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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도메니코 도니체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 의사신문
  • 승인 2015.11.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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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이야기 〈334〉 

■어긋난 운명의 비극, 광란의 오페라

낭만주의는 냉혹한 현실과 이해타산을 견디지 못하고 광기와 착란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의 죽음을 낳았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격정적 사랑은 죽음에 대한 열망으로 치닫고, 애절하게 사랑했던 두 연인의 죽음은 찬란한 사랑의 승리로 미화되었다. 이러한 낭만주의를 직면한 노년의 고전주의 작가 괴테는 “낭만주의는 병적인 존재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로시니, 벨리니, 도니체티로 대변되는 낭만주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벨칸토 창법으로 고난도의 기교와 가창력을 요구하면서 광란의 장면을 화려하게 묘사하였다. 도니체티의 〈안나 볼레나〉, 벨리니의 〈청교도〉, 〈몽유병 여인〉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중에서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주인공 루치아가 20여 분 이상 부르는 `광란의 장면'이 벨칸토 오페라의 절정을 이룬다. 플루트와 화답하듯 부르는 소프라노의 기교는 목소리를 악기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는 콜로라투라 기법의 극한이며 관객들이 격렬한 감정과 광기를 실감할 수 있도록 연기를 해야 하는 낭만주의 오페라의 결정체이다.

그러나 가수들이 기교에만 신경을 쓰는 등 공연을 하기가 어려워 서서히 잊혀졌고, 베르디의 〈리골레토〉와 같은 성악 기교보다는 연극 요소가 짙은 오페라가 주를 이루게 된다. 낭만주의 벨칸토 오페라는 100년 이상 외면되었다가 1950년대 다시 알려지면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가 되었다.

스코틀랜드 작가 월터 스코트는 당시 정략결혼을 강요당하는 신부가 첫날밤 신랑을 죽인 사건에 호기심을 느껴 이를 배경으로 1819년 〈람메르무어의 신부〉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스코틀랜드 달림플가 스테어경의 딸 자네트가 레드포드 가의 아들과 사귀고 있었는데 레드포드 가의 아들은 좋은 가문 출신이지만 재산도 없고 정치적으로도 반대파여서 스테어 경은 교제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의 교제를 갈라놓기 위해 급히 신랑감을 물색하여 결혼을 시켰는데 첫날밤 딸이 신랑을 칼로 난도질하며 미쳐버리고 2주 후 세상을 떠났다는 사건이다. 이 실화에서 스코트는 인물의 이름을 바꿔 소설화했는데 잉글랜드와 통합되기 전인 1707년 원수 가문 간의 젊은이의 사랑에 덧붙여 정치적으로 몰락한 가문과 권력을 얻은 신흥 귀족 가문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도니체티는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자 그동안 마음에 두었던 스코트의 소설을 소재로 하기로 하고 대본은 살바토레 카마라노에게 맡겼다. 오페라의 주인공들은 소설 속의 영국식 이름을 이탈리아어로 바꿔 루시를 루치아, 에드가를 에드가르도, 헨리는 엔리코로 설정하여 1835년 산 카를로 극장에서 초연해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제1막 제1장 엔리코 성앞 뜰 숲속의 수상한 기사를 찾기 위해 신하들이 숲으로 달린다. 성주 엔리코는 동생 루치아를 짝사랑하는 아르투로와 정략결혼을 시키려 하지만 그녀는 그를 거절하며 슬퍼하고 있다. 이때 부관 노르만도는 루치아가 아르투로와 결혼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의 원수인 에드가르도와 만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폭로한다. 이에 격분한 엔리코에게 신하들이 숲속의 이상한 기사는 바로 에드가르도라며 노르만도의 말을 입증한다.

제2장 레이벤즈 성안 조그만 공원 달 밝은 밤 루치아는 시녀 알리사와 함께 에드가르도를 기다린다. 알리사는 위험하다고 만류하지만 루치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리아 `깊은 침묵은 밤을 덮는다'를 부른다. 잠시 후 에드가르도가 말을 타고 나타나 오늘 특무를 띠고 프랑스로 떠난다고 하자 루치아는 오빠에게 둘의 결혼을 청원하자고 하자 에드가르도는 아버지의 원수와 화해할 수 없다며 그녀에게 결혼반지를 끼어주고 이중창 `영원히 변함없는 사랑'을 부른다.

△제2막 제1장 람메르무어 성안의 방 엔리코와 부관 노르만도는 에드가르도가 사랑을 끊겠다는 거짓 편지를 만들고 있다. 이때 루치아가 방으로 들어오자 엔리코는 에드가르도의 편지라며 전해준다. 편지를 읽고 아리아 `눈물에 젖어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를 부른다. 엔리코는 그녀가 아르투로와 결혼을 거절한다면 자신이 정치적 생명을 잃고 사형을 당할 수 있다고 설득하지만 루치아는 듣지 않고 에드가르도와의 결혼만 탄원하자 엔리코는 문을 박차고 나간다.

제2장 성안의 넓은 홀 귀족들이 아르투로를 환영하며 루치아와의 결혼식을 축하한다. 신부 루치아가 시녀 알리사와 가정교사 라이몬드의 부축을 받고 들어오다 쓰러진다. 이에 당황한 엔리코는 아르투로에게 죽은 어머니를 슬퍼하기 때문이라며 루치아에게 결혼서약을 강요한다. 루치아가 서명을 하는 순간 테라스에서 에드가르도가 루치아를 데려가기 위해 들어와 칼을 뽑는다. 이때 유명한 육중창 `나를 붙드는 것은 누구인가'를 부른다. 라이몬드는 결투를 막기 위해 결혼서약서를 에드가르도에게 보여준다. 넋을 잃은 루치아가 반지를 빼자 배신감에 에드가르도가 반지를 빼앗아 집어던지고 루치아와 엔리코를 저주하며 사라진다.

△제3막 제1장 에드가르도의 레이븐스우드 성안의 방 폭풍우 치는 밤, 에드가르도는 자신의 운명을 비탄해한다. 이때 격분한 엔리코가 들어와 결투를 신청한다.

제2장 결혼식 밤 신혼부부가 방으로 들어간 후 하객들이 피로연을 즐기고 있을 때 라이몬드가 나타나 루치아가 방에서 아르투로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울부짓는다. 잠시 후 선혈이 낭자한 흰 잠옷을 입고 머리가 흩어진 루치아가 창백한 얼굴로 나타나 `광란의 장면'을 노래하자 이 참담한 모습을 보고 엔리코도 후회하며 괴로워한다. 제2장 묘지앞 깊은 밤 에드가르도는 아리아 `내 조상의 무덤이여!'를 부르며 엔리코와의 결투를 각오한다. 라이몬드가 루치아가 죽었다고 알려주자 에드가르도는 `날개를 펴고 하늘로 간 그대여'를 부르며 자신의 비운을 탄식하면서 자결하고 그의 죄를 용서하라는 합창과 함께 막이 내린다.

■들을 만한 음반 : 마리아 칼라스(루치아), 주제페 디 스테파노(에드가르도), 로날도 파네라이(엔리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EMI, 1955)/조안 서덜랜드(루치아), 루치아노 파바로티(엔리코), 세른 밀른즈(엔리코), 리차드 보닌지(지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Decca, 1971)/에비타 그루베로바(루치아), 알프래도 크라우제(에드가르도), 레나타 브루손(엔리코), 니콜라 레시뇨(지휘),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EMI,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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