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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in The Alps <중> - 묀히(Monch 4107m) 등정
Fun in The Alps <중> - 묀히(Monch 4107m) 등정
  • 의사신문
  • 승인 2015.09.21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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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윤 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천길 낭떠러지 암능과 설능 넘어 `묀히'에 오르다               

 

묀히 산 전경.

■8월20일 맑음
어제 체르마트를 출발, 인터라켄 동(Interlaken Ost)역을 거쳐 그린델발트(Grindelwald 1034m)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S 호텔에 짐을 풀고 부족한 산악장비를 빌리고 필수품을 구입하고 가까운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래도 우리 입맛에 가까운 중국요리가 한결 식욕을 돋군다. 브리엔츠호수(Brienzsee)와 툰호수(Thunsee)사이의 마을인 인터라켄은 동역과 서역으로 구분되는데 거리는 버스로 10여 분, 지척에 있다.

두 호수를 연결하는 수로가 잘되어 있어 양 호수를 왕복하는 관광선이 인기리에 운행 중이다. 인터라켄에서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까지는 좌측으로는 그린델바트역을 경유하거나 우측으로 라우터부룬넨(Lauterbrunnen 790m)역을 경유하여 오르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어느 노선을 이용하든 클라이네 샤이텍(Kleine Scheidegg 2061m)에서 스위스가 자랑하는 톱니바퀴 산악열차로 바꿔 타고 융프라우요흐역(3454m)에 도착하게 된다.아이거(Eiger) 묀히(Monch)의 바위산을 관통하여 융프라우 산마루까지 턴넬을 뚫은 스위스인들의 장인 정신이 놀랍기만 하다.

융프라우요흐행 첫 기차는 아침 7시30분에 출발하므로 이른 아침을 먹고 역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들로 좌석은 만원이다. 클리이네 샤이텍역에서 내려 기차를 바꿔 탔다.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아이거는 검은 구름을 머리에 쓰고 있고, 묀히와 융프라우는 구름 한 점 없이 수려한 봉우리와 만년설을 눈부신 햇살 아래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융프라우요흐역에 9시 전에 도착하였다. 묀히를 등정하려는 등산객들은 대부분이 문히요흐산장(Monchsjoch Hut)에 숙박하고 고소적응을 한뒤 아침 일찍 오르는 것이 상례이나, 한 대장과 나는 이미 4000m대 산을 오른 후라 이 과정을 생략하였다. 역의 메인홀에서 알레취빙하(Aletsch Glacier)로 나가는 이정표를 따라 건물밖으로 나왔다.

넓은 설원 한 가운데로 잘 정돈된 길을 따라 묀히산장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좌측편에 묀히산, 정면에 아이거가 보이며 우측으로는 거대한 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 가설 경기장을 만들어 축구도 하고 테니스게임도 벌였다고 한다. 그들의 융프라우 사랑은 끝이 없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나도 스위스의 테니스 영웅 로저 페더러 사진 옆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한 시간 정도 걸었을까, 이제 묀히산장을 바라보며 등산로 입구쪽인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버너,코펠 등 취사 도구와 스틱 등을 데포시킨후 암벽으로 진입한다.

묀히산은 암벽과 설능의 복합등반으로 허대장은 마지막 설능부분이 신경을 써야 할 곳이라고 이야기 한다. 벌써 여러 팀들이 암벽, 설벽에 붙어 있어 우리도 한 발 한 발 그들의 뒤를 따라간다.

사실 나는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암벽훈련을 꾸준히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정한 자일샤프트가 있는것이 아니어서 매년 1년만에 신는 크램폰, 픽켈이 친숙하지는 못하다. 익숙해질 무렵이면 하산하니 매번 대할 때마다 초보인 셈이다.

암벽을 넘어서는 필자.

첫 번째 암벽을 끝내고 설능부분이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양측으로는 깍아지른 낭떠러지로, 공포감을 추수리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우리가 걸어온 눈밭 길위에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이는 것을 보니 상당히 올라온것 같다. 우측의 아이거 남벽이 눈을 걷은 채 우리를 주시한다. 영화 `North Face'의 주 무대인 아이거북벽은 초등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악마의 벽'으로도 불린다.

허 대장은 이 아이거북벽을 포함한 3대 북벽(알피니스트들이 꿈꾸는 마테호른북벽, 그랑조라스 북벽을 말함)을 등정하였으니 산악인으로서는 최고의 경지를 이룩한 Alpinist이다.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산행은 항상 믿음직스럽고 든든하다. 그렇다고 한 발짝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산행에서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두어 번의 암능과 설능을 오르고 마지막의 설능에 오를 차례이다. 이번에는 경사가 60도 정도 되고 거리도 200미터는 됨직하다. 양쪽은 깍아지른 수백미터의 낭떠러지이고 한가운데의 좁은 설사면으로 오르자니 위험 천만이다. 30여 미터 거리마다 쇠말뚝을 박아 놓아 안전장치를 하여 놓았지만 고도감이 대단하다.

마지막 설능을 오르는 필자.

허 대장이 먼저 오르고 뒤이어 오르는데 한 발 한 발을 띄어 놓기가 힘들다.

양옆의 천길 낭떠러지, 발밑만 보며 천천히 오른다. 2012년 프랑스 샤모니의 에귀디미디에서, 코스믹릿지로 내려서다가 앞사람과 스텝이 맞지 않아 7∼8미터를 스립(Slip)한 아찔한 기억이 있다. 안자일렌(안전을 위해 로프로 앞뒤를 묶는 행위)한 앞사람이 반대편 능선으로 몸을 숙여 내가 정지되었지만.

능선에 양쪽으로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만 생각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를 악문다. 오랜만에 고도감으로 몸에 경직이 일어날 정도로 굳어진다. 글린발델트에서 렌트한 픽켈에는 손목거리가 없어 놓치는 걸 방지하려니 더더욱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암벽이야 힘들면 네발로 기면 되지만, 두발 크램폰을 설능에 박고 픽켈하나로 중심을 잡으려니 온몸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세 피치에 걸친 설능오르막을 끝내자 정상능선이다. 우리가 출발한 시간이 10시경으로 3시간 30분만에 정상에 섰다. 마테호른은 올해도 오르지 못했지만 두 번째 숙제인 묀히(4107m)에 올랐다. 묀히 산신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북쪽능선으로는 눈처마(Cornice 커니스)가 무너질 위험으로 접근을 하지 않고 있다. 아이거가 우리 발밑에 보이고 융프라우가 조금 높이 서 있다. 우리도 설능상의 안쪽에 잠시 앉아 음료수와 과일을 먹었다. 서로 교행하기 조차 힘든 설능상에서 10여 분 지체하다가 하산을 준비한다.
 

정상 등정.

사실 내려갈 일이 더욱 걱정이다. 힘들게 올라오는 다른 팀들과 교행이 힘들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밀려오는 고도감, 추락의 위험 등을 감수 하느라 어찔어찔하다. 다시 바짝 긴장한다. 능선에서 내려서는 첫 설능 마지막 지점에서 사이드스텝으로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2∼3m를 스립한다. 거의 다 내려온 관계로 위험은 없었지만 허 대장이 제어를 해준다.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조심조심 내려간다. 바위턱에서 자일 하강을 하지만 여전히 속도는 나지 않는다. 몸이 굳어 자세가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직벽 부분에서 두 번의 현수 하강 후 계속 고도를 낮춘다. 우리가 걸어왔던 흰 눈길이 선명히 보이며 고도가 낮아짐을 느낀다.

벽은 여전히 가팔라 자세를 바꿔서 엎드려 네발로 하강한다. 묀히 표지기가 있는 테라스 부분에 `밀레'(등산용품회사) 홍콩지사 직원들이 자기네 로고사진을 찍기에 서울시의사회 깃발도 세우고 사진을 몇장 찍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초입의 눈밭까지는 이제 수백미터 마지막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사실 올해 마테호른 산행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지난 2개월 동안 무박산행으로 설악에 8번이나 갔었고, 12시간 짜리 공룡능선을 5번이나 해서 체력을 보강해왔다.

마테호른 초등자인 에드워드 윔퍼는 8번의 도전 끝에 성공을 하였다지만 나는 이번 도전이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많은 눈으로 또 다시 한발짝도 올라보지 못하자 실망감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2년째 주저주저하다 놓친 묀히를 등정하니 서운한 마음이 많이 잦아 들었다. 나를 보듬은 알프스의 너그러움에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일은 지금 생각하지 말자.

눈밭에 내려서자 긴장이 풀리고 허기가 든다. 허 대장과 나는 성공을 축하하며 하이파이브를 외치며 자축한다. 음료와 과일로 간단히 요기하고는 다시 40분정도의 눈밭을 걸어 융프라우요흐 메인홀에 도착한다. 샌드위치와 커피로 식사를 하고는 열차 사정을 알아본다.

지금시간이 오후16시10분. 16시40분차는 많은 승객으로 힘들고, 17시30분차를 타야 할것 같다. 피르스트(First)계곡을 트레킹한 동창들이 그린델발트 역에서 기다리겠다고 빨리 내려오라고 전화를 몇 통화 걸어온다. 저녁을 그린델발트에서 먹기로 하고 오후 19시경 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역에서 내리자 마자 렌트한 픽켈을 반납하고, 맥주를 기울이던 그들과 조우한다. 어제의 중식당에 -레마크의 소설 `개선문'에서 외과의사 라비크가 마시던- 칼바도스(사과브랜디)가 있어 병째로 주문하였다.

푸짐한 안주와 함께 묀히등정을 축하하였다. 늦은 밤 인터라켄에 도착하여 내일 동창들과 융프라우요흐에 다시 올라 묀히산장까지 왕복 트레킹을 약속하고 허 대장과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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