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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in The Alps 〈하〉 -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다
Fun in The Alps 〈하〉 - 아이거 북벽을 바라보다
  • 의사신문
  • 승인 2015.09.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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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윤 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쓰러지고 도전하는 산악인들 위해 추모와 기원      

■8월21일 맑음

인터라켄 시내에서 바라본 융프라우(우측) 묀히(좌측).

묵고 잇는 C 호텔은 인터라켄 서역에서 3분 거리의 강가에 우뚝 서있다. 이곳에서 강 건너 북쪽으로 흰 설산인 융프라우가 보인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하얀 설산을 볼수 있다는 것이 알프스의 매력이기도 하다. 융프라우(4158m) 좌측으로 어제 등정한 묀히(4107m)가, 그 옆으로 아이거(3970m)가 차례로 위치해 있다. 아침 일찍 허 대장은 샤모니로 귀환하고 우리는 융프라우요흐역으로 올라 트레킹을 하기 위해 인터라켄 서역으로 이동하였다.

`Top of Europe'의 기치를 내건 융프라우요흐역은 실상은 높이가 3454m밖에 되지 않아 알프스의 최고봉인 Mont Blanc(4810m)보다 턱없이 낮다. 더구나 유럽의 최고봉은 러시아의 엘브러즈(Elbrus)로 높이가 5642m나 되므로 `Top of Europe'이라고 하기에는 당치도 않다. 기차역으로는 최고 높이에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기에 충분하다.

`젊은 처녀'란 뜻의 Jungfrau는 우리로 치면 산이 동글동글하고 아담한 `옥녀봉'에 해당될텐데 너무 웅장하고 거칠다. 원래 `융프라우'라는 이름은 인터라켄의 `아우그스티누스' 수녀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하니 모양을 보고 이름이 지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설원을 걸으며(앞으로 융프라우가 보인다).

융프라우요흐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10시30분경 긴 통로를 거쳐서 설원의 관문에 도착하자 우리 동창들은 탄성을 내지른다. 우리로 치면 더위가 한창일 8월 중순에 이런 설원에 서다니.. 너무들 감격스러워 한다. 이곳에서 묀히산장까지는 약 1.7 km로 왕복 2시간 정도가 걸린다. 약간의 오르막이 있고 고소의 위험이 있으므로 천천히 출발한다. 푸르다 못해 검은 하늘과 잘 정돈된 흰 눈밭은 동심을 불러내기에 충분해 어떤 친구는 눈밭에 큰 대자로 누워 깨끗하고 드넓은 자연을 만끽한다. 호흡이 곤란하고 두통이 있는 친구가 있어 잠시 쉬며 주위를 둘러본다.

앞을 가로막은 아이거 남벽, 좌측의 묀히가 우리를 호위하듯 둘러쳐 있고 우측으로는 툭터진 알레취 빙하가 큰 구릉을 이루고 있다. 일 년 내내 머리에 흰 눈을 두르고 있어 수도승이란 뜻을 지닌 묀히는 좌측 능선의 커니스(눈처마)가 일부 무너져 내린것을 볼 수 있었다. 어제 그쪽 능선으로 진입하지 않은것이 천만다행이다. 멀리서 묀히를 보니 어제 고생했던 기억은 말끔히 사라져 버리고 정다운 느낌마저 든다.

“묀히야, 오늘 또 왔어” 속삭여 본다. 경사가 다소 높아져 속도를 더 늦추며 천천히 전진한다. 아이거의 서쪽 능선과 묀히의 동쪽 능선이 만나는 안부에 묀히산장이 보인다. 모두들 고소적응에 성공하여 큰 불편이 없는 모양이다. 쉬엄쉬엄 오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산장으로 오르는 언덕길이 다소 미끄럽자 4발짜리 아이젠을 빠르게 차고 오르는 친구도 있다. 산장의 메인홀은 여느 산장이나 마찬가지로 간단한 식사와 음료를 판다. 점심으로 빵과 쇠고기스프,커피 등을 주문하였다.

묀히산장을 배경으로.

테라스에 나와 우리가 지나온 길을 더듬으며 저 멀리 융프라우를 조망한다. 알레취빙하를 거쳐 융프라우를 오르는 발자국들이 점점을 이루고 있다. 저기도 한번 올라야 하는데… “마음뿐일까?” 오후에 트레킹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식탁을 정리하고 다시 융프라우요흐역을 향한다. 유럽의 관광이 역사적인 고궁, 교회, 음악당을 둘러보며 그들의 행적과 찬란한 건축물에 대한 식견을 넓히는 것도 좋지만, 무작정 대자연의 품에 안겨 머리를 맑게 하는 트레킹도 권할만한 일인 것 같다.

특히 나도 산행에 대한 어려움과 고민이 없으니 좋고 많은 친구들과 부담없는 이야기로 몇 시간을 함께하니 에너지가 저절로 축적되는 느낌이다.

좋은 날씨 덕에 호사한 친구들은 추억의 `신라면'맛을 잊지 못해 융프라우요흐역에서 컵라면 한 그릇씩을 해치운다. 사실 일반 관광으로는 누릴 수 없는 코스이기에 더욱더 즐거워한다.

다시 톱니바퀴 열차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내린 시간이 오후 2시30분경, 이곳에서 알피그렌(Alpiglen)까지 약 2시간여의 트레킹이 시작되는 곳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아이거 북벽의 품에 안겨(?) 아름다운 초원을 걷는 일이란 상상만 해도 멋진 일이 아닌가? 더구나 최고의 산악인이 되기 위한 과정으로 꼭 오르고 싶어하는 `Nord Wand(북벽)'를 가까이서 보는 일이란 나도 산악인의 일원으로서 큰 영광이기도 한다. 알프스 3대 북벽의 하나인 아이거 북벽을 보듬고 있는 아이거는 도깨비를 뜻하는 `오거(Ogre)'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이거 북벽 앞에서.

더구나 북벽은 움푹 파여 못생긴 얼굴과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여 흡사 도깨비같은 모습으로 쳐다만 보아도 등골이 오싹하다. 역에서 좌측으로 `아이거노르드반트식당'아래로 내려서면 우측으로 등산로가 선명히 보여 힘들이지 않고 찾을 수 있다. 약 15분 거리의 북벽 표지판 아래에 섰다. 정상에 오른 산악인의 루트가 잘 설명되어 있었다.

1935년 독일인인 막스 새들마이어와 칼 메링거가 강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악천후로 이 북벽에서 최초로 사망하였다. 1938년 초등을 허락한 후에도 수많은 산악인이 목숨을 잃어 `살인 벽(Mord Wand)'이라는 명칭도 갖고 있으며, 2012년의 `영광의 북벽'의 저자인 정광식의 후배가 이 책을 보고 오르다가 추락사한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또한 1957년 정상 직전 추락하여 두다리에 골절상을 입고 로프에 매달린 채 죽어간 스테파노 롱히라는 산악인이 있었다. 그의 처절한 죽음 뒤에 시신 처리가 늦어져 2년동안 로프에 매달린채 방치되어 많은 관광객의 구경거리가 된 적도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산 앞에 서서 그동안 죽어간 많은 이들에게 추모의 묵념을,혹독한 날씨와 악조건을 극복하고 정상에 오른 많은 이들에게 무한한 영광이 있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하였다.

그래도 아이거 북벽은 말없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그래선지 머리에 두건을 두른 채 우리가 그린델발트까지 가는 동안 한번도 정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딸랑 따알랑” 큰 종들을 목에 달고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떼들과 선로를 따라 왕복하는 산악열차들을 보면서 자연의 풍요로움과 너그러움을 즐기며 초원을 걷다 보니 알피그렌 역에 닿는다. 마침 그린델발트에서 이곳까지 온 열차가 있어 곧바로 그린델발트로 향한다.다시 기차를 바꿔타고 인터라켄 동역 가까이에  있는 한식집으로 향한다. 한 병에 25프랑짜리 소주에 인터라켄의  마지막 밤이 깊어만 간다.

 

■8월22일 맑음

오늘은 오전에 하더 쿠름(Harder Kulum)전먕대를 오르기로 하였다. 서울로 치면 남산에 케이블카타고 올라 시내를 조망하고 한강을 둘러본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인터라켄 동역과 서역 중간지점에 큰 소나무가 세 그루있는 `Trei Tannen'이라는 곳에서 걸어서 10분, 다리를 건너면 언덕위에 케이블카역이 보인다. 이곳도 많은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인터라켄의 표고가 560여 미터 전망대가 1300여 미터로 표고자가 700여 미터나 된다. 고로 경사가 30도나 됨직한 급사면을 약 10분쯤 올라야 정상에 도착하는데, 전망이 압권이다.

좌측으로 브리엔츠호수와 우측의 튜너호수가 보이며 가운데 인터라켄 시가지가 보인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강줄기 또한 인터라켄이 물의 도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맑은 날씨로 하늘에는 많은 행글라이더 모습이 잠자리떼같이 날고 있고 멀리 베르너 오버란트산군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하산은 걸어서 하기로 하였다.

지그재그의 경사가 제법되는 오솔길을 상큼한 풀내음을 맡으며 두 시간여를 걸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느끼는 점이기도 하지만 트레킹코스나 산행로에 가급적 계단을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와 스위스는 토양이 다르고 산행인구도 달라 나름대로의 차이가 있겠지만 많은 계단을 설치하는 우리 현실이 바람직하지는 않다.

어떻게든 지그재그의 길을 내어 흙의 쓸림을 방지하고, 위험 방지목을 설치하여 흙길을 걸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땀을 흠뻑 흘리며 인터라켄으로 내려온다.

취리히에서 오늘 귀국 비행기 출발시간이 오후 9시이므로 오전을 충분히 활용할수 있어 서두르지 않아 좋다. 오후 1시경 점심은 `라면+밥+김치 = 15프랑'이라는 광고를 보고 온 친구 따라, 그 식당에 가서 라면에 밥 말아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모두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우리가 옛날 출출할 때 먹었던 계란 넣은 라면의 맛이 훌륭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 외국의 한식집에 들리면 실망이 크던 옛일은 이제 추억속으로 사라져야 할것 같다. 취리히 공항역행 기차에 몸을 실으며 그동안 함께 했던 허 대장 그리고 고교 동창들에게 오래도록 산행을 같이할 수 있도록 건강을 주십사 하고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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