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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사회 100주년 약사
■서울시의사회 100주년 약사
  • 배준열 기자
  • 승인 2015.12.0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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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한성의사회 창립…3만3천명 단체 성장·국민건강 수호 사명감 속 잘못된 의료정책 항거

일제 어용 의사단체 통합 저항 대한민국 의료 정통성 지켜
천연두 퇴치·여의사 양성 및 보건의료 정보 전달에도 기여

지난 1915년 창립 이래 국민의 건강증진과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발전을 위해 끝없는 노력을 경주해온 서울특별시의사회가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았다.

서울시의사회가 걸어온 장장 100년의 역사는 우리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격변기로 개화시기와 일제시대, 6·25전쟁, 남북분단, 군사정권, IMF 등을 거치며 의료 환경도 급변하여 의료계도 나름의 대책을 세우며 지금까지 달려왔다.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는 10여년 만의 전국민 의료보험 강제가입 달성에 따라 의료계도 수급체계변화에 빠르게 대응했고 의약분업 이후 파생된 정책과 제도들 역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포괄수가제 역시 마찬가지다.

안상호 초대회장, 심호섭 등 의사 19명의 주도로 창립된 한성의사회를 모태로 하는 서울시의사회는 그동안 양적, 질적 팽창을 거듭해 현재는 개원의사, 의대교수, 봉직의, 전공의 등을 아우르는 등록 회원 수만 총 3만 3천여명(2015년 11월 면허신고 기준)에 이르는 의료계 대표 단체로 성장했다.

서울시의사회는 대한의사협회 산하 단체 중 가장 큰 단체로서 국민의 건강과 회원들의 권익을 위해 중추적이고 앞장서는 의사회로 거듭나기 위해 지역의사회의 모범이 되어야 할 막중한 책임감을 현재 안고 있다.

대한민국 의학 발전의 역사와 괘를 같이 하는 서울시의사회는 겨레의 암흑기인 일제시대에 태동했지만 창립 당시부터 일제의 폭압에 굴하지 않고 항거하며 국내 최고 전문가 단체로서 숭고한 의업의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919년 일제는 총독부 조선의사회규칙을 제정하여 한성의사회로 하여금 어용의사단체인 경성의사회에 통합할 것을 강요했지만 한성의사회는 긴급 총회를 열고 경성의사회와의 통합 반대를 결의해 맹렬히 저항하며 전문가적 자존심을 지켰다.

1933년에는 한반도에 천연두가 크게 확산되자 한성의사회가 무료 종두접종 실시 및 경기도 일원 순회 무료진료에 앞장섰다. 미국 여의사 로제타 홀이 운영하던 당시의 유일한 여자의사교육기관이었던 조선여의강습소를 김탁원 한성의사회장이 인수해 우리나라의 여자 의사 양성의 초석을 다지기도 했다. 조선여의강습소는 오늘날 고려대 의과대학의 전신이다.

1960년 4월 15일에는 전국의 의사단체 최초로 기관지인 의사신문을 창간해 55년을 이어오고 있다. 창간 초기 재정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회원들에게 1인당 900원씩 모금운동을 벌여 신문운영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의사신문의 발전에 따라 의료계는 물론, 관계당국의 주목을 받자 1966년, 중앙단체인 대한의학협회도 자체 기관지의 발간을 추진하기 시작해 `의사신문' 인수를 시도했으나 서울시의사회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의협과 서울시의사회가 소송까지 벌인 끝에 무산되었다.

의약분업·원격의료 등 악법 항거·국가 재난시에는 살신성인
올바른 의료정책 수립·숭고한 의업의 가치 수호 위해 앞장

의료계는 지난 1999년∼2000년 의약분업사태라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세계 어느 나라 역사에도 당시 유례가 없는 정부의 의사탄압에 맞서 서울시의사회가 선봉에 나서 의권을 수호하고 올바른 의약분업이 정착될 수 있도록 투쟁했다.

지난 2013년 12월 15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 궐기대회'가 열려 전국의 의사회원들이 집결했다.

한광수 당시 서울시의사회장이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정부에 대항하다 대한의사협회 김재정 회장과 함께 검찰에 구속되어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의사면허까지 취소당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많은 서울시의사회원들은 결연한 의지를 담은 의사면허증 반납식에 이어 삭발투혼까지 불태우며 잘못된 의료정책에 항거했다.

당시 정권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의약분업을 밀어붙인 결과 도입 15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잘못된 의료정책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루는 가를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정부가 의약분업 실시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약제비 절감과 의료전달체계 확립, 의료서비스 질 향상 등의 목표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오히려 약제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초래하고 의료전달체계는 무너질 대로 무너져 결국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라는 국가적 재앙까지 초래했다.

원가 이하의 낮은 수가, 규제일변도의 관치의료, 의사들을 잠재적인 범법자로 몰아가는 각종 의료악법들로 신음하던 전국의 의사들은 결국 2013년 12월 15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 집결해 정부의 각성을 촉구했다. 의약분업 사태 이후 12년 만이었다.

서울시의사회는 의약분업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 번 의권 회복을 위한 투쟁의 선봉에 나서 임수흠 당시 서울시의사회장은 단식과 삭발까지 감행하는 결연한 의지를 불태우며 전국의 의사 대표자들과 의사 회원들의 참여를 적극 당부했다.

2015년 여름 온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며 대한민국 전체를 혼란에 빠트렸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때는 많은 서울시의사회 소속 회원과 의료기관들이 큰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환자진료와 감염확산 방지에 혼신을 기울인 결과, 결국 대한민국에서 메르스는 종식될 수 있었다.

메르스는 정부의 안일한 대처는 물론 잘못된 의료제도가 낳은 산물이었고 그 피해는 의료계에 그대로 전가되었지만 정부는 메르스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의료기관에 대한 정당한 손실보상에서조차 인색한 모습을 보여 진료실의 의사들을 더욱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이처럼 의료 환경이 변화해오면서 숭고한 의업의 가치를 훼손하는 시련의 시기를 수없이 겪었지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최선의 진료를 펼치고자 하는 의사들의 사명감으로 지금의 서울시의사회로 거듭날 수 있었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진료를 바라는 의사들의 소망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매년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강보험 수가를 강제해 그렇잖아도 악화일로에 있는 병의원의 경영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싸구려 의료를 조장하는 포괄수가제까지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의료계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료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원격의료까지 강행하는 모습을 보여 진료실을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규제기요틴이라고 명명되어 추진되고 있는 한의사에 대한 의료기기 사용 허용 움직임 역시 국민건강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의료의 가치를 훼손하는 수많은 시련들이 그동안 의료계를 괴롭혀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사회는 국민건강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 현재 서울시민을 비롯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건강지표는 세계최고수준을 달리고 있다.

서울시의사회는 어려운 상황임에도 각종 사회활동과 봉사활동에 힘을 기울여 대국민 이미지를 높이고 있고 학술, 의무, 법제, 세무 등 각종 대회원 연수교육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특히 국내의학자들의 연구열 고취와 미래지향적 좌표 마련을 목표로 지난 1967년 유한의학상을, 저술상을 통해 지속적인 연구의욕을 고취하고, 논문상을 통해 임상강사와 전공의(젊은 의사)에게 더욱더 의학연구에 매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 1995년 서울시의사회 학술상을, 사회에 귀감이 되는 봉사활동에 매진하는 의료인을 격려하고 의욕을 더 고취시키기 위해 한미참의료인상을 지난 1995년 제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시련들이 참의료를 향한 서울시의사회의 열망마저 위축시킬 수 없었듯이 앞으로도 아무리 험난한 장애물이 가로막더라도 서울시의사회는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최선의 진료를 펼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배준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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