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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중형차 이야기(골프)
준중형차 이야기(골프)
  • 의사신문
  • 승인 2009.09.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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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지 않는 혁신으로 새 시대 열어

수동차를 좋아하는 필자는 지금도 스틱 차량을 몰고 다닌다. 몸과 머리의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rpm의 가장 적합한 곡선에서 클러치를 붙이고 떼면서 연비와 속도를 모두 만족시키는 드라이빙을 할 수 있다. 어떤 때는 완벽한 희열을 느끼고 만다. 클러치를 살짝 밟는 정도로도 속도와 엔진의 rpm이 모두 맞는 순간에 기어는 정확히 들어간다. 움찔하는 느낌이나 싱크로메시가 개입하는 느낌은 전혀 받지 않는다. 오토는 그런 점에서 이런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이런 즐거움에 회의를 심어준 것은 폭스바겐의 5세대 골프 gti가 나오면서 DSG라는 변속기가 탑재된 다음이다. dsg는 자동변속기와는 다르다. 클러치를 밟지는 않지만 내부에는 두개의 클러치가 들어있다. 엔진과 변속기의 상태를 판단해서 변속기가 바뀐다. 그러니 자동모드에서 운전하는 것은 수동변속기로 자동변속기를 흉내내는 것이고 수동모드는 수동이 수동을 대체하는 것이다. 변속은 매우 절묘해서 일상적인 급변속에서도 무리가 없다. 클러치가 없더라도 거의 완벽한 변속이 일어나는 것이다. 첫번째의 프로토타입이 나오고 거의 20년간 개발한 결과다. 자동화된 수동 변속기 덕분에 골프의 연비는 무척 좋은 편이다. 폭스바겐은 이 변속기와 새로운 엔진의 조합으로 토요타를 위협할 정도로 엄청 잘나가는 회사가 되었다. 진정한 혁신이었다.

골프 5세대는 여러가지 면에서 이전 세대의 골프와 단절적이었지만 골프 자체가 단절적인 차였다(요즘은 6세대까지 나왔다). 1970년대 중반 폭스바겐은 골프와 래비트라는 이름으로 딱정벌레처럼 생긴 비틀을 대체한다.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지만 이 차가 그전까지의 차와 완전히 다른 차라는 점은 분명했다. 1970년대에 이미 40년이 넘은 설계의 차종인 비틀이 워낙 전설적이라 사람들이 이 차에 적응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분명히 비틀은 시대를 뛰어넘은 디자인을 갖고 있었지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점은 분명했다. 폭스바겐이 새로 내놓은 골프는 전륜구동 방식의 차로 그 전까지의 차들과는 완전히 단절적인 디자인의 해치백이었다. 사람들은 완전히 새로운 차가 나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사실 해치백 시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포니가 해치백 스타일로 나온 것도 당시의 유행을 따른 것인데 해치백을 유행시킨 것은 골프였다. 골프라는 이름은 대서양의 해류 이름에서 따왔다. 멕시코만의 난류 gulf stream의 독일식 이름이 golf라고 한다. 보라(bora)와 제타(jetta)는 이 차의 세단형의 모델명이다.

골프는 2600만대 이상을 판매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이 팔린 차종이다. 이만큼 팔린 차종은 드물다. 그전의 비틀은 2000만대를 팔았고 골프는 이 기록을 갱신했다. 골프보다 많이 판 차종은 토요타의 코롤라와 포드의 F시리즈 두 차종뿐이다. 포드의 F시리즈가 트럭이며 1948년부터의 집계라는 점을 제외하면 사실상 2위인 셈이다. 하지만 피아트의 124차종은 2000만대를 팔았고 동구권의 카피인 라다의 riva가 1300만대를 판 것을 포함하면 3위인 셈이다. 하지만 다른 차종들보다는 월등하게 많이 팔린 차라고 볼 수 있다. 골프의 다음순서는 포드의 에스코트와 혼다 시빅이 나타난다. 그다음이 니산의 써니(센트라)와 파사트 정도다.

현대의 엘라트라와 아반떼의 생산이 1991년부터 2007년 중반까지 300만대 정도로 집계됐다면 사실 2600만대라는 숫자는 가공할만한 숫자다. 세계와의 벽은 아직도 매우 높은편이다.

자동차 매니아의 일종인 필자 역시 이 유명한 차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2·3·4·5세대의 골프를 시승해 보았다. 그리고 언제나 처럼 리프터에 올라간 차들은 기회가 되면 열심히 관찰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구형 골프의 특징이라면 엔진룸의 썰렁함을 떠올린다. 손을 볼 곳도 없을 정도로 간단하며 복잡한 호스나 파이프의 기괴함도 없어 보였다. 20년이 넘도록 고장이 나지 않았다는 팬모터는 크고 간단하며 아주 튼튼해 보였다. 구형 프라이드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서스는 아주 단단하다. 힘도 남아돌 정도는 아니나 모자라지 않는다. 엔진은 예상보다 작게 보인다. 정비의 시야는 너무 좋을 정도다. 실내는 초라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주 검소해 보인다. 차체의 강성은 아주 높은 편이며 특별히 고장날 것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별나거나 특별해 보이는 것도 없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점이 바로 특별한 점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크게 질리지만 않는다면 일상적인 용도에는 아마 딱 맞을 정도의 차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었다. 사이즈가 크지도 않지만 작지도 않다. 골프는 푸조의 205나 구형 프라이드 보다는 크기 때문에 너무 비좁지도 않고 짐과 사람이 적당히 실린다. 실생활에서는 중요한 요소다. 차체의 강도도 튼튼하다. 질리지 않는 디자인에 고장도 많지 않고 출력도 적당한 차를 만드는 일들이 몇가지 요소가 튀는 차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엔지니어링이다. 그리고 차를 살 때에도 흔히 놓치기 쉬운 요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오랜 기간 좋아하는 차종에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요소들이 있다. 눈에 바로 뜨이지 않는 혁신들이 꽤 많았던 것이다. 다음 몇 회의 주제다.

안윤호〈송파 대광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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