평가, 선택분업 쟁점화 주도를 비롯 △대정부 투쟁과 의사단체 권익쟁취 헌신 △강력한 추진력으로 의협 및 서울시의사회 혁신  △일선 현장의 회원들 어려움을 직접 해결해나가는 회원들과의 밀착 소통 △우리의 미래, 젊은 의사와 함께 하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우선 `의약분업 재평가, 선택분업 쟁점화 주도'의 경우, 지난 15년 동안 단 한번도 평가받지 못했던 의약분업의 폐단을 성토하고 의약분업 재평가를 공청회, 일간지 광고, 궐기대회, 국회 직접 방문 등을 통해서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에 국회의장도 선택분업의 필요성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하는 등 선택분업을 주도적으로 끈질기게 쟁점화시킨 기억이 남습니다.

또 `대정부 투쟁과 의권 쟁취 헌신'의 경우, 원격의료 저지를 비롯 의료제도 바로 세우기를 위한 삭발투쟁을 감행해 의료계 전체의 단합을 유도하는 한편 의료관련 규제 기요틴의 적극 저지에 나섰습니다. 주도적으로 수가협상단장과 모든 의료현안들을 협의하는 의발협 협상단장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한 바 있습니다. 한때 제 자신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지기도 했지만 죽더라도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로 흔들림 없이 임했습니다.

`서울시의사회 혁신'의 경우, 과감한 근태 관리와 사무처 개혁 등을 단행하면서 효율적인 의사단체로 탈바꿈시키는 등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 젊은 의사와 함께'의 경우, 서울시의사회 상임이사진에 전공의 비율을 확대하고 그동안 배정이 없었던 의협파견 중앙대의원에 3석을 배정하였고, 대전협과 대공협, 의대협으로 구성된 젊은의사협의체를 적극 지원했고 개원을 준비하는 새내기들을 위한 교육실시 등 젊은 의사와의 소통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열렸거나 열릴 예정인 `서울시의사회 100주년 기념 행사들'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예산확보는 물론 사업계획 내실화 등 개최 준비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기록·정리 - 김기원·홍미현 기자
사진 - 김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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