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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n in The Alps <상> - 브라이트호른(Breithorn 4164m) 등정
Fun in The Alps <상> - 브라이트호른(Breithorn 4164m) 등정
  • 의사신문
  • 승인 2015.09.15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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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윤 석(서울시의사산악회 고문)

아! 마테호른 산신, 5번째 도전도 받아주지 않아… 

■8월15일 흐림

글쎄다. 살아가면서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수는 없겠지만, 이처럼 자연이 나를 외면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뭐 이 산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히 남들처럼 버킷 리스트도 작성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5번째나 똑같은 길을 가는 나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많은 눈과구름에 치마를 입은 마테호른.

마테호른(Matterhorn, 4478m, 스위스)!

“에베레스트라면 몰라도” “그렇게 위험 하다며” “몇번 째야? 포기해” “자연의 섭리로 받아들여” “또 그산이야? 지겹지도 않아! “눈덮힌 바위산을 왜가? 나이를 생각해야지” 가족, 친구,지인들 모두의 근심어린 충고를 뒤로 하고 8월15일 역사적인 광복절날 취리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4년간 나홀로 였다면 이번에는 고교동기생 6명이 알프스 트레킹 하겠다고 동행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알프스 선전좀 하고 다녔더니 마음이 돌아선 탓이다. 이번에도 정상등정에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나는 떠나야만 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있는 힘이 느껴지니 떠나는 것 뿐이다. 결과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의 설레임을 즐기는지도 모르겠다. 기내에서 만난 1940년대 영화 `카사브랑카'는 그야말로 아릿다운 잉그릿드 버그만과 험프리 보가트의 트렌치 코트가 멋져 보였던 추억의 명화. 그들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가 나를 머나먼 꿈속으로 안내한다. “당신의 멋진 눈동자에 건배”하며…

■8월16일 맑음

아침 8시 취리히공항 근처 P 호텔에서 출발하여 공항역에서 브리그(Brig)행 기차에 자리를 잡는다. 5번째의 스위스 여행이고 똑같은 코스를 반복하니 마치 방학이 되어 고향가는 느낌처럼 푸근하다.

차창에 스치는 그림같은 전원도 여전하고 잘 정돈된 촌락 마을은 우리 노랫말 가사처럼 `꽃피는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라는 음율을 입안에 맴돌게 한다.

두 개의 호수를 끼고 있는 스피츠(Spiez)지역을 벗어나 긴 터널을 통과하면 환승역인 비스프(Visp)역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고도 1650m의 체르마트(Zermatt)로 힘들게 오르려면, 가스차 종점인 태쉬(Tash)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종점으로 치닫는다. 취리히 공항역을 출발한지 3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체르마트역에는 경상북도 분천역과 자매결연을 맺은 관계로 분천역 표말도 함께 붙어있다.

국력 신장의 단면을 보는것 같아 흐뭇하다. 오후 1시경 프랑스 샤모니에서 넘어온 가이드이자 자일샤프트(seilschaft)인 허긍열 대장(대구산악회소속, 이하 허대장)을 A호텔에서 1년만에 재회하였다.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검게 그을은 얼굴, 다부진 체격등은 전형적인 산악인의 모습 그대로이다. 동창들은 오후 이곳 트레킹에 나서고 허대장과 나는 알파인센터에 들러 기상을 확인하고 장비점에 들러 모자란 장비를 렌트하였다. 현재도 마테호른엔 많은 눈이 있어 등반이 힘들고, 수요일쯤 다시 눈이 올 예정으로 전망이 밝진 않지만, 일단 내일 예비산행을 하면서 지켜 보기로 하였다.

예비 산행장소는 브라이트호른 (Breithorn 4164m)으로 동기생인 L과 동행하기로 하였다. 이다지도 하늘은 애써 나를 외면하는지 마음이 착잡하다. 올해는 알프스에 폭염이 내려,녹는 눈으로 낙석이 많아 몽블랑쪽에서는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나름대로 기대가 컸었는데 현실은 허무하다. 인간은 자연을 거수를 수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브라이트호른 정상에서의 필자.

■8월17일 맑음

아침 일찍 식사 후 부지런히 케이블카역으로 이동한다. 중간역인 슈바르쯔제(Schwarzsee)를 거쳐 종착역인 마테호른 그레이셔 파라다이스(Matterhorn Glacier Paradice, 이하 Klein Matterhorn,3883m)역 까지는 50여분이 소요된다.

날씨는 맑지만 마테호른 정상의 구름 띠는 여전히 걸려 있어 정상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3000m이상이 되자 좌측의 빙하, 우측 너른 설원이 스위스에 왔음을 실감케 한다. 좌측으로 보이는 브라이트호른 서쪽능선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 역에 도착한다. 고소가 오기 때문에 L에게 모든 행동을 천천히 하라고 단단히 다짐을 하고는 긴 터넬을 거쳐 눈설원으로 나온다. 장비를 착용하고 스키어들과 함께 슬로프시작점을 함께 걸으며 1년 내내 스키를 타는 이들과 고작 3개월여를 눈이 오는 우리와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경기라는 생각을 L과 같이 한다.

너른 설원을 가로 질러 브라이트호른의 능선 입구까지는 보통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처음 안전벨트와 크램폰(10발 아이젠)을 착용한 L은 걷기 조차 무척 힘들어 한다. 천천히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걸음마를 배우고는 조금은 편해진 느낌으로 농담까지 하며 앞으로 거닌다. 사실 L은 아직도 매년 4∼5회정도의 마라톤 풀코스를 뛸 정도로 단단한 체력을 가지고 있지만 백두산을 오른 경력이 고작으로 고소등반을 하기는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 뒤로 브라이트호른의 위용이 보인다.

흰백의 설원을 터벅터벅, 이 한여름에 걷는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날아갈 정도로 좋지만 자연의 변화무쌍함을 알기에 항상 긴장하게 된다. 작년 7월말경 역시나 마테호른 예비산행을 준비하기 위해 브라이트호른에 오른후 약 1시간거리의 로시-보란테 무인산장(Bivacco Rossi Volante, 3700m 이탈리아 산악회 소유)에 묵었다. 고소적응에도 유리 할것이라는 판단에서 였다.

다음달 아침 눈을 뜨니 밤새 내린 눈이 30cm이상 쌓여 있고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온천지가 흰색인 그야말로 White-Out으로 무릎까지 빠지는 눈에 길을 찾을수 없어 2시간여의 거리를 무려 7시간이나 되어 아사직전에 도착한 악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손과 발의 동상으로 몇 개월을 고생한 적이 있어 자연의 무서움을 항상 마음속에 새겨 두고 있다.

이제 방향을 좌측으로 틀어 경사진 능선길을 힘들게 올라서야 한다. 바람이 잔잔해 등산하기에 최적의 상태로 수많은 가이드를 동반한 등산객의 발길이 줄을 잊는다. L은 오르막에 접어들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힘겹게 오른다.

그래도 포기란 단어를 입밖에 내지 않으니 그 결심이 대단하다. 계속 고도를 높이며 서서히 전진한다. 무서운 바람으로 서있기 조차 힘들었던 그리고 털모자를 바람에 날려버리고 난처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L은 운수대통한 친구로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방향을 우측으로 틀어 마지막 남은 능선길을 오른다.

저 앞에서 정상에서 환호하는 등산객들을 보며 조금은 피로가 가시는 모양으로 L이 파이팅을 외친다. “그래 다왔어. 마지막 힘을 내” 고소에 가끔은 어지럽다고 호소하는 L을 추스르며 힘겹게 정상 능선에 올라 선다. `나도 처음엔 그랬어, 힘들었지' 그렇지만 L에게 이말을 할 수는 없었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정상에 섰다. L에게는 일생일대의 큰일이고 기쁨으로 꼭껴안고 맘껏 축하해 주었다. “4164m의 눈덥힌 산을 오르다니… 아무나 할수있는 일이 아니야! “몇장의 기념 사진을 찍고는 하산을 준비한다. 이렇게 좋은 날씨만 계속해 준다면 원이 없겠는데… 마음속에 거듭 소원을 빌어본다.

하산길의 L은 거칠것이 없는듯 기운이 쌩쌩하다. 능선을 내려와 너른 설원을 가로지르며 정상등정의 기쁨을 만끽한다. Klein-Matterhorn 역에서 근 6시간만에 체르마트로 귀환한다.

■8월18일 흐림

아직도 마테호른 머리위에는 두건을 두른 구름띠가 남아 있지만 간간히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점심을 먹고 장비를 챙겨 P호텔에 check-out을 한다.

낮익은 지배인이 아직도 눈이 많은데 라며 걱정을 한다. 그래도 올라가 봐야지요. 슈바르쯔제역에서 내린 허대장과 나는 작년 이맘때 회른리산장이 증축중이어서 묶었던, 텐트자리를 바라보며 묵묵히 2시간여를 올라 회른리 산장에 도착하였다.

마테호른 초등 150주년을 기념하여 재건축한 산장은 통나무를 사용한 크고 깨끗한 산장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산장 아주머니와 반갑게 인사하고는 방명록에 “마테호른 산신이시여!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적었다 .

아직도 많은 눈으로 영국에서 왔다는 청년 둘은 포기 하고 하산을 한단다. 이 좋은 산장에 투숙객이 단 3명뿐이어서 적막하기만 하다. 저녁을 먹으면서 산장직원이 내일 아침을 몇시에 하겠냐고 묻는다. 현재 상태로는 새벽 4시에 출발은 불가능해 보여 7시로 예약한다.

눈에 덮힌 훼른리 산장.

■8월19일 흐림

새벽 4시에 눈을 뜨니 이런… 30cm이상 눈이 내려 산장밖 탁자에 눈이 소복하다. 한시간여를 고민하다 결정을 짖는다. 하산. 어쩔수 없다.

올해도 마테호른 산신은 나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실 모양이다. 아침을 먹고 주저없이 짐을 꾸린다. 마테호른 등정 후 계획했던 묀히(4107m)를 예정하고 인터라켄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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