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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회 50년의 이야기 〈중〉
수석회 50년의 이야기 〈중〉
  • 의사신문
  • 승인 2015.11.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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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성 길(연세의대 명예교수, 신경정신과 전문의, 효자병원장)

의사와 세상·문학에 대한 고민 50년간 이어져

만성길 효자병원장.

△제30집 수필집 머리말
돼지꿈에 부풀어 을해년을 맞은 지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주마등같이 돌아가는 세월 속에서 어느새 섣달을 맞게 되었습니다. (중략)

공자는 나이 삼십에 이르러 비로소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서게 되었다고 했습니다만 올해로 우리 수석회 수필집도 제30집을 출판하게 되었으니 지난날의 우정과 공들임이 새삼 되새겨지는 동시에 표지에 실은 이정규 화백의 그림에서처럼 탁 트인 들판에 우뚝 솟은 세 그루의 나무처럼 수석회의 앞날도 더욱 알차고 빛나리라 믿습니다.

(1995년 12월 1일 수석회 회장 김기령)

△제40집 서문
수석회 수필집 제40집을 마련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특히 선배 회원들이 남긴 글들을 읽어 보면서 모두들 대단하신 분들이라는 느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정다감한 마음씨들, 단아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면서 동시에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서린 수필들, 그리고 회원들간의 깊은 우정에 대해 찬탄의 느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값진 유산을 후배 회원들이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창립 40주년에 즈음하여 새로운 의욕을 느낍니다. 지금의 회원들께서도 모두 훌륭한 수필을 쓰십니다. 의사이면서 어떻게 그렇게도 문학적일 수 있는지,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흥미있게 풀어내시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길이 수석회의 문학과 우정의 대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하략)

(2005년 9월 수석회 회장 민성길)

△제45집 서문
(전략) 45번째 구슬이 꿰어 졌습니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구슬로 엮은 수필집입니다. 우리 수석회가 매년 연말에 내는 수필집의 제목을 정하는 방법이 매우 민주적입니다. 접수된 수필 제목을 쭉 적어 회원들에게 나누어 드립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에 동그라미를 그리게 합니다. 동그라미가 가장 많은 제목이 그해 수필집의 제목이 됩니다. 그런데 이 제목 결정에는 또 하나의 관문이 있습니다. 우리 모임의 제일 어른이신 배병주 박사님께서 정한 불문율입니다. 바로 이별, 떠나간다, 종점, 헤어짐, 저승 같은 인생을 부정하거나 불행을 의미하는 단어를 제쳐 놓게 되어 있습니다. (하략)

(2010년 수석회 회장 권성원)

△제49집 발간사
(전략) 가로등 밑을 걷노라니 최근에 우리 곁을 떠난 회원들의 얼굴들이 떠오릅니다. 우리에게 밝은 삶의 빛을 비추어 주시던 배병주 선생님, 박기현 선생님. 지금 쯤 노란 단풍에 취해 글 한 편 쓸 생각하면서 편안한 저녁 맞이하고 계시겠지요. 벌써 한해가 갑니다. 외인 한 잔 부딪치고 나서 정담을 주고받으며 웃음 짓던 시간들. 그 시간 속에서 느꼈던 생각의 편린들을 엮어 다시 동인지를 냅니다. (중략) 아득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의 벅찬 마음을 달래며 저녁이 있는 멋진 삶을 보내야 겠습니다.

(2014년 11월 수석회 회장 이방헌)

이 모든 글에서의 키워드는 인생, 세월, 우정, 정담, 한 잔 술, 수필, 예술, 긍정, 보람 등등이 아닌가 한다.

■모임
모임의 분위기는, 술잔을 기울이며 환담하는 것이 주였다. 강신호 회원의 회고에 따르면, 醫師이면서 文學을 좋아하는 共通點이 있어서 對話의 話題가 참 豊富했다. 모두 興이 좋아서 술 한 잔을 하면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했다고 한다.

다시 고 배병주 회원의 회고를 들어보자:

〈그 후 회의장소는 수시로 정하기도 하고 몇 해에 한 번씩 변하기도 했기에 일일이 생각나지는 않지만 몇몇 장소를 추려 보면 추억이 새로워진다. 당초 호수그릴에서 몇 번 모이다가 한 장소가 지루해지면 다동이나 청진동의 조촐한 방석집으로 옮겨 보기도 하고, 청진동 서울호텔을 거쳐 명동 신정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중략)

다음번부터는 강신호 회원의 주선으로 한남동 외인주택이 있는 한남클럽으로 옮기게 된 일도 있었다. 그 후에도 가끔 방석집에서 모일 때가 있었는데 운좋게 김사달 회원의 주선으로 다동의 자그마한 요정에서 당대의 묵계월 경기 명창의 격조높은 국악을 감상하는 호유를 즐긴 일도 생각난다. 그 후 집합장소가 다시 강신호 회원의 주선으로 무역회관을 거쳐 현재는 오크사이드 호텔의 용궁에서 모이게 되었다.

그간 우리들을 즐겁게 해 준 일들은 김사달 회원의 재담과 유머였으니 그는 식사 중 간장, 고추장 등을 물감으로 사용하여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는 묘기를 보여 일동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였고, 김기령 회원은 그 유명한 벨칸토 창법으로 `오∼솔레미오'를 불러 옆방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되어 기고만장하게 해 주었고 또 `사랑에 속고 돈에 우는 이른 바 홍도야 우지마라'의 열창에 전원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삼매경에 빠지게 되어 이 노래는 수석회의 단가(團歌)가 되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김희섭 회원의 `이수일과 심순애 대동강변 산보할 때'의 노래가 뒤를 이으면 박수갈채가 그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유쾌한 시간을 가지는 한편 때로는 심각하게 당대의 의료정책을 논하고 찬반격론이 전개되는가 하면 현행 의료계의 불합리성을 성토하기도 하고 개선책을 강구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때로는 구미의학계에 밝은 분의 강연을 들어보기도 하고 외국인사의 연설도 청해 보고, 미국의사가 본 이북 의료계의 실황이나 이북 병의원의 지원사업에 관한 감명깊은 보고를 들어 보는 시간도 가졌다.〉

지금도 수석회 수요 모임은 이러한 전통을 여전히 잘 지키내고 있다. 이후에도 모임은 변함없이 매달 첫 수요일 저녁에 모였다.

장소는 바뀌어 수년 전부터는 포스코 빌딩 19층에 있는 레스토랑 휘닉스 또는 겐지에서 모인다.

여전히 수석회 모임에서는 다양한 세상이야기가 펼쳐진다. 의료는 물론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친 흥미진진한 이슈들이 담소에 섞여 든다. 와인 한 잔도 빠지지 않는다. 때에 따라 회원 중에 한분이 특이한 주제를 가지고 짧은 강연을 하기도 하고,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인사를 초청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수필쓰기
다음 글은 서용순 씨(에세이문학 편집부장)가 에세이문학 제85호(2004년)에 기고한 수필 동인 탐방기/수석회(水石會)에서 일부 발췌한 것임)

〈수석회 회원은 글쓰기를 사랑한다. 김희섭 회원은 “좋은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모두 보람 있는 삶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생활의 지혜가 아름답게 피어오를 때 수필이 따르고 생활의 틀이 평화로울 때 차분한 독서의 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박하고 황막한 환경으로 얼룩진 이 시대 속에서도 때로 지혜롭고 차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모든 지성인의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내가 쓰고 있는 글도 그러한 테두리 안에 속하는 것 같다”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보람 있는 삶의 시간이라고 했다.

의학은 인간을 질병으로부터 구하고 건강법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의학에 대한 개념도 점차 변화되어 인간을 생리적·심리적·사회적으로 적극성을 띠게 하고, 가능한 한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연구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결국 인간의 육체와 정신, 이성과 감성을 최적의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이 의학의 목표라 하겠다.

그렇다면 의학적 지식과 문학적 감성이야말로 절묘한 만남이라 할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윤택하게 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상을 애정 어린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그런 마음 자세로 의술을 베푸는 사람들이기에 수석회 회원들에게 각별한 생각이 든다.

동인지의 제목들을 살펴보니 거기에도 그들의 세계가 담겨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제목을 짓느라 고심한 흔적도 역력했다. 창간호는`수석회'의 동인지임을 천명하듯〈물과 돌의 대화〉라 했고, 제5집은 기왕에 길게 늘어놓던 잡담으로 이루어진 열매이므로 제목도 길게 〈태풍 빌리孃이 지나간 뒤 淸進洞 골목에서 나눈 이야기들〉이라 했단다. 그러고 보니 그 해(1970년) 태풍 빌리가 우리나라를 덮쳤던 모양이다.

또 그 즈음에 그들은 청진동에서 자주 만났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 책의 제목은 단 한 자, 〈好〉라 지었다. 그 이유를 제6집 머리말에 이렇게 밝혀 놓았다.

“좋은 것이 좋아서 好, 남을 미워할 줄 모르고 욕심도 없는 무던한 사람들의 모임이 수석회요, 쓴 약도 쓰다 하지 않고 마시는 우리들이기에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好, 好!” 여기서 그들이 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긍정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인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또 제11집의 제목 〈鶴의 목처럼〉에는 학립학군(鶴立學群)의 청혜(淸慧)하고 고고(孤高)한 선비의 기품을 닮고 싶어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이 외에도 제16집(1981년)의 제목은 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결정된 것을 기념하여 〈88인생〉이라 했고, 1988년에 펴낸 제23집은 〈벽을 넘어서〉라 붙였다. 수석회 25주년을 맞은 해에는 〈마주 앉아 四半世紀〉라 했으며, 제26집은 〈다시 맞는 四半世紀〉라 하여 또다시 4반세기를 다짐하는 뜻을 담았다.

제31집부터는 문학적 향기가 느껴지는 제목이 눈에 띤다. 〈花心과 人心〉, 〈감동적인 침묵〉(제34집), 〈가을 갈대의 노래〉(제36집), 〈석양에 부는 바람〉(제37집) 등이다. 여기에는 수필로 표현한 그들의 정신과 미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중략)

그동안 동인지에 실린 글들을 보면 주변 이야기와 인생 경험을 통한 소회도 있지만 냉철하게 사회 현상을 꼬집은 비판적인 글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글, 질병과 인간의 행복의 조건에 관한 글들이 많아 읽는 즐거움과 삶의 지혜, 교양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다.(중략)
(중략)

이들은 의사로서 문학 동인 모임을 통해 선후배간의 우의를 다져 나가는 것은 물론이요, 생소한 의학세계를 문학적으로 세상에 펼쳐 보임으로써 의인(醫人)과 대중의 간극을 좁히는 데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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