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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와 박수근 화백의 나목(裸木)
박완서 작가와 박수근 화백의 나목(裸木)
  • 의사신문
  • 승인 2015.10.12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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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기의 마로니에 단상 〈24〉

*다가오는 10월 20일이 박완서 작가가 태어난 날이다. 우리나라 현대 여성 소설가의 수장 격인 선생님은 공감가는 작품과 소탈한 인품으로 전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이 땅에 사는 많은 여성의 정신적 지주였던 박 선생님은 2011년 80세의 원숙한 나이에 아깝게 타계하셨다. 이번에는 박완서 선생님을 문학의 길로 인도한 사연을 소개하겠다.

예술가란 어떤 사람인가? 백과사전에 “회화, 문학, 음악, 무용, 연극이나 영화 등을 이용하여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사람이다.”로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름다움은 진선미眞善美로서 모든 분야의 예술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목표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예술가가 가장 행복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에서 생기는 자아 실현의 기쁨을 작업현장에서 바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훌륭한 예술가의 영향으로 다른 분야에서 탁월한 창작자가 만들어진 좋은 인연을 이야기하겠다.

박완서 작가는 금세기에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소설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 박완서 선생을 문학작품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이 박수근 화백이다.

1931년 생인 박완서 선생은 1950년 4월에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곧 6.25전쟁이 발발하여 대학생활은 거의 못하고 청춘 나이에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전쟁 초기에 미처 서울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그녀 가족은 오빠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생활고로 학업도 중단하였다.

집안을 책임지게 된 어린 처녀는 미군부대 PX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미군사병이 가지고 있는 여자 친구나 가족의 사진을 바탕으로 멋진 인물화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초상화는 화가들이 따로 그리고 그녀는 짧은 영어로 미군사병을 설득하여 일을 성사시키는 거간꾼이었다. 이들 화가 중에 박수근 선생이 있었다. 일의 절차상 주도권을 행사하는 박완서는 처음에는 그를 극장 간판장이 수준 정도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박 화백의 작품과 인품을 접하면서 가까워지고 존경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은행원과 결혼한 박완서는 4남매를 낳고 양육시키면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학창시절 때 가졌던 작가의 꿈은 버릴 수가 없었다.

김장철이 지나고 다소 한가해진 겨울날 박수근 화백의 추억을 바탕으로 자서전적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한밤중 가족들이 잠자는 가운데 홀로 차가운 윗목에 앉아 손을 비비면서 쓴 첫 작품이 〈나목(裸木)〉이고, 이 소설이 여성동아 공모전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녀 나이 40세의 일이었다.

한편 박수근 화백은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그는 일찍이 회화에 재능과 흥미를 발견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당시에는 그림으로 먹고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시계 수리기술을 배워 낮에는 돈을 벌고 밤새워 미술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옆집에 서울 유학까지 한 규수가 살고 있었다. 그녀를 짝사랑하던 박수근 화백은 청혼을 하고 그에게서 진실성과 화가로서의 잠재성을 발견한 그녀는 받아들여 결혼을 하게 된다. 이 부부는 곧 서울로 올라와 설렁탕집을 하면서 회화 공부와 작업을 계속하였다.

소설 〈나목〉은 박완서와 박수근의 운명적 해후와 인연을 아주 사실적으로 기술하였다.
“한국전쟁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미군 PX에서 초상화 중개인으로 일하는 여주인공이 화가와 만난다. 화강암 색조의 배경에 헐벗은 그러나 끈질기게 봄을 기다리는 나목을 형상화한 그의 유채화에서 여주인공은 전쟁의 상처를 위로 받고 희망을 꿈꾼다. 주인공과 화백은 나이 차이를 벗어나 서로 좋아하게 된다. 당돌한 그녀는 화가를 훌륭한 예술가로 만들겠다며 양보를 받기 위해 화백의 부인을 찾아간다. 그러나 부인은 그녀보다 더 지적이고 예술에 대해 전문가였다. 낙담한 주인공은 자기를 쫓아다니는 미군부대의 군무원과 결혼하여 평범하게 살아간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늦은 나이에 등단하였으나 그 후 왕성하게 소설과 산문을 쓰며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상식적인 관점에서 서민의 삶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뛰어난 작품을 계속 발표해 마침내 `국민 작가'가 되었다. 나는 우리나라의 모든 여성이 자라면서 박완서 선생의 작품집을 한 권 정도는 읽었다고 확신한다. 다루는 주제도 전쟁으로 일그러진 삶을 시작으로 현대사회의 문제점, 소시민의 고통, 억눌린 여성, 죽음과 신앙 등 다양하게 확장하여 왔다.

이 국민적 여성 작가를 예술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이 결국은 박수근 화백이다. 처음 두 사람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소설로 등단하였고, 그 후 박수근 작품의 모티브가 박완서의 많은 소설에 그대로 반영된다.

즉 화강암 풍의 질박한 색조와 아이 업은 여인의 뒷모습에서 느끼는 삶의 익숙한 고달픔을 소설의 근간으로 하여, 헐벗은 나목 가지처럼 인간의 허위와 위선을 숨김없이 벗기고 파헤친 다음, 생명의 밑바닥에서 나오는 공감과 측은심을 통해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아 극복하는 스토리이다. 그림과 소설 모두 우리 민생의 고통과 인내를 묘사하고 끝내는 희망을 노래한다. 두 사람은 근세에 우리가 겪었던 고난과 극복과정을 통해 진솔한 삶을 관조하는 한국적인 진선미를 표현한 뛰어난 예술가였다.

그러면 실제 박수근과 박완서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떠하였을까? 소설 〈나목〉에서는 서로 사랑하고 여주인공이 결혼을 생각할 정도로 가까웠다. 남자는 내심 원하지만 소극적 행동으로 일관한다. 박완서 작가와 비슷하게 늦은 나이에 등단했지만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소설가 은희경 선생이 나에게 한 말이 있다.

“글을 쓰다가 잘 안 풀리면 주인공끼리 연애를 하게 합니다. 삶의 변화를 그리는 것이 소설인데 변화의 동기 중에 남녀 간 사랑이 가장 강력한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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