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1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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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사신문
  • 승인 2009.10.0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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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바겐, 아우디 DNA 이용 '위기를 기회로'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은 위기가 온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때로 위기는 파국으로 치닫기도 하지만 정말로 기회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답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가하는 질문과 관련이 있다. 1970년대 초반의 폭스바겐은 오늘날의 혁신을 만들어 내는 회사의 이미지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였다.

1970년 폭스바겐의 공장은 최대의 공장 가동률을 기록한다. 비틀은 25년째 진군 나팔을 불고 있었고 비슷한 차종들이 다 잘 팔리고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부터 세계 자동차 산업은 격변을 맞이한다. 유럽의 자동차회사들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기 시작했고 일본업체들은 미국과 유럽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3년의 석유위기는 회사들을 궁지로 몰아갔다.

VW도 마찬가지여서 비틀의 판매고는 급속도로 감소됐고, 비틀의 다음 모델은 무엇인지에 대해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해답은 즉각 도출되지 않았다. 1968년 쿠르트 로츠가 신임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였다. 경쟁자이던 Fiat에는 Fiat124 같은 강력한 모델이 있었다. VW은 Fiat에게 유럽 1위 자리를 내준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은 없어 보였다.

대표작인 비틀은 너무 오래된 플랫폼이었고 매출은 떨어지고 있었다. 경영진들이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차종을 만들어 내려고 했으나 새로운 차종의 개발은 실패나 외면으로 끝나고 있었다. 점차 새로운 차종이 늘어나는 분위기에서 폭스바겐은 고전하고 있었다. 파국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판매량은 급감하고 있었고 회사는 자금난을 걱정할 지경이 되었다.

폭스바겐은 자체적인 플랫폼 개발에 실패하고 있었지만 폭스바겐이 인수한 자회사 중에 새로운 차종개발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 회사가 있었다. 아우디였다. 아우디는 경영이 어려워 벤츠에 인수되었다가 다시 폭스바겐에 인수된 회사였다. 폭스바겐의 자동차연합에 속한 몇 개의 회사 중 하나였다. 아우디는 전륜구동의 중소형차의 플랫폼 개발에 대해 강점이 있었다(당시는 아직 후륜구동이 대세였다). 전륜구동은 작은 사이즈의 차에서도 좋은 성능과 공간 활용면에서 유리했다. 이미 몇년 전에 오스틴의 미니가 전륜구동으로 크게 성공했다.

로츠의 후임인 라이딩은 취임 전 아우디에 있었다. 라이딩은 아우디 80의 플랫폼을 이용하여 폭스바겐에 필요한 엔지니어링을 수혈한다. 라이딩은 디자인 및 엔지니어링 팀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새로운 바디, 새로운 엔진, 새로운 디자인을 짧은 시간 내에 끝내야 했다.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라이딩은 기존의 아우디 80을 이용하여 VW에 적용시킬 수 있는 모델 개발에 착수한다. 이태리 디자이너인 조르제토 쥬리아로에게 모델 디자인이 의뢰되고 모델 이름은 파사트라고 붙여졌다. 이 차는 실용적인 차로 출발했으나 수냉식, 전륜구동 방식으로 이제까지의 폭스바겐의 제작 원칙에 변화를 일으킨 모델이었다. 비틀은 잊어야 했다. 그리고 파사트는 골프보다 한해 먼저 나왔다.

아우디의 소형 플랫폼은 A 플랫폼으로 알려져 있다. 파사트는 이보다 큰 B 플랫폼이다. 만약 아우디가 기술적 유전자를 이전부터 준비하지 않았다면 골프는 더 늦게 또는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아우디 80마저 그 이전의 기술유전자와 무관하지 않다. F103이라는 아우디의 모델인데 이 차는 1955년부터 전륜구동을 구현하고 있었다. 필자는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많은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항상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기술이 완숙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F103이 없었다면 아우디 80도 파사트도 골프도 없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폭스바겐은 자회사의 기술로 성공적인 모델을 내놓게 되었는데 바로 골프다. 골프는 1969년부터 개발에 들어가 1974년에 발표되고 생산이 시작된다. 당시의 골프는 여러 가지로 새로운 차로 그 후에 나오는 많은 중소형차들의 패러다임을 제공하게 된다. 경차를 제외하고 해치백이라는 장르를 유행시킨 것도 골프이다. 요즘이야 해치백이 이상한 차종이 아니지만 당시에는 `승용차 = 세단'이라는 공식 같은 것이 있었다. 폭스바겐은 공간의 활용을 중요시해서 차를 해치백으로 만들어 낸다. 골프와 파사트의 설계는 이탈디자인의 주지아로가 맡았다.

엔진은 수평대향으로 배치하고 뒤차축은 토션바라는 방식으로 차체에 차축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뒤축을 토션바 형태로 만들어 놓으면 트렁크 부분의 가용면적은 무척 넓어진다. 박스형의 실내공간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었다. 엔진룸이 크고 실내에 후륜구동을 위한 차축이 지나가는 당시의 차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결과는 당시에는 이와 비슷한 차라는 것이 없을 정도로 혁신적인 차종이었다. 가장 보수적이던 폭스바겐이 아우디의 DNA를 갖고 완전히 새로운 차를 만들었다.

EA111 같은 골프의 엔진은 다른 회사보다 특별히 뛰어나다고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폭스바겐으로 보면 새로운 엔진이었다. 배기량은 1.1L에서 1.8L까지 있었고 엔진은 당시로서는 우수한 편이었다.

골프는 실용적인 차종으로서 매우 성공적이어서 10년 동안 700만대 가까운 판매가 일어났다. 유지비가 쌌고 성능은 우수했다. 그리고 실내공간은 소형차의 입장에서 경이적으로 넓었다. 덕분에 회사의 경영상태는 좋아졌다. 비틀의 고전을 만회할 수 있었다. 1976년에는 고성능 버전인 GTI를 만들어 저렴하면서도 고성능이 차종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GTI는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예상외로 많이 팔려서 고성능의 해치백이라는 의미를 갖는 `핫해치(HotHatch)' 장르가 만들어졌다. 자료에 따르면 GTI는 예상했던 수량의 10배 정도가 팔렸다고 한다.

골프는 어려운 시기에 놀라운 변신을 일으킨 폭스바겐의 역사를 반영한다. 70년대 초반 공장의 라인, 엔진, 디자인 그리고 엔지니어링까지 모든 것이 2∼3년 내에 바뀐 역사였다. 그 뒤에는 10여년간 기술적 DNA를 다져온 아우디의 엔지니어링이 있었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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