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08 (토)
수석회 50년의 이야기 〈상〉
수석회 50년의 이야기 〈상〉
  • 의사신문
  • 승인 2015.11.16 0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 성 길(연세의대 명예교수, 신경정신과 전문의, 효자병원장)

`물과 돌의 화음' 담은 첫 수필집 1966년 발간
 

민성길 효자병원장.

■창립

수석회는 50년전 1965년에 결성된 `멋진' 의사들의 수필동우회다. 당시 평소 가까이 지내던 의사 대여섯 명이 중구 다동에 있는 `호수그릴'에서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너 명이 참석했으나, 각기 추천해서 `끼'있는 사람 열두 명이 모였다. 그리하여 1965년 어느 날 다동 호수그릴에서 창립총회를 열었다. 그렇게 모인 그들은 매월 첫째 수요일 저녁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었다.

다음은 40주년 기념 제40집에 실린 고 배병주 회원의 `수필 40년'의 내용 일부이다.

〈광복이 된 지도 약 20년이 지난 때였다. 해방직후의 혼란시대를 정신없이 지냈고 뒤이어 6.25전쟁을 겪은 뒤의 혁명이며 재건물결도 점차 줄어들면서, 학교나 의료계도 숨을 좀 쉬기 시작하였다. 이 때가 1965년 우리들의 모임인 수석회가 싹트기 시작한 때이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40년 전인 1965년 당시 신문, 잡지에 글을 기고해 본 적이 있었던 의사들과 의료계 인사들 몇몇이 당시 이미 문필가로 이름난 최신해 씨 등 몇 분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교분이 시작되었다.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뿐 아니라 의학계나 의료정책을 논하고 세상에 대한 불평과 감격을 같이 하기도 하였다.

주로 만났던 장소는 당시 양식점으로 유명했던 다동에 있는 호수그릴이었다. 그러던 중 몇몇이 발기하여 중견의사들과 의료계 인사들이 모여서 그 때마다 수필이라도 한편씩 써내기로 하였으니 이것이 의사수필동문인 수석회(水石會)의 시작이 되었으며 열두 명이 모이게 되어 창립회원이 되었고 그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판본방직 김경린, 연세대 김기령, 대한의협 김사달, 의사신문 김윤기, 적십자병원 배병주, 서울의대 백민기, 이희영, 서울치대 이한수, 수도의대 유병서, 청량리병원 최신해, 제일약품 한원석, 한피부과 한일영 제씨(가나다 순)였다.
 (중략)
그리하여 매월 첫 번째 수요일에 모이면서 수필 한두 편씩 모아서 후일 회고꺼리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중략)
창립 후 한 3년이 지나서 추석날 저녁 모임(1969년 仲秋節)의 조촐한 소연(小宴)에서 가진 모듬쓰기에 각자의 소감을 적어본 일이 있는데 이것도 새삼 추억거리로 남는다.
 

지난 1969년 추석날 저녁 모임에서 가진 모듬쓰기.

필자가 열심히 판독한 결과, 다음과 같은 글들을 읽을 수 있다:
人類에의 奉仕가 人生의 가장 아름다운 事業임을 나는 믿는다. - 강신호
이 세상에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으면 보여 달라! 헬만 헤세와 더불어. - 김희수
좀 더 젊어지고파. - 한원석
水石. 너와 나의 아름다운 사회참여, 봉사. 우리 마음도 이와 같이. - 김기령
넌 왜 사느냐구? 나는 그래도 아직은 땅에 詩가 남아 있기에 산다. 江流天地外 山色有無中. 이건 누구 詩냐구. 자네도 이젠 그것쯤 알고 살게. - 이한수
有山有水處 無榮(?)身 그래서 낚시만 다니다보니 좋은 세월도 다 갔고. - 최(신해)
이것이 그것이다 針孔 - 백만기
笑百少, 怒百老. - 이희영
人間到處 有靑山. - 유병서
사람은 이름을 먹고 사나보다, 사람은 돈을 먹고 사나보다. 아니 사람은 글을 먹고도 사나보다. - 김윤기
窮理(?). - 한일영
曾子 曰 吾日 三省 吾身… - 김사달
性은 낙서에 있어서도 왕이더라. - 배병주〉

■`수석'이라는 명칭

독자들은 무엇보다 모임 이름을 수석회(水石會)라고 정한 이유가 궁금할 것이다. 듣기에 따라 여러 가지 뜻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석회라고 하니 괴상스런 돌을 모으는 수석회(壽石會)냐고 묻는 사람도 있고,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들만 모이는 수석회(首席會)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회원 스스로는 돌머리들(실은 돌대가리들이라고 표현했음)의 모임이라는 의미의 수석회(首石會)인지도 모른다는 농담도 있었다. 실은 매월 첫째 수요일 저녁에 모이는 회이기 때문에 수석회(水夕會)라 지었다가, 저녁 석(夕)자가 뭣하여 돌 석(石)자로 바뀌었다.

수석(水石)에 대해서는, 옛날 중국에서 죽림칠현(竹林七賢)이 모여 술 한 독을 놓고 청담(淸談)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고도 한다.

물과 돌은 궁합이 좋아서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고 물 있는 곳에는 돌이 있게 마련이라는 뜻도 있다. 강신호 회원은 수석에 외유내강의 의미가 있다고 하였으며 자신의 아호로 삼기도 하였다.

■수필집

 

1966년 출판된 첫 수필집 `물과 돌의 대화'

1년 동안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건만 못 다한 말이 많다는 것을 느낀 그들은 남은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으로 엮어내기로 했다. 가능한 한 문학작품으로서 수필을 쓰자고 의견을 모았다.

일년이 지난 1966년 10월에 드디어 총 303쪽의 수필 75편을 실은 수필집이 출판되었다. 첫 수필집 제호는 `물과 돌의 대화'였다.

그 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수필집을 내고 있다. 한때 가입희망자가 많아 월간잡지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그대로 소수 동인 모임으로 하기로 하였다. 창간호, 제10집, 제20집, 제 30집, 제40집 등의 서문을 보면 수석회의 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다.

△창간호. 머리말

물과 돌이 부딪히는 곳에 和音이 날 것인가 雜音만이 들릴 것인가. 물은 물대로 돌은 돌대로 제각기의 소리가 날 만도 한데. 그래서 이름 지어 수석회라 했다.

바둑판같이 짜인 일상생활의 멍울에 싫증을 느끼고 우리는 우리 나름의 逃避의 길을 택한 것이 水石會의 모임이었다. 우연한 계기로 十二명의 돌들이 모여 한잔 술 사이에 놓고 얘기하다 보니 번번이 밤은 짙어 갔건만 그때마다 미진한 얘기를 애석히 여기면서 또 다음의 모임을 기다리곤 했다. (중략)
일년 동안이나 이렇게 얘기해 왔건만, 미진한 얘기가 아직도 많다는 衆論을 받아들여서 남은 얘기들은 글로써 엮어 이 책을 꾸며 본 것이다.

우리를 아는 분들에게는 격조된 회포를 풀어 보려는 인사장을 대신해 줄 것이요, 아직 우리를 모르는 분들에게는 우리들의 底意없는 放談에의 초대장으로 삼자는 생각에서 꾸며진 책이라 하겠다.

1966년 10월 水石會 會長 識
 

△제10집 수필집. 책을 내면서

친구들끼리 서로 웃고 얘기를 나누는 즐거움만큼 인간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은 다시 없다. - 〈루소〉의 말이다. 우리 수석회도 모임을 가진 지 이제 만 십년. 매월 한번씩 모여 그 때마다 함께 웃고 함께 얘기하는 기쁨을 나누었고 그래도 못다한 서로의 생각을 한권의 책으로 매년 묶어본 것이 벌써 열 번째가 된다.

한두 편의 글로서야 그 필자들 세세히 알 길이 없겠지만 아마 열권쯤 되면 속속들이 알 수 있을 줄 안다. 이것은 독자로서 재미난다면 퍽 재미나고 필자로서는 무섭다면 이보다 더한 두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우리 회원들은 이 책이 각자의 生涯에서 가장 많이 일 할 수 있던 시절에 적은 글들을 엮은 것이니 만큼 이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중략)

“어떤 일에 있어서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시오. 각각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남의 일도 돌보아주시오. 여러분은 이 마음을 품으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2장 3-5절).

75년 한 여름 장마철에 수석회 회장
 

△제20집 수필집. 권두언

우리 水石會모임의 20번째 되는 수필집인 `우리들의 20년'의 편집을 마치니 내 머릿속엔 萬感이 교차하는 것 같다. (중략)

스무 권의 동인 수필집을 그것도 잡지 형식이 아니라 冊형식으로 낸 동인회는 우리 水石會말고는 달리 없다는 중평을 듣고 보니 무엇인지 가슴 뿌듯한 감조차 든다.

우리 회원들은 전부 자기 나름의 바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고 문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니다. 이런 책을 냄으로써 文名을 날려 보겠다는 사람도 아닌지라, 그저 붓 가는 대로 그때그때의 느낌을 써서 매년 책을 내는 데에 만족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이 한권 한권의 책은 우리들이 함께 살아오고 함께 걸어가는 인생의 里程標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어언 20권이나 되었다.

이 20년 동안 모든 회원들은 모두 자기 직업에 충실했고 자기 人生의 수확기를 맞이하여 모두들 자식들의 교육이나 결혼을 거지반 마친 연령에 도달했으니 지난 20년은 우리 모두의 황금의 시기였고, 지난 20년을 회상해 보니 스스로 무엇인가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인생의 황금시기를 함께 호흡해 오면서 노년기를 맞이한 회원 여러분의 더 한층 눈부신 사회활동과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1985년도 수석회장 崔臣海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